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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날이 추워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벛꽃이 피었다고 신문에 사진이 실렸다. 아닌게 아니라 겨울도 한참 겨울인데 올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다. 비가 와야할 때 오지 않아서, 더워야 할 때 덥지 않아서, 추워야 할 때 춥지 않아서 걱정인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최근 파리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열렸다는데, 기후변화의 위협은 점진적이어서 각 나라와 개인의 대처는 굼뜨기만 하다.


<동물농장>은 풍자소설이지만 슬프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암퇘지 스퀼러였다. 스퀼러는 독재자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의 전횡이나 모순이 드러나면 그럴듯한 거짓말과 선전선동으로 동물들의 논리와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의 언변과 설득력은 대단해서 동물들의 기억을 조작해내기까지 한다.


스퀼러는 소련 공산당의 기관지였던 '프라우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도 언어가 인민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동물농장>에서도 인민이 공적 영역에 관한 정보를 접하는 주요 원천은 언론이며 언론이 어떤 사항을 왜곡하기로 작정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련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지금 언론은 스퀼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동물농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민음사


<1장>


(전략)


곧 그날이 오리,

독재자 인간이 쫓겨나고

잉글랜드의 기름진 들판이

짐승들의 것으로 돌아오는 그날이.


우리들의 코에서 코뚜레가 사라지고

우리들의 등짝에서 멍에가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잔혹한 회초리도 없어지리라.


상상조차 못 할 부유함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

클로버와 콩과 사탕무가

모두 우리 것이네, 그날이 오면.


(후략)


<3장>

돼지들은 직접 일은 하지 않는 대신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휘했다. 아는 게 많았기 때문에 돼지들이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마침내 동물들은 과거 존스와 그 일꾼들이 했을 때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수확을 끝냈다. 게다가 이번의 건초 수확은 농장이 생긴 이후 최대의 것이었다. 낭비는 전혀 없었다. 암탉과 오리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다가 마지막 풀 줄기까지 모두 챙겨다 모았기 때문이다. 풀 도둑질도 없었다. 농장의 어느 동물도 한 번 입가심할 만큼의 풀조차 훔치는 일이 없었다.


………


왜 그래야 하는지를 다른 동물들에게 설명하느라 언변가 스퀼러가 파견됐다.

동무들, 여러분은 설마 우리 돼지들이 저들끼리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또는 무슨 특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겠지요? 사실은 우유, 사과를 싫어하는 돼지들도 많아요. 저도 싫어합니다. 그런데도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가져가는 것은 건강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 돼지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동무들, 이건 과학적으로 밝혀진 일입니다. 우리 돼지들은 머리 쓰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 돼지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여러분의 복지를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돼지들이 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어찌되는지 아십니까? 존스가 다시 오게 돼요. 존스가! 그래요, 존스가 다시 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동무들.


<5장>

그의 연설이 끝났을 즈음에는 표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가 이미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폴레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 특유의 곁눈질을 스노볼에게 한 번 던지고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에게서 들어 본 적 없는 날카로운 소리를 꽥 하고 내질렀다.

그러자 밖에서 마치 사냥감을 몰 때 개들이 짖는 무시무시한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더니 목걸이에 놋쇠 장식을 더덕더덕 붙인 커다란 개 아홉 마리가 헛간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개들은 스노볼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 스노볼은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나 개들의 이빨을 피해 도망쳤다. (중략) 동물들은 소리 없이 겁먹은 얼굴로 다시 헛간 안으로 들어왔다. 쫓던 개들이 이내 돌아왔다. 처음 동물들은 그 개들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몰랐으나 곧 내력을 알게 되었다. 개들은 나폴레옹이 암캐 제시아 불루벨에게서 떼어다 몰래 키운 바로 그 강아지들이었다. 아직 다 큰 건 아니었지만 개들은 몸집이 크고 늑대처럼 사나워 보였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들이 나폴레옹에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은 지난날 농장의 개들이 주인 존스에게 꼬리 치던 모습 그대로였다.


