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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이자 시인인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인기를 끌고,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당시 영국의 윤리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성적 취향 때문에 귀양가듯 프랑스 파리로 쫓겨가 쓸쓸하게 숨졌다.


그는 동화도 여러편 썼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동상이 제비를 시켜서 자신을 치장했던 보석과 금을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제비와 함께 숨을 거둔다는 내용의 '행복한 왕자'다.


욕심쟁이 거인이 아이들이 뛰놀면서 사철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던 정원에 높다란 담을 쌓아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사철 겨울이 됐지만, 반성하고 다시 아이들이 불러들이자 봄이 찾아온다는 '욕심쟁이 거인'도 널리 읽힌 작품이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는 흥미가 있어야 하겠지만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들을 새롭게 읽으니 교훈을 주는 방식이 무척 사실주의적이었다. 그리고 역설과 풍자가 일품이었다.


인간의 심장을 가지고 있을 때 나는 눈물이 뭔지 알지 못했어. 슬픔이 들어오지 못하는 평화로운 궁전에서 살았거든. 낮에는 친구들과 정원에서 뒤어놀고 밤에는 넓은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었단다. 궁전은 높디높은 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난 담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어. 내게 세상은 그저 아름다운 곳일 뿐이었단다.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어. 즐거움이 곧 행복이라면 그 말이 맞겠지. 난 그렇게 살다가 죽었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이 높은 기둥에 세워 놓은 다음부터 나는 이 도시의 모든 불행을 보게 되었어. 내 심장은 납으로 만들어졌는데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구나." (행복한 왕자, 12쪽)






자신이 먼저 떠났다가 후회하고 돌아왔지만 살아서 만나지 못하고 숨진채 만나게 된 연인을 끌어안은 남자의 고백은 너무 절절하다.


"사랑은 지혜보다 값지고 재물보다 귀하며 예쁜 여인의 발보다 눈부시답니다. 사랑은 불로 태울 수도 없고 물로 식힐 수도 없어요. 내가 당신을 부르는 동안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지요. 달은 내가 당신을 부르는 걸 들었지만 당신은 내게 오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을 떠나 세상을 떠돌며 상처만 받았지요.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어요. 나는 나쁜 일도 보고 착한 일도 보았지만, 그 무엇도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어요. 이제 당신이 죽었으니 나도 당신을 따르겠어요." 젊은 어부가 아리따운 인어를 부르며 말했다. (어부와 영혼, 201~202쪽)






동화라고 하지만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묘사는 직설적이다. 아래와 같은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의 대비는 전형적인 서술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전쟁 때에는 강자가 약자를 노예로 만들고, 평화로울 때에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노예로 만드는 법이야. 우리는 살아 보려고 애써 일하지만 그들은 보잘것 없는 품삯으로 우릴 죽게 만들지. 우리는 그들을 위해 하루 종일 천을 짜고 그들은 금고에 금을 쌓아 둔단 말이야. 우리 아이들은 얼마 살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험상궂고 흉악하게 변해 간다고. 우리는 발로 포도를 밟아 즙을 짜고 그들은 그 포도주를 마시지. 옥수수를 거두는 건 우리지만 우리 식탁은 늘 비어 있지. 감시하는 눈은 없지만 우리는 얽매여 있고 자유롭다고 하지만 노예나 다름없어." (어린 왕, 101쪽)





사실 이 책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위에 든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교훈보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답고 풍부한 묘사로 가득찬 문장들이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선 너무 현란해 좀 느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저토록 현란한 묘사들을 한번쯤은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흉내를 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은 비명을 지르다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 밖에는 새벽이 잿빛의 기다란 손가락으로 희미해져가는 별들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린 왕, 104쪽)


자줏빛 나비들은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날개를 펄럭이며 이 꽃 저 꽃 사이를 날아다녔고, 작은 도마뱀들은 벽 틈에서 기어 나와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누워 있었다. 잘 익은 석류는 살짝 벌어져 핏빛처럼 붉은 심장을 드러냈고, 무너져 가는 격자무늬 울타리에서부터 어두컴컴한 아치를 따라 탐스럽게 열린 노란 레몬들은 햇빛을 받아 더 샛노래 보였다. 상아로 조각해 놓은 듯한 하얀 목련에선 짙은 향기가 났다. (스페인 공주의 생일, 118~119쪽)


