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역시 제목이 좀 뻥튀기 됐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지은이가 분명히 케인스와 프로이트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현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을 무자비하게 까고 있긴 하다. 하지만 케인스와 프로이트라는 걸출한 인물 사이의 뒷얘기 같은 흥미 위주로 접근하기 보다는 반자본주의 철학 에세이를 방불케 한다. 따라서 제목만 보고 케인스와 프로이트 사이의 학문적 교류와 끈끈한 우정 등등을 기대한다면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책 제목은 분명히 그런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출판사의 노림수가 보이는 대목이다.
이번에 배운게 있다면 이런 책을 접할 때는 일단 제목에 등장하는 소재를 다루는 부분을 먼저 훑어봐야 한다는거다. 책의 절반은 지적재산권이 과연 경쟁과 혁신을 저해하는가, 자본주의는 왜 유럽에서 발생했는가, 기업가란 누구인가, 종교와 자본주의는 양립가능한가 등등의, 어찌보면 경제학계 내외부에서 다뤄질 법한 주제들을 두루 훑고 있다. 좋다. 하지만 케인스와 프로이트 얘기는 언제 나오는거지? 이런 의문과 호기심이 조급증을 일으키고 짜증이 슬슬 일기 시작할 즈음 드디어 케인스와 프로이트 얘기가 나온다.
서평에도 썼지만 이건 원저자의 잘못이 아니다. 원저자가 제목에서 케인스와 프로이트를 표방한 건 아니니까. 책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면 경제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어도 찬찬히 뜯어보면 이해가 갈 정도이다. 다만 인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이어서 좀 생소한 느낌도 든다. 프랑스에서 대중적으로 꽤나 인기를 끌고 있는 경제학자 겸 저널리스트인 것 같은데 풍자가 볼만 하다. 우리 출판계는 아무래도 영미권 저자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간만에 프랑스 지식인의 글맛을 본 것 같다. 상대적으로 쉽게 쓴 글 같지만 스타일이 영미권 저자들과는 꽤나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평을 쓰는데 적잖이 어려움을 겪었다. 전체를 읽고 나니 줄거리는 잡히는데 그걸 한줄에 꿰어내기가 간단치 않았다. '도와줘요!'를 외치고 싶은 싶정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요긴한 내용을 발견했다. 홍기빈 선생이 작년에 나눔문화란 곳에서 강연을 한 것을 기록해 둔 것인데 이 책의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거의 다 담고 있다. (*참고 홍기빈 선생 강연 요약)
요즘들어 자본주의 체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문제들을 근본에서부터 공격하는 저작들이 빈번하게 나온다. 다양한 갈래지만 결국 핵심 문제의식은 칼 폴라니의 그것-자기조절적 시장이란 없다, 시장은 역사의 산물일뿐이다-에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인 베르나르 마리스는 2008년에도 한권이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번역자에 의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앞서 나온 것과 이번에 나온 책은 원래 프랑스에서 같은 제목의 1권과 2권의 책으로 나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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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경제학 - ![]() 베르나르 마리스 지음, 조홍식 옮김/창비(창작과비평사) |
-자본주의 사악한 작동원리 해체…예술·우정 등 삶의 질을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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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 ![]() 베르나르 마리스 지음, 조홍식 옮김/창비(창작과비평사) |
케인스(1883∼1946)가 프로이트(1856~1939)를 숭배했다니? 두 사람 모두 천재적인 사상가이지만 한 사람은 경제학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자인데 둘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이 있었던가? 혹시 케인스에게 동성애적 취향이 있었기 때문에 성적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접근했던 프로이트와 연관됐던 것은 아닐까? 프랑스 파리8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서문에서 '자본주의라는 모험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자멸을 택한 것일까?'라고 묻고 '케인스와 슘페터처럼 프로이트에 심취했던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답함으로써 야릇한 날개를 펼치려던 상상을 접게 만든다.
**관련 이미지로 소개한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은 책 속에 소개된 바 있는 그림이다. 아마도 번역서를 만들면서 편집자가 관련 도판을 삽입한 듯 하다. 이 그림의 소장처가 프라도 미술관인데 처가 이걸 보더니 "어? 나 프라도 미술관 가봤는데! 이런 그림이 있었나?"라고 한다. 쾌락의 정원이라는 흥미있는 그림에 대한 설명은 이 블로그에 자세하게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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