<6장>

숨을 헐떡이며 미끄러지지 않게 발굽으로 땅을 단단히 밟고 허리는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 한 발 한 발 비탈길로 돌덩이를 끌어 올리는 그의 모습은 동물들에게 경탄의 대상이었다. 이따금 클로버는 그런 복서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복서는 듣지 않았다. 그의 두 가지 슬로건인 "내가 더 열심히 한다"와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가 그에게는 모든 문제에 대한 충분한 해답 같아 보였다.


………


이건 스노볼의 짓이오. 그 반역자는 앙심을 품고 우리 일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당한 부끄러운 추방을 앙갚음하기 위해서 야음을 타고 여기 숨어들어 우리가 근 1년 동안 공들여 세운 풍차를 파괴한 겁니다. 동무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스노볼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바이오. 누구든 그를 처단하는 자에게는 '동물 영웅 이등 훈장'과 사과 반 부셀을 주고 생포해 오는 자에게는 사과 한 부셀을 주겠소.


<7장>


정말 모를 일이야. 이런 일이 우리 농장에서 일어나다니. 우리 자신이 뭔가 잘못돼 있어. 내 상각으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아. 지금부터 난 아침에 한 시간 먼저 일어나야겠어.


<8장>

며칠 후, 처형이 몰고 왔던 공포가 다소 누그러지면서 일부 동물들은 '일곱 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이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명령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거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돼지들과 개들이 듣는 자리에서는 아무도 감히 그 얘길 꺼내 놓지 못했지만 동물들은 며칠 전 있었던 동물 살육이 아무래도 그 여섯 번째 계명에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중략) 뮤리엘이 여섯 번째 계명을 읽어 주었다. 계명은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로 되어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그 "이유 없이"라는 두 단어를 동물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 무렵,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하나 벌어졌다. 어느 날 밤 자정께 마당 쪽에서 쿵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고 무슨 일인가 싶어 동물들이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달 밝은 밤이었다. '일곱 계명'이 씌어 있는 헛간 끝 벽 아래 사다리 하나가 두 쪽으로 부러져 있고 잠시 정신을 잃은 스퀼러가 사다리 옆에 자빠져 꿈틀대고 있었다. 곁에는 등불, 페인트 붓, 넘어진 흰색 페인트통 등이 나뒹굴었다. (중략) 며칠이 지나 염소 뮤리엘이 '일곱 계명'을 읽어 보다가 동물들이 그 계명 중의 하나를 또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다섯 번째 계명이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라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동물들은 두 단어를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벽에 씌어진 다섯 번째 게명은 이런 것이었다. "어떤 동물도 '너무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


<10장>


일곱 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그 후로는, 이를테면 다음 날 농장 일을 감독하러 나온 돼지들이 하나같이 앞발굽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드래곤. 2011년 1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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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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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 선생의 자전 에세이가 손에 들어 왔다. 연속으로 나오는 단행본인 모양인데, 뒷날개를 보니 앞서 천양희 시인의 자전 에세이가 나왔다.


대학 다닐 때 '문청'들로부터 오탁번 선생의 이름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문청'도 아니었고, 그 학과도 아니었으니 그럴 일은 없었지만.


동화, 소설, 시로 각각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이름을 올린 오탁번 선생은 시에 쓰이는 '말'을 무척이나 강조하는데, 1980년대 강단에서 학생들과 논쟁을 꽤 벌였을 듯 하다. 칠순이 넘었는데도 책을 보면 그는 여전히 꼬장꼬장해 보인다.