그러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팔에 청동 항아리 무늬 같은 시퍼런 힘줄이 툭툭 튀어나올 때까지 거친 밧줄을 힘껏 잡아당겼다.……인어의 머리카락은 젖은 금빛 양털 같기도 하고 잔에 담긴 황금 실타래 같기도 했다. 몸은 상아처럼 하얗고, 은과 진주로 만든 것 같은 꼬리에는 초록빛 해초가 둘둘 감겨 있었다. 귀는 조가비 같았고 입술은 산호처럼 붉었다. 가슴에는 파도가 부딪혀 하얗게 부서졌고 눈꺼풀 위에는 소금이 반짝거렸다. (어부와 영혼, 149쪽)


젊은 어부는 산을 내려와 금빛 모래가 깔린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리스의 동상 같은 구릿빛 피부에 건장하게 생긴 젊은 어부는 벌꿀처럼 노란 달을 등지고 섰다. 파도가 마치 그를 부르는 것처럼 하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어부와 영혼, 167쪽)


검은 바다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몰려오고 있었다. 검은 바다는 하얀 거품 발톱으로 바닷가를 할퀴었다. (어부와 영혼, 201쪽)







행복한 왕자 - 10점
오스카 와일드 지음, 소민영 옮김, 나현정 그림/보물창고


(※이 책은 1888년에 출판된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와 1892년에 출판된 [석류나무의 집](A House of Pomegranates)를 한권으로 묶은 것이다.)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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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화로 읽고, 명절 특선 TV 단편 만화로도 보고, 역시 TV에서 방영해주는 판소리로도 보고, 마당놀이로도 봤던 '심청전'. 우리 고전이든, 서양 고전이든 많은 형태로 변형돼 재창작 되고 있는 고전들은 대강의 뼈대는 다 알고 있지만 다시 보면 지나쳤던 부분들이 눈에 띄고 다양한 화소(話素)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진 심청전을 보고 들으며 울고 웃었는데, 청소년을 겨냥하고 있지만 진지하게 활자화된 심청전을 읽으니 문장 하나, 표현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알다시피 심청전은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읊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설 부분은 구구절절 읊는 느낌, 소리 부분은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흥얼거리는 느낌을 준다.


북멘토 출판사에서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 고전' 시리즈의 첫번째 권으로 내놓은 [심청전]을 보며 특히 눈에 띈 것은 등장 인물과 장면, 사건을 구체화시키는 방식이다. 판소리계 소설이라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서술 방식이 매우 전형적이고 고루하긴 하지만 전형적인만큼 쉽게 인상을 형성한다.


아래는 청이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수양딸로 들어올 것을 청하는 장승상 부인 댁을 묘사한 대목이다.


문 앞에는 버드나무가 '여기가 장승상 댁이오' 하듯 늘어서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왼편에는 푸른 속에 오동나무가 늠름히 서 있고, 오른편에는 푸른 대밭이 깨끗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바람이 문득 불자 늙은 소나무가 바람을 받아 일렁이는데 마치 용이 꿈틀하는 듯했다. 중문을 지나니 높은 지붕을 인 큰 건물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저택을 이루고 있었다. 그 집마다 누각마다 창문은 샐 수 없이 많이도 나 있고, 창이며 문에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조각이 아로새겨 있었다. 잘 가꾼 정원은 그야말로 꽃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온갖 꽃이 피어 있는 가운데 새가 한가로이 짝지어 날고, 연못 속에는 금붕어가 노닐고 있었다. (62쪽)


다음은 장승상 부인의 눈에 비친 청이의 모습이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게 한 뒤 자세히 살펴보니, 별로 단장하지도 않았으나 심청은 타고난 미인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앉은 모습이 곡 비 개인 맑은 시냇가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가 사람 보고 놀라는 듯하고, 하늘 가운데 돋은 달 같은 피부가 빛나고, 샛별같이 빛나는 눈동자에 꽃빛 어린 두 뺨이 그야말로 꽃다웠다. 말을 나눌 때면 두 입술 사이로 가지런하고 흰 이가 언뜻언뜻 드러났다. 장승상 부인은 정답게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63쪽)


아래는 악처의 전형인 뺑덕이네를 묘사한 장면이다. 뺑덕이네의 고약한 심성과 행실을 우스꽝스런 말투로 이어가고 있는데, 흥부전에서 놀부의 고약한 행실을 묘사하는 대목과 유사한 느낌이다.


