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조지 오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2.16 동물농장
  2. 2010.09.24 [리뷰]나는 왜 쓰는가 & 책을 읽을 자유

2014_2019/밑줄긋기

날이 추워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벛꽃이 피었다고 신문에 사진이 실렸다. 아닌게 아니라 겨울도 한참 겨울인데 올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다. 비가 와야할 때 오지 않아서, 더워야 할 때 덥지 않아서, 추워야 할 때 춥지 않아서 걱정인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최근 파리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열렸다는데, 기후변화의 위협은 점진적이어서 각 나라와 개인의 대처는 굼뜨기만 하다.


<동물농장>은 풍자소설이지만 슬프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암퇘지 스퀼러였다. 스퀼러는 독재자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의 전횡이나 모순이 드러나면 그럴듯한 거짓말과 선전선동으로 동물들의 논리와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의 언변과 설득력은 대단해서 동물들의 기억을 조작해내기까지 한다.


스퀼러는 소련 공산당의 기관지였던 '프라우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도 언어가 인민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동물농장>에서도 인민이 공적 영역에 관한 정보를 접하는 주요 원천은 언론이며 언론이 어떤 사항을 왜곡하기로 작정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련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지금 언론은 스퀼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동물농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민음사


<1장>


(전략)


곧 그날이 오리,

독재자 인간이 쫓겨나고

잉글랜드의 기름진 들판이

짐승들의 것으로 돌아오는 그날이.


우리들의 코에서 코뚜레가 사라지고

우리들의 등짝에서 멍에가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잔혹한 회초리도 없어지리라.


상상조차 못 할 부유함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

클로버와 콩과 사탕무가

모두 우리 것이네, 그날이 오면.


(후략)


<3장>

돼지들은 직접 일은 하지 않는 대신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휘했다. 아는 게 많았기 때문에 돼지들이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마침내 동물들은 과거 존스와 그 일꾼들이 했을 때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수확을 끝냈다. 게다가 이번의 건초 수확은 농장이 생긴 이후 최대의 것이었다. 낭비는 전혀 없었다. 암탉과 오리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다가 마지막 풀 줄기까지 모두 챙겨다 모았기 때문이다. 풀 도둑질도 없었다. 농장의 어느 동물도 한 번 입가심할 만큼의 풀조차 훔치는 일이 없었다.


………


왜 그래야 하는지를 다른 동물들에게 설명하느라 언변가 스퀼러가 파견됐다.

동무들, 여러분은 설마 우리 돼지들이 저들끼리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또는 무슨 특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겠지요? 사실은 우유, 사과를 싫어하는 돼지들도 많아요. 저도 싫어합니다. 그런데도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가져가는 것은 건강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 돼지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동무들, 이건 과학적으로 밝혀진 일입니다. 우리 돼지들은 머리 쓰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 돼지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여러분의 복지를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돼지들이 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어찌되는지 아십니까? 존스가 다시 오게 돼요. 존스가! 그래요, 존스가 다시 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동무들.


<5장>

그의 연설이 끝났을 즈음에는 표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가 이미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폴레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 특유의 곁눈질을 스노볼에게 한 번 던지고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에게서 들어 본 적 없는 날카로운 소리를 꽥 하고 내질렀다.

그러자 밖에서 마치 사냥감을 몰 때 개들이 짖는 무시무시한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더니 목걸이에 놋쇠 장식을 더덕더덕 붙인 커다란 개 아홉 마리가 헛간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개들은 스노볼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 스노볼은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나 개들의 이빨을 피해 도망쳤다. (중략) 동물들은 소리 없이 겁먹은 얼굴로 다시 헛간 안으로 들어왔다. 쫓던 개들이 이내 돌아왔다. 처음 동물들은 그 개들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몰랐으나 곧 내력을 알게 되었다. 개들은 나폴레옹이 암캐 제시아 불루벨에게서 떼어다 몰래 키운 바로 그 강아지들이었다. 아직 다 큰 건 아니었지만 개들은 몸집이 크고 늑대처럼 사나워 보였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들이 나폴레옹에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은 지난날 농장의 개들이 주인 존스에게 꼬리 치던 모습 그대로였다.