작가수업 오탁번 : 병아리 시인 - 10점
오탁번 지음/다산책방



 장자(壯者)에 포정해우(포丁解牛)라는 말이 나온다. 포정이라는 사람은 소를 수십 년 동안 잡았는데도 소 잡는 칼이 하나도 녹슬거나 무뎌지지 않아 금방 숫돌에서 갈은 것 같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연유를 묻자, 소 뼈다귀는 보이지 않는 틈새가 있고 잘 갈은 칼은 두께가 없는 법이니 그 칼로 소 뼈다귀의 틈새를 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인이 언어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이다. 언어가 지닌 속살을 왜곡하지 않고 시어로 차용할 때 비로소 시적 상상력과 언어가 운명적 해후를 하게 되는 것이다. (109쪽)


 나는 아직도 우리말을 첫걸음마부터 배우는 혀 짧은 아기다. 시 한 편을 쓸 때마다 줄잡아서 국어사전을 서른 번을 펼친다. 이처럼 나는 아직도 습작을 하는 병아리 시인이다. (117쪽)


 나는 적극적으로 교수의 틀을 탈피하려고 했다.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 체질이 그러했다. 죽어 있는 문학강의가 아니라, 살아서 펄펄 뛰는 문학 그 자체를 만나는 것이 진정한 문학강의라고 굳게 믿었다. 창작론 시간에는 창문 쪽 자리는 아예 흡연석으로 지정해주고 강의를들으면서도 마음대로 담배를 피우게 했다. 시를 강평할 때 담배 한 대 꼬나물고 해야 제맛이 나는 것 아닌가. 대학 건물 전체가 금연지역으로 지정되어 ‘금연’ 표지가 붙어 있었지만, 나는 내 멋대로 였다. 나는 물론 정녁퇴직할 때까지 강의를 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153쪽)


 시는 언어예술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이 ‘언어’에 유의해야 한다. 그림이 색깔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고 음악이 소리를 이탈하고 형성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도 언어를 도외시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시 작품에 등장하는 그림이나 사진, 도표도 시 작품 속에서 ‘언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들이 작품 속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효과가 언어와 동등한 의미로 작용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시의 언어는 하나의 낱 언어만이 아니라 그것들이 상호 이어지면서 교직해내는 말의 집합과 연속을 의미한다. (178쪽)


 시는 대단한 세계관을 엄숙하게 선언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시인들이 꽤 많다. 법조문에나 나올 법한 언어들을 분별없이 남발하고 고상한 수사로 칠갑을 하여 마침내 시를 내용 중심으로 주제파악에 골몰하게 만ㄷ르어서 종당에는 시는 지겨운 문학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게 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시는 하나의 말의 놀이이다. 말이 사물과 관념을 표상하여 본디의 사물이나 관념보다 더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재현되는 것, 그리하여 더욱 또렷이 각인되는 예술행위인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우스개도 그 안에 말의 기막힌 묘미가 살아서 숨을 쉬는 경우가 있다. 죽어 있는 말이 아니라 팔딱팔딱 뛰는 활어처럼 날비린내가 확 풍기는 진짜 ‘시어’가 있는 것이다. (194쪽)





(2011년 11월11일, 경주)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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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책을 닥치는대로 보긴 하지만 근래 갈무리한 책들이 중구난방이다. 게다가 주요 독서시간이 버스타고 이동하는 시간이다보니 부담이 적은 짧고 가벼운 책들이 손에 들어온다.


최재천 교수. 워낙 유명한 인물이어서 더 설명을 보탤 게 없다. 그의 고향 강릉 이야기는 내가 유일하게 통독한 그의 수필집 <열대예찬>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경복중-경복고-서울대-미시건대-하버드대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주류 인사로만 알았는데, 그가 살아온 인생의 솔기마다 이야깃거리가 솔찮게 많은 줄은 몰랐다. 그를 수식하는 '시인을 꿈꿨던 동물학자'가 그저 멋부리용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나는 최재천 교수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분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꼽아보라면 통섭(consilience)과 진화론과 제인 구달일 것이다. 그는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번역하고 한국에는 없던 통섭이라는 용어를 번역어를 고안했다. 그래서 통섭의 저작권은 상당 부분 그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과 제인 구달을 그가 전유(專有)해 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왠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저명한 사회생물학자(그가 가장 선호하는 호칭이라고 한다)이기에 진화론은 그의 강력한 학문적 기반이고, 세계적인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 역시 그의 연구영역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진화론에 대해 대중이 갈수록 귀를 기울이고, 제인 구달이 한국에 올 때마가 항상 그가 가이드 또는 '호위무사'처럼 동행하는 것 같이 비춰지면서 진화론과 제인 구달에 대해 일종의 독점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억울해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감정은 사적인 인상 비평이기에 어떤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이런 느낌이 '오해'로 판명되기를 바란다.