뺑덕이네가 워낙 불량한 인물이라 남의 집 부인이 되고서도 양식 주고 떡 사 먹기, 베 내주고 술 사 먹기, 농사철에 정자 밑에서 낮잠 자기, 마을 사람더러 욕설하기, 일꾼들과 싸우기, 술에 취해 한밤중 울음 울기, 빈 담뱃대 들고 공짜 담배 청하기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하니, 동네 사람들과는 원수를 지게 됐고, 심학규의 재산은 거덜이 났다. (141쪽)


마지막은 심청전에서 워낙 유명한 대목으로서 인당수로 끌려가는 날 아침 청이가 홀로 괴로워 하며 부르는 노래다.


이윽고 닭이 울었다.

"닭아, 닭아, 울지 마라. 너 울면 날 새고, 날 새면 나 죽는다. 죽기는 서럽지 않으나, 의지할 데 없는 우리 아버지 어쩌면 좋단 말이냐?" (93~94쪽)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고전은 장화홍련전, 춘향전 등 여러권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책 속 그림은 판화가인 이윤엽 작가의 작품이다. 이윤엽 작가의 홈페이지.)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폭을 무릅쓰고 - 10점
고영 지음, 이윤엽 그림/도서출판 북멘토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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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정갈한 음식을 먹는 것, 적당히 시원한 약수물을 마시는 것, 차창을 절반쯤 내리고 봄바람이 살랑대는 강변도로를 달리는 것. 문장이 깔금하고 내용이 잘 정돈된 책을 읽는 것은 이런 것들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비유할 수 있을까.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이 그러했다. 원제는 [플라톤과 함께 운전하기(Driving with Plato)]인데 원저명은 플라톤을 내세우면서도 좀 가벼운 느낌을 주려한 반면 번역서 제목은 철학을 직설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좀 더 울림을 주는 쪽으로 작명됐다. 둘의 차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의 이력도 화려하다. 알랭 드 보통과 함께 런던의 시민 교육 기관인 '인생 학교(The School of Life)'를 설립했다는 것만으로도 귀가 솔깃한데, 옥스퍼드 대학교의 올소울스 칼리지(All Souls College)의 7년 연속 우등생 장학생이었단다. 올소울스 칼리지의 일원이 되려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한단다. 한마디로 천재다.


책은 태어남에서부터 내세까지 '인생의 20가지 통과의례'의 의미를 풀어낸 철학적 에세이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평이하게 해설해 나가되 철학자 한두명의 견해를 끌어온다. 플라톤이 자동차 옆자리에 앉아서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차를 몰고 나온 나에게 운전면허의 의미를 조곤조곤 일러준다고 할까.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마다 철학이 무엇이지에 대한 이야기가 다르니 철학이 무엇인가부터가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철학 핵심에 있다는 것은 부동의 사실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간만에 맛좋은 책을 먹었으니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다.


'교육(education)'이라는 말은 원래 '끌어낸다'는 뜻이다. 즉 늪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끌어낸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인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의 용어로 말하면, 학교 가기는 국가에 의해 구조되고 복원되는 것, 나아가 학교의 강력한 지배에 복종하고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는 것을 뜻한다. 언뜻 보기에 학교는 그게 전부인 듯하다(알튀세는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는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학교는 훨씬 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3.학교, 46쪽)


어떤 의미에서 학교에서는 우리의 정체성이 분열된다. 알튀세의 동료 철학자인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타자로서의 자신이 된다. (3.학교, 51쪽)



자전거 배우기의 특징은 처음에 자전거를 잡아주던 사람이 얼마 안 가 손을 놓는다는 점이다. 자전거 타기를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그것은 순전히 의심과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그것을 전혀 다른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는 그것을 종교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아무리 열심히 추론한다 해도 그것이 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어떤 지점에서 우리는 추론을 버리고 비약해야 한다. 말하자면 '신앙의 도약'이다. (4.자전거, 64~65쪽)




시험은 깔대기와 같다. 윗부분은 누구나 노려볼 수 있을 만큼 넓지만 아래는 무척 좁아 소수의 후보자만 통과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시험이란 가장 민주적이면서도 가장 비민주적인 메커니즘이다. 능력주의는 어느 정도까지 민주주의와 함께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민주주의에 등을 돌려버린다.

현대 사회학을 정립한 막스 베버(Max Weber)가 고민한 것도 그런 역설이다. 그는 사람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한편으로 시험은 명사들이 관례로 거치는 게 아니라 각계각층 출신의 자격 있는 인원을 선발하는 과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능력제도와 교육 수료증이 '카스트' 같은 특권층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5.시험, 80쪽)


그러므로 시험의 진정한 기원은 민주주의나 능력주의가 아니라 관료주의에 있다. (5.시험, 81쪽)




자크 데리다는 성모 마리아가 입은 파란 옷과 같은 '막'에 주목하고, 처녀막이 외부 세계와 내부 성소를 가르는 장벽의 특별한 사례라는 해석을 선보였다. 데리다는 니체의 사상을 빌려 서구 사상사를 통틀어 여자와 진리 사이에는 은유적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둘 다 자명하지 않고, 곧바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와 여성은 앞에 장막 또는 처녀막이 있기 때문에 남성이 그 의미를 파헤치려면 섬세한 책략이 필요하다. (7.순결의 상실, 115쪽)



운전면허의 취득을 '소극적 자유', 운전을 '적극적 자유'에 비유할 생각을 도대체 어떻게 떠올렸을까? 


운전면허를 따고 석양 속으로 운전하는 것은 '소극적 자유'다. 즉 다른 사람들이 나를 성가시게만 하지 않으면 자유롭다는 생각이다. 이 관념은 라트비아 태생의 철학자이자 이야기꾼인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과 관련된다. 그는 전체주의의 위협을 받은 20세기에 새로운 자유를 구상한 바 있다. 소극적 자유는 그 명칭이 말하듯이 초보적인 자유다. 그저 구속만 없애도 얻을 수 있다. 이를테면 도로의 기본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을 경우다.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을 때가 그렇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면 구체적인 것을 얻었다기보다 그냥 넓은 세계를 앞둔 것이다. 해결책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문제를 제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선택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져 오히려 성가시게 느낄 수 있다. 소극적인 동시에 부정적인 자유이므로 그다지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다.

반면 적극적 자유에는 어느 정도 책무가 따른다. 최대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부담도 그런 책무다. 적극적 자유는 기회를 포착하고 낭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과감하게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운전은 말 그대로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에 적극적 자유의 적절한 사례가 된다. (8.운전면허, 131~132쪽)




첫 투표자의 이상주의와 기성세대의 현실주의는 폭넓은 이념에 대한 투표와 한정된 정책에 대한 투표 간의 대조를 이룬다.……정치인들은 세율 조정, 도로 건설, 교육 제도의 개혁 등 최신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첫 투표자들의 관심은 대개 정책에 있지 않다. 닳고 닳은 유권자는 새로이 부과되는 재산세에 촉각을 곤두세울지 몰라도 신참 유권자는 이러저러한 제안의 배후에 있는 것을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이 어떤 기질(ethos)을 가졌고 얼마나 성실한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9.첫 투표, 145쪽)