다음은 책 이야기. 양장제본을 한 이 책은 잡지를 표방하고 있는데 한 권이 한 인물을 다룬다. 앞서 이어령, 김부겸, 심재명, 이문열을 다루었다고 한다. 고급스런 제본과 화보, 그리고 여러편의 짧은 글들로 채워진 이 책은 마치 잘 단장된 블로그를 보는 듯 했다. 앞서 나온 책들은 보지 못했으나 최재천 교수를 다룬 5권을 보면 상당히 공을 들여 제작됐다. 재미난 형식의 잡지(또는 책)인 것만은 틀림없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5 최재천 - 10점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스리체어스



글 잘 쓰는 과학자로 유명하신데 비결이 있습니까?

“미국 유학 시절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영문과 교수님한테 문장 수업을 받았어요. 그분이 나중에 제가 박사 학위를 하러 다른 대학에 지원할 때 추천사를 써 주셨어요. 그 추천사가 저한테는 감격이었어요. ‘그는 경제적이고 정확하고 우아하게 쓴다He writes with economy, precision and grace.’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싶었죠. 이후로 머릿속에 그 세 가지를 박아 넣고 써요.”


.....


전문 분야일수록 쉽게 써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쉬운 내용이 아니라 쉬운 문장으로 쓰라는 뜻이죠. 리처드 도킨스가 그런 얘길 했어요. 과학의 대중화를 한답시고 글 쓰고 강연하면서 진짜 과학은 쏙 빼고 흥미롭게 포장해서 분위기만 띄우는 건 안 된다고. 저도 절대적으로 동의해요. 과학적 글쓰기가 그래서 힘든데, 내용은 충실하되 전달은 쉽게 해야죠. 아인슈타인도 그랬다고 하잖아요. 할머니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네가 모르는 거라고.


.....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화학자입니다. 150년도 더 된 진화론이 현대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두 가지로 얘기해 볼까요? 하나는 우리가 대체 지금 왜 이곳에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가장 탁월한 이론이기 때문이에요. 학문에는 물리학도 있고 사회학도 있고 법학도 있지만 모두 추리고 발라 뼈대만 남기면 지적 활동의 궁극은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거에요. 그 해답에 가장 접근한 이론이 다윈의 진화론이죠. 두 번째는 우리가 당면한 거의 모든 일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에요. 제 딴에는 그걸 유전자장遺傳子掌 이론이라고 표현해 봤는데, 결국 우리는 유전자 손바닥 안에 있다는 얘기예요. 인간이 고래처럼 바닷속에 몇 시간씩 머물 수 있나요? 안 되죠. 우린 몇 분만 지나도 익사하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 생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인간 사회의 여러 일들은 따지고 보면 진화의 결과물에 연결된 것들로 구성되어 있죠.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 삶을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에 가깝다는 생각이에요.” (인터뷰 중에서)



우리는 경쟁이 전부라고 서로를 세뇌시켜 왔습니다. 적은 양의 자원만이 남았으니 경쟁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쟁만 내내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룹별로 묶었을 때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생물이 뭘까요? 고래도 아니고 코끼리도 아닙니다. 바로 식물입니다. 개체 수로 따지면 누가 가장 성공했을까요? 바로 곤충입니다. 곤충과 식물은 항상 경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를 도우며 공생Symbiosis해 왔습니다. 공생에 의한 상호 작용이 생존을 위한 강력한 도구였고, 가장 경쟁력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예전 방식을 답습한다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현명한 인간이라며 붙인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포기하자고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은 할 수 있습니다. 이 행성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이니까요. (TED 강연 중에서)




(2008년 8월 과천 서울대공원)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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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며칠새 기온이 급속히 내려갔다. 이 정도 챙겨 입었으니 되겠지 싶어 밖에 나가면 서늘한 기운이 바짓가랑이 사이로, 겨드랑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는지도 모르고 잠들었다 깨어보니 11월의 첫날이다.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송년인사를 건네고, '해 넘기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는 사람들도 나오겠지.


남아있는 올해는 두달. 바늘 허리에 실 묶어 못쓴다고 올해 허둥지둥 일거리는 많았는데 아직 절반도 다 못마친 것 같다. 남은 기간에라도 최대한 숙제에 매달릴 수 밖에.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은 두께는 가벼운데 하필이면 갑작스레 서늘해진 날씨가 더욱 섬득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인 지은이는 TED 강연에서 자신의 사연을 담담하게 전했다. 그리 길지 않은 강연을 갈무리 한 것이라 스피디하게 읽히기는 하는데 제법 '쿨'하게 말하지만 말그대로 신산할 수 밖에 없었던 지은이의 삶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테러리스트의 아들 - 10점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문학동네



사람을 죽일 정도의 증오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에게 배워야 생겨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니, 그냥 가르침을 받아서도 아니고 강제로 세뇌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증오가 저절로 생긴다는 건 거짓이다.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안적 세계관을 거부당한 사람들에게 거듭 되뇌는 거짓말이다. 우리 아버지가 믿은 거짓말, 내게 전해주려 했던 거짓말이다. (25쪽)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죄로 수감되면서 내 삶은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또한 그 덕분에 나의 삶이 가능해졌다. 감옥에서는 내게 증오를 주입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악마 취급했던 온갖 사람들을 내가 만나면서 그들이 인간임을,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닫는 것을 그는 막을 수 없었다. 편견은 경험을 이길 수 없다. 내 몸이 거부했다. (28쪽)


학교 복도를 걷는데 어린애들이 한 아이의 가방을 가지고 뺏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낚아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잠깐 동안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강자의 편에 서면 쾌감이 느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불쌍한 얼굴을 보자 안쓰러웠다. 아이의 표정은 두려움 반 당혹감 반이었다. 나는 가방을 쓰레기통에서 꺼내 돌려주었다. 아무도 나를 앉혀놓고 공감이 무엇인지, 왜 공감이 권력이나 애국심이나 신앙보다 중요한지 알려준 적 없었다. 하지만 복도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당한 짓을 남들에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100쪽)


공감, 평화, 비폭력. 이것은 내 아버지가 창조하려 한 끔찍한 세상에서는 기이한 도구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비폭력으로 분쟁을 해결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동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를 방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싸움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을 인간으로 대하고, 나와 그들이 공유하는 욕구와 두려움을 인식하고, 복수보다는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간디의 명언을 되새길 때마다 단호하고 강경한 그 어조에 점점 더 끌린다. "내가 목숨을 바칠 대의는 많지만, 남의 목숨을 빼앗을 대의는 하나도 없다." 맞으면 받아치고 더 세게 받아치는 것이 아무리 우리의 본성이라 해도, 폭력의 증대가 적대 행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일 수는 없다. 세상을 떠난 카운터컬처 역사가 시어도어 로잭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비폭력을 시도하고는, 이게 '통하지 않으면' 폭력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폭력은 수세기 동안 통하지 않았다." (123~124쪽)



(비구름에 휩싸인 하이델베르그성, 2009년10월16일)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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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젊은 세대의 절망과 분노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올 한해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단어의 하나로 꼽았다.(헬조선의 사회학)


김호기 교수의 탄식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의 청년문제의 심각성은 정치적 성향과 부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한국인 모두가 우려하고 근심하는 문제가 된 지 오래이다.