9·11 사태는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것 이외에도 민주주의와 평화가 영원히 만개하리라는 견해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로 인해 광범위한 트라우마가 발생했고 평화의 정반대인 대테러 '전쟁'으로 치달았으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재천명해야 했다." 자유에 관한 서구의 담론을 살펴보면 9·11을 계기로 서구적 믿음을 수정해야 한다고 여긴 게 아니라 그 사건을 일종의 탈선, 전 세계 민주주의가 필연적인 승리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으로 해석했다. (9.첫 투표, 150쪽)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에 의하면 취직은 일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자신의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일과 천직의 구분보다 일과 노동의 구분에 더 천착한 그녀는 후자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유추했다. 동물은 오로지 생산성을 위해, 즉 가족을 위한 먹이를 찾기 이해 노동하며, 생존 이상의 결과를 추구하지 않는다. 먹이를 얻으면 일은 끝난다. 그와 반대로 인간의 특징은 일하는 능력 자체에 있다. 일은 노동의 요소를 포함하지만(우리도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으므로) 그것은 단지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한 일의 기반일 뿐이다. 그래서 아렌트는 '아니말 라보란스(animal laborans, 일하는 동물)'로 부터 '호모 파베르(homo faber, 물건을 만드는 인간)'로의 진보를 이야기한다. 아니말 라보란스는 사물을 직접적인 용도, 주로 먹이와 관련된 용도로 대하는 반면(지빠귀는 흙에서 벌레를 잡고 곰은 시내에서 연어를 낚는다) 호모 파베르는 원래 용도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물건을 만들고, 비축해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것과 교환하기도 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환을 매개로 호모 파베르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한다. 이리하여 공공 영역이 개발된다.…

아렌트가 시사했듯이 취직은 단지 돈의 문제만 해소하는 게 아니다. 취직은 목적의식을 부여하며, 자신도 남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의미에서 '완전 고용'은 정치적 의무이자 도덕적 의무다. 개인적 차원에서 취직은 유용한 시민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10.취직, 158~164쪽)




중세에는 보통 마흔이면 죽었으므로 중년의 위기라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백 살까지 살고 예순 살까지 일한다고 가정할 경우, 정의하기도 어렵고 문화적으로 정해진 형태도 없는 인생이 40퍼센트나 남게 된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의 수명을 늘려주면서도 그 삶을 잘 이용하기 위한 수단은 제공하지 않는다. 마치 정년퇴직자 주택을 건설하면서도 부수 시설인 상점이나 영화관은 짓지 않는 부동산 개발자들과 같다. (15.중년의 위기, 232쪽)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 10점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지음, 남경태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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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는 경제의 과도한 금융화에 대한 경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사실 장 교수의 주장이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는 몇년 있으면 20주년이 되지만 여전히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고, 그로부터 10여년 뒤 발생한 9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세계를 대공황의 패닉에 몰아 넣었다. 경제학자들, 경제관료들은 더이상 대공황은 없다고 자신해왔지만 이게 실은 허언에 불과했다는 걸 사람들이 깨달은 것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10점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불행하게도 사상적으로는 산업화 후 사회의 담론이 힘을 얻고, 실생활에서는 금융 부문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제조업에 대한 무관심은 근래에 와서는 경멸로까지 바뀌었다. 새로운 '지식 경제' 사회에서 제조업은 저임금 노동력을 주무기로 하는 개발도상국에서나 하는 저급한 활동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새로운 사회 또한 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산업화 후 사회에서도 이른바 새로운 경제의 동력이라고 여겨지는 서비스 산업은 역동적인 제조업 부문의 뒷받침 없이는 융성할 수 없다. 서비스 산업이 주도해 번영을 이룬 경제의 대명사라고 생각하는 스위스와 싱가프로가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된 세 나라 중 두 나라라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이다.

(7장 세상 모든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66~267쪽)




통화 선물과 스톡옵션은 1970년대부터 시카고상품거래소를 통해 거래되었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파생 상품 시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2년 역사적인 변화가 왔다. 그해 두 개의 중요한 미국 금융 규제 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현물선물거래위원회(CFTC)가 파생 상품 계약의 결제를 원래 근거가 되었던 제품(예를 들어 쌀, 원유 등)으로 하지 않고 현금으로 해도 된다고 합의한 것이다.

새 규칙 덕분에 현물이나 특정 금융 자산 이외에도 물리적으로 절대 지급 수단이 될 수 없는 주가 지수 같은 '명목상'의 것들에서 파생된 파생 계약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파생 계약의 한도를 제한하는 것은 사람들의 상상력뿐이었다.

(8장 피델리티 파두시어리 뱅크에 난리가 났어요 290쪽)



이 정보 과다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적 모델이 개발되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좋게 말하면 매우 부족한 정도였고 최악의 경우에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잘못된 안전감만 안겨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모델들에 따르면 2008년 위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복권에 연달아 스물한 번 내지 스물두 번 당첨될 확률과 맞먹는 것으로 나온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교묘하게 상품을 묶고 구조화하고 파생 상품을 디자인해도 결국은 플로리다에 사는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 대출자나 나고야의 중소기업, 자동차를 사려고 대출 받은 낭트의 젊은이가 돈을 갚아야 한다는 전제가 이 모든 새로운 금융 상품의 근저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스템 안의 서로 다른 부분을 긴밀하게 연결한 금융 상품이 만들어지면서 최초로 돈을 빌린 사람이나 중소기업이 돈을 갚지 못한 데 따른 부작용이 시스템 전체로 훨씬 격렬하게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8장 피델리티 파두시어리 뱅크에 난리가 났어요 294~295쪽)



금융은 복잡하기 그지 없긴 하지만 인간의 활동이다. 물론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 금융인의 활동을 일반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자료를 읽고 전문가의 도움말을 들음으로써 적어도 추상적으로나마 핵심은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도한 금융화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경향신문이 장기간 연재했던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시리즈가 겹쳐졌다. 경제라는 말만 나오면 겁을 집어먹던 나였지만 당시 이 방대한 기획에 참여하면서 장 교수가 반복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참고 삼아 당시 기사 몇개를 갈무리 해 올린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0811261757075&code=920100&med=khan


앞에 인용한 부분에서 장 교수는 '플로리다에 사는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 대출자나 나고야의 중소기업, 자동차를 사려고 대출 받은 낭트의 젊은이'를 언급했는데,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는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면 이해가 된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0812141816145&code=920201&med=khan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파생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이다. 툭하면 영어 약자를 동원하는 파생 상품은 일부러 일반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후배는 아래의 기사를 쓰기 위해 근 두달 가까이 자료를 뒤지고 전문가들을 쫓아다녔다. 그 결과로 나온 기사는 그간 내가 파생 상품에 대해 본 어떤 설명보다 쉬우면서도 핵심을 잘 포착하고 있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0812231753185&code=920100&med=khan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0812231749015&code=920100&med=khan


이 시리즈는 나중에 <세계 금융위기 이후>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 10점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는 다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밑줄치기다.


이런 맥락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특히 중남미에서 인기를 누린 좌파 '해방신학'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브라질 올린다-헤시피 지역의 대주교 돔 헬더 카마라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른다. 왜 그들에게 음식이 없는지를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 부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약간은 '공산주의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만큼 절박하게 만든 환경을 용인한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10장 일을 해 본 사람 몇 명은 알아요 341쪽)




정부 실패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국가를 구석으로 밀어내고 중앙은행과 같이 꼭 필요한 기구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해 경제를 탈정치화하는 것이 좋은 생각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하는 '정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민주 국가에서 정치란 국민이 끼치는 영향력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1원 1표' 원칙으로 움직이는 반면 민주 정치는 '1인 1표' 원칙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민주 사회에서 경제를 탈정치화 하자는 것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

(11장 리바이어던 아니면 철인 왕? 381쪽)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에 실시한 한 여론 조사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는 사람들에게 어느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물은 다음 거기에 덧붙여 왜 상대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지도 물었다. '다른 쪽'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나온 답 중의 하나는 상대방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답은 부시 지지자와 고어 지지자 모두 공통적이었다.

미국 유권자들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자리에 정치에 서투른 사람을 앉히겠다고 생각한 걸가? 물론 아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정치적'이라는 말이 좋지 않는 표현이 되었고, 따라서 정치인을 '정치적'이라고 부르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는 데 아주 효과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11장 리바이어던 아니면 철인 왕? 389쪽)


(끝)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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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경제(經濟)'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다. 사전은 경세제민의 뜻을 '세사(世事)를 잘 다스려 도탄(塗炭)에 빠진 백성(百姓)을 구(求)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경제를 뜻하는 영어 단어 '이코노미(economy)'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무스(Oeconomus, œconomus, oikonomos)'에서 유래했는데 오이코노무스는 집(house)을 뜻하는 '오이코(oiko)'와 관리·지배(rule·law)를 뜻하는 '노모스(nomos)'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코노미는 집 관리 즉, 이재술(理財術)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 후배는 경제학이 뭐냐는 내 아들의 질문에 대해 위와 같은 동서양의 경제의 개념 차이를 얘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우리 선생님이 경제가 경세제민의 줄임말이라고 하면서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하는 학문이라고 했걸랑. 삼촌은 그래서 경제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서 보니까 경세제민의 경제와 이코노미의 경제가 다른 것 같더라. 경세제민의 경제는 훨씬 뜻이 넓고 사람과 사회에 관한 학문이라는 뜻인데, 이코노미의 경제는 돈을 벌고 분배하는 등 돈에 집중하는 측면이 강하지."