청년문제 못지 않게 노인문제 역시 그 심각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런데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과 해고요건 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측 '노동개혁'안에서 보듯 청년문제와 노인문제는 서로 맞닿아 있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일자리가 줄면서 청년세대와 노인세대가 서로 경쟁하는 모양새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의 권위적 배분'(데이비드 이스턴) 과정이어야 할 한국의 정치는 오히려 이런 구도를 악용하고 있다. 세대간 대립을 부각시키고 부추기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집 선생의 '고장난 저울'과 강준만 선생의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앞서 말한 한국의 고장난 정치,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 그리고 그것의 해악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내놓는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침을 뱉는 것은 이들이 책을 쓴 목적이 아니다.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이 각각 제시하는 대안이 주목한 지점과 접근하는 결은 다르다. 그러나 큰 틀에선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회 현상 또는 문제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문제의 해결 역시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이뤄질 수 없다는 생각도.



(낙산사 대웅전 앞 연못의 연꽃)



■정치의 중요성 


 우리는 정치혐오가 나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치인들에겐 매우 좋은 것이다. 정치혐오 덕분에 유력한 경쟁자의 수가 크게 줄어들기 대문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정치는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이 애정 어린 덕담으로 건네지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치혐오는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철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강준만,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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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저들을 뽑았는가? 바로 우리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말을 곱씹어야 한다.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몫이 아니다. 정치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숨 쉬는 것조차 정치적이라는 말은 우리갯소리가 아니다. 어찌 하여 지금의 힘든 삶이 정치 때문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현실을 짚어보며 더 나은 미래로의 명확한 의제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고, 그것은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시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경집, 9쪽)


 정신의학자이며 정신과 교수인 뉴욕대의 제임스 길리건(James Gilligan)은 자살률과 살인률에 대한 통계를 분석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자살률과 살인률을 살펴보았더니 그 등락의 리듬이 비슷했던 것이다. 그 까닭이 궁금했던 길리건 교수는 마침내 그 변화의 주기가 정권의 교체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는 이 두 가지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의아했다. 그는 보수정당, 즉 공화당 출신이 대통령이 될 때마다 자살과 살인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다는 통계를 분석하여 ‘치명적 전염성 폭력’ 증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00년 동안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자살과 살인의 비율이 달라지는 까닭을 찾았다.

(…)

 길리건은 불평등과 폭력을 키우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야마로 공화당이 이기는 데 도움을 준다는 모순된 구조를 밝혀냈다. 범죄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면 미국인은 인권과 복지를 중시하는 진보적 정책을 비난하고 보수 성향의 후보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은 논리가 반복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종북’이니 하는 신 매카시즘의 형태로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퇴행적이다. 문제는 저소득층에게 복지 혜택을 ‘거저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품는 건 부자들인데, 왜 가난한 사람들까지 거기에 편승하는가 하는 물음이 길리건의 의문이다. 길리건에 따르면 공화당은 중상류층과 중하류층이 최하류층을 미워하게 만드는 ‘분할 정복’ 전략을 발판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장노년층, 시골의 농부들과 어부들, 쪼들린 살림살이에 전전긍긍하는 대부분의 가정주부, 무엇보다 가장 절망을 체감하는 청년들까지 무기력해지고 보수화되는(건강한 의미의 보수가 아니라 체념과 순응의 보수) 현실을 볼 때, 우리 사회가 불의와 탐욕, 민주주의의 퇴행과 비인격화의 자행을 그저 빤히 바라만 보면서 내 일만 아니면 된다는 자포자기의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김경집, 50~55쪽)