초등학생 내 아들이 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내 아들보다 내가 더 많은 생각을 했다.


경제는 이처럼 동서양에서 어원이 다를뿐 아니라 자본가와 노동자, 국가와 시민사회, 부자와 빈자 등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도 영 딴판으로 바라보는 대상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선 경제라는 용어는 정치적으로 곤경에 몰린 정부·여당이  반대파의 비판을 잠재우는 마법의 주술로 사용되거니와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누르고 반격하는 무기로도 쓰인다.


세월호 참사의 제대로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단식농성을 마치 정치적으로 불순한 세력의 조종을 받은 '이적행위'인 것처럼 보도하던 한 신문은 얼마 전부터 신문 각 페이지 머리의 제호 옆에 '경제를 살립시다'란 구호를 새겨 넣었다. 그 신문의 제호에선 '경'자나 '제'자가 보이지 않으니 형제나 가족이 아닐진대 각 페이지마다 제호 옆에 경제를 살리자고 새겨넣을 정도로 애타게 부르짖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정치학자들이 경제학자들을 조롱할 때 쓰는 우스개가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이야기를 응용한 것인데 경제학자들에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을 물어보면 "일단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었다고 가정하자"라고 한단다. 복잡하고 유동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과 인간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면서도 마치 자연과학을 하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숟한 가정을 남발하는 경제학자들을 조롱하는 것이다. 비슷한 조크가 무인도에 홀로 표류한 사내가 통조림을 발견했는데 이걸 열 도구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학자의 답은 '일단 뚜껑을 열었다고 가정하자' 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몸담고 있는 장하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선 진보와 보수로부터 동시에 환영과 함께 비판을 받는 학자이다. 경제의 과도한 금융화를 경계하고 제조업을 강조한다는 면에선 진보 진영의 환영을 받지만 국가주도 성장을 강조한다는 점에선 비판을 받는다. 장 교수의 논리가 '박정희 개발독재'를 승인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점은 반대로 보수 측의 환영을 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장 교수의 책들은 스테디셀러가 많다. 몇해전 내놓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다. 그는 뚜렷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겁을 먹기 마련인 경제적 개념들을 쉽게 서술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장 교수는 영어로 먼저 책을 쓰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특징도 있다.


장 교수는 앞서 말한대로 제조업의 중요성, 제조업 육성을 위한 산업정책의 필요성, 경제의 과도한 금융화에 대한 경계 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는데 작년 여름 국내 출간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도 비슷하다. 제목이 '경제학 강의'인 것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장 교수는 이번 책에서 경제학의 각종 개념들, 다양한 경제학파들을 설명하고 있다. 영어 원제는 <Economics> 부제는 'The User's Guide'다. 우리말로 하자면 '사용자를 위한 경제학 설명서' 정도 되겠다. 장 교수가 경제학의 제 개념과 학파들을 설명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를 단 하나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단 하나'의 시각이란 1980년대 말 이후 주류로 군림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즉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지칭한다는 것은 책 곳곳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10점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고전주의 학파

한 문장 요약 - 시장은 경쟁을 통해 모든 생산자를 감시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


고전주의 학파는 경제 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추구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국부의 극대화라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고전주의 학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이른바 '세의 법칙'을 신봉했다. 이 법칙은 모든 경제 활동이 생산물의 가치에 해당하는 임금, 이윤 등의 소득을 수반하기 때문에 수요 부족으로 인한 불황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모든 불황은 전쟁이나 대형 은행의 파산 같은 외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시장은 그 성격상 불황을 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가령 정부가 의도적으로 적자 지출을 하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4장. 백화제방 119~120쪽)





신고전주의 학파

한 문장 요약 - 각 개인은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행동하므로, 시장이 오작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만 놔두는 것이 좋다.