노인정치와 청년정치


 고려대학교 교수 김동원은 일본 정치를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노인의 정치”로 규정한다. 이른바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라는 것이다. gerontocracy는 그리스어로 ‘old man(노인)’을 뜻하는 geron과 ‘rule(지배)’를 뜻하는 cracy의 합성어다. ‘노인 지배 사회’ 또는 ‘노인 정치’를 비판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권력 상층부가 노인들에 의해 구성되는 경향은 공산주의국가, 종교적인 신정국가 등에서 두드러지지만, 오늘날엔 일반적인 국가에서도 고령화로 인해 제론토크라시가 나타나기도 한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회승은 “일찌감치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들은 대부분 ‘노인 정치’의 명암을 경험했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인 지배 사회는 보수화되고 성장성과 역동성은 떨어진다. 노령층은 과대 대표되고 청년층의 발언권은 위축된다. 반면, 노인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은 노인 정책보다는 분배 구조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이제 막 60대에 진입했다. 노령연금과 정년연장, 국민연금 등 노인 정책 이슈가 하나둘 불거지는 이유다. 제론토크라시의 시작이다.” (강준만, 4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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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과, 풍요 그리고 창조의 혜택을 누린 이 독특한 세대는 그런 점에서 새로운 노인상을 세울 의무와 권리, 능력이 있는 세대들이다. 새로운 실버 세대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력과도 어울린다.

 세시봉 세대의 역할은 전환기에서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듯이, 이제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손을 떼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능력도 있고 체력도 남아 있다. 그 능력을 무의미하게 무기력하게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들마저 무기력하게 꼰대 노인으로 굳어지면 앞으로 나이 들어가는 세대는 이전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나이 들어간다고 체제에 순응하거나, 체념하거나, 욕하면서 결국은 포기하는 것은 적어도 청바지를 입고 자유를 만끽하며 저항했던 세대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본격적은 노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실버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이 세시봉 세대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노년 세대 문제에 대한 관심과 실질적 정책이 필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년 세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삶의 재교육과 재설계 중심의 정책을 세우지 않는 건, 그들을 견고하고 퇴행적인 계층으로 굳어지게 해서 보수의 표를 공고하게 하려는 정치적 저의가 아니고는 설명할 게 없다. (김경집,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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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청년들이 정당으로 쳐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누군가의 빠가되기 위해 정당으로 쳐들어간다면 그건 단호히 반대하련다. 그건 참여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계파 간 싸움의 행동대원으로 전락해 정치판을 온통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대중의 정치혐오를 극에 이르도록 만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강준만, 10쪽)


 그러나 이제 그러지 말자.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진성”으로 전진해보자. 청년들이 정당으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지금 당장 정당원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현단계에선 정치를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탈출구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나머지 일은 저절로 풀린다. 슬랙티비즘이나 ‘약한 연결의 힘’에 기대를 걸고, 생활정치를 전업으로 할 대표 선수들에게 작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는 행동이 뒤따를 것이다.

 청년유니온이나 민달팽이 모델의 전국적 확산이 필요하다. 아니 청년들이 그런 관심과 지원을 조금만 보내준다면 저절로 확산이 될 것이다.

(…)

 정당으로 쳐들어가기 위한 전 단계로 우선 투표소로 쳐들어가자. ‘종이 짱돌(paper stone)’을 들자는 말이다. 그간 청년들은 투표 행위가 주는 이득보다 투표를 하기 위한 비용이 크다는 생각으로 투표를 포기하는 이른바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를 해왔지만, 이제 그걸 합리적 무시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매우 불합리한, 자학에 가까운 무시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강준만, 200~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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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세시봉 세대의 자각과 단절(기존의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과의 단절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새로운 연결(새로운 노인 세대의 출현과 기존 노인 세대의 이어짐이라는 의미에서)이 더 나아가 노인정당의 창당으로까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노인정당이라는 말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살아오며 겪은 경험과 지식은 중요한 자산이다. 다만 그것이 과거에 묶여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

 대한민국이 곧 맞게 될 ‘고령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단순히 노인을 부담스러운 대상이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뒷배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며 잔존 에너지를 무의미하게 소진하지 않는 생산적 계층이라는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자각은 매우 중요하다.

(…)

 다만 이름은 정당을 표방했지만 단 한 사람도 출마하지는 않는 게 좋다. 정당은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모인 정치적 집단이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진정성을 이해서도 그렇고 노인들이 정치를 이끄는 것도 좋지 않다. (김경집, 174~176쪽)


■혁명은 안단테로


 솔 알린스키(Saul Alinsky, 1909~1972)의 정신을 실천해보겠다고 나선 정치인이 있다니, 정말 반갑다. 알린스키는 누구인가? 미국의 도시 빈민 운동가이자 커뮤니티 조직운동가인 알린스키는 196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영웅이었지만, 일부 학생 행동주의자(student activists), 특히 신좌파(New Left) 지도자들과는 불편한 관계였다. 신좌파가 혁명 의욕에 너무 충만한 나머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세상’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알린스키는 학생 행동주의자들의 진정성마저 의심했다. 물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회를 바꾸는데에 관심이 없다. 아직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일,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존재증명(revelation)일 뿐 혁명(revolution)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를 두고 한 말 같다. 진보는 보수와의 관계에서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는 걸 드러내는 자기 존재증명에 정치적 역량을 탕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즐겨 쓰는 ‘정체성’이니 ‘선명성’이니 하는 말이 바로 그런 자기 존재증명의 슬로건이다. (강준만, 82~83쪽)


 그 어떤 해법을 찾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단칼에 모든 걸 해결해보겠다는 성급한 한탕주의다. 그건 갈등의 폭발만 가져올 뿐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올바른 방향이지 과격한 속도가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모순이 상식으로 통용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노와 증오가 아니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 1892~1971)가 강조한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진성”이다. “빛의 자녀는 어둠의 자녀가 갖고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하지만 그들의 사악함과는 무관하여야 한다. 빛의 자녀는 인간사회의 이기심의 힘을 알아야 하지만 그것에 도덕적 정당성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이기심-개인적, 집단적 이기심-을 속이고 이용하고 억제하기 위해 그러한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물론 지금 청년들은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진성”과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사적 차원에선 ‘뱀의 지혜’를 가지려고 애쓰지만, 공적 차원에선 ‘비둘기의 순진성’만 갖고 있을 뿐이다. (강준만, 197~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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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여전히 정당한 기득권과 사악한 기득권을 구분하고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은 유럽에서 근대의 초석을 마련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사전적 의미로 기득권이란 ‘특정한 자연인 또는 법인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법규에 의하여 얻은 권리’를 말한다. 그것은 어떠한 권력이나 권위도 침탈할 수 없는 중요한 권리다. 자유로운 개인의 토대는 이러한 기득권의 보호에서 비롯된다. 근대 이전에는 그것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았다. 전제왕권과 영주의 횡포에 속수무책이었으나 근대에 들어서 자유로운 개인이 발아되고 투쟁을 통해 그 권리를 획득했다.

 정당한 기득권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철칙이다. 그러나 그것의 힘은 부패한 기득권과의 분리에서 온다. 흔히 기득권이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부정적 수단과 방법으로 흭득한 것이 많다는 의미다. 그런 부정적 인식으로 기득권을 비판하게 되면 건전하고 정당한 기득권까지 반발하게 된다. 이런 식의 비판과 접근 때문에 기득권 비판은 부패한 기득권에게 철퇴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전체를 똘똘 뭉치게 해 반발 세력만 키워놓은 셈이 되었다. 정당한 기득권층도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실체를 안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자신들까지 덤터기 쓰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굳이 그들을 배제하지 않은 것은 만에 하나 자신들이 공격을 당하면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전열의 맨 앞에 서서 저항함으로써 결국에는 자신들을 보호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당한 기득권과 부패하고 부정한 기득권을 분리하는 것이다. (김경집, 144~145쪽)



고장난 저울 - 10점
김경집 지음/더숲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 10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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