고전주의 학파가 뚜렷이 다른 계급들이 모여 경제를 구성한다고 생각한 데 반해 신고전주의 학파는 경제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고전주의 학파는 경제학의 초점을 생산에서 소비와 교환으로 옮겼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경제 체제를 '독립 의지를 가진'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궁극적으로 돌아가는 교환 관계의 그물로 본다. 실제 생산 과정이 어떻게 조직되고 변화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거의 없는 것이다.

(4장 백화제방 124~126쪽)





마르크스 학파

한 문장 요약 - 자본주의는 경제 발달의 막강한 동력이지만, 사유 재산이 더 이상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면서 저절로 무너질 것이다.

(4장 백화제방 131쪽)


개발주의 전통

한 문장 요약 - 후진 경제에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놓으면 개발이 불가능하다.

(4장 백화제방 137쪽)


오스트리아학파

한 문장 요약 - 모든 것을 충분히 아는 사람은 없으므로, 아무한테도 간섭하면 안 된다.

(4장 백화제방 142쪽)


(신)슘페터 학파

한 문장 요약 - 자본주의는 경제 발달의 막강한 동력이지만, 기업이 대형화되고 관료주의화하면서 쇠락하게 되어 있다.

(4장 백화제방 145쪽)





케인스학파

한 문장 요약 - 개인에 이로운 것이 전체 경제에는 이롭지 않을 수도 있다.


케인스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간인의 가정에서 통하는 신중한 선택이 왕국 전체에 통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는가."라는 애덤 스미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케인스는 이런 견해를 반박하면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자동으로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서 실업자, 가동을 쉬는 공장, 팔리지 않는 물건이 공존하는 상황이 오랜 기간 계속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놀랍게도 이 불확실성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 임기 동안 국방 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이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브리핑하는 기자 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알려진 기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려진 미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들 말이다." 이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unknown unknown)'라는 표현이야말로 케인스의 불확실성 개념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케인스에 따르면 이것이 금융 시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군중 심리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금융 시장은 금융 투기와 거품, 그리고 거품이 꺼지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서 그가 투기의 힘으로 돌아가는 금융 시스템의 위험을 경고한 것은 유명하다. "기업이 큰 물줄기를 이루고 투기가 그 위를 떠다니는 거품일 때는 투기도 별다른 해가 없다. 그러나 기업이 투기라는 소용돌이 위에 떠다니는 거품이 된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한 나라의 자본 개발이 도박의 부산물로 생긴 것이라면 작동을 잘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4장 백화제방 149~153쪽)





제도학파: 신제도학파? 구제도학파?

한 문장 요약 - 개인이 사회적 규칙을 바꿀 수 있다 해도 결국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다.


제도학파의 탄생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명성을 얻은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은 본능, 습관, 신념 등 여러 층의 동기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성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층이라고 주장했다. 또 인간의 합리성은 시공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하는 특정 개인을 두러싼 공식적 규칙(법, 기업 내규 등)과 비공식적 규칙(사회 관습, 상거래 관습 등)으로 이루어진 제도에 의해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사회 제도는 구성원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구성원들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그렇게 변화한 구성원들이 다시 제도를 바꾸게 된다고 베블런은 믿었다.

(4장 백화제방 154~155쪽)




행동주의 학파

한 문장 요약 - 인간은 충분히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규칙을 통해 의도적으로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4장 백화제방 159쪽)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적 논쟁을 대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Cui bono(누가 이득을 보는가)?" 로마의 정치인이자 유명한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이다.

(에필로그 그래서 이제는? 435쪽)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경제학을 '하는' 데 옳은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세계 경제학을 지배한 신고전주의적 접근법을 비롯해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지닌 경제학파가 적어도 아홉 개 이상 존재한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를 특정 이론의 관점에서만 보면 특정 질문만 하게 되고, 특정한 각도에서만 답을 찾게 된다.

(에필로그 그래서 이제는? 437쪽)


해리 S. 트루먼은 특유의 촌철살인 화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문가란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더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뭘 더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그래서 이제는? 440~441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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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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