<6장>

숨을 헐떡이며 미끄러지지 않게 발굽으로 땅을 단단히 밟고 허리는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 한 발 한 발 비탈길로 돌덩이를 끌어 올리는 그의 모습은 동물들에게 경탄의 대상이었다. 이따금 클로버는 그런 복서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복서는 듣지 않았다. 그의 두 가지 슬로건인 "내가 더 열심히 한다"와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가 그에게는 모든 문제에 대한 충분한 해답 같아 보였다.


………


이건 스노볼의 짓이오. 그 반역자는 앙심을 품고 우리 일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당한 부끄러운 추방을 앙갚음하기 위해서 야음을 타고 여기 숨어들어 우리가 근 1년 동안 공들여 세운 풍차를 파괴한 겁니다. 동무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스노볼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바이오. 누구든 그를 처단하는 자에게는 '동물 영웅 이등 훈장'과 사과 반 부셀을 주고 생포해 오는 자에게는 사과 한 부셀을 주겠소.


<7장>


정말 모를 일이야. 이런 일이 우리 농장에서 일어나다니. 우리 자신이 뭔가 잘못돼 있어. 내 상각으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아. 지금부터 난 아침에 한 시간 먼저 일어나야겠어.


<8장>

며칠 후, 처형이 몰고 왔던 공포가 다소 누그러지면서 일부 동물들은 '일곱 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이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명령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거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돼지들과 개들이 듣는 자리에서는 아무도 감히 그 얘길 꺼내 놓지 못했지만 동물들은 며칠 전 있었던 동물 살육이 아무래도 그 여섯 번째 계명에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중략) 뮤리엘이 여섯 번째 계명을 읽어 주었다. 계명은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로 되어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그 "이유 없이"라는 두 단어를 동물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 무렵,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하나 벌어졌다. 어느 날 밤 자정께 마당 쪽에서 쿵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고 무슨 일인가 싶어 동물들이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달 밝은 밤이었다. '일곱 계명'이 씌어 있는 헛간 끝 벽 아래 사다리 하나가 두 쪽으로 부러져 있고 잠시 정신을 잃은 스퀼러가 사다리 옆에 자빠져 꿈틀대고 있었다. 곁에는 등불, 페인트 붓, 넘어진 흰색 페인트통 등이 나뒹굴었다. (중략) 며칠이 지나 염소 뮤리엘이 '일곱 계명'을 읽어 보다가 동물들이 그 계명 중의 하나를 또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다섯 번째 계명이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라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동물들은 두 단어를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벽에 씌어진 다섯 번째 게명은 이런 것이었다. "어떤 동물도 '너무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


<10장>


일곱 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그 후로는, 이를테면 다음 날 농장 일을 감독하러 나온 돼지들이 하나같이 앞발굽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드래곤. 2011년 1월11일)





'2014_2019 >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  (0) 2016.02.23
휘파람 부는 사람(메리 올리버)  (0) 2015.12.22
동물농장  (0) 2015.12.16
작가수업 오탁번 '병아리 시인'  (0) 2015.11.25
바이오그래피 매거진5-최재천  (0) 2015.11.04
테러리스트의 아들  (0) 2015.11.01
Posted by 까만주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가을은 책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가을에 독서량이 가장 적다고 한다. 따라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명제는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계몽용 문장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가을이 되면 '책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온다.

조지 오웰의 책이 요새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근래 들어 <강철군화>의 잭 런던의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조지 오웰 하면 잭 런던이 연상된다. 오웰의 대표작 <1984>를 최근에야 읽고 <동물농장>은 아직도 고교 참고서의 줄거리 요약과 요점정리 수준만 알고 있는 얼치기 독서가인 나이기에 오웰의 다른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앞서 나온 르포집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공식 리뷰를 썼던 회사 선배가 극찬을 하길래 어딘가에 쟁여 놓았는데 이번 책을 읽고서는 그 책도 마저 찾아서 정성껏 모셔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쓰는가>에 나오는 '코끼리를 쏘다'는 지난해 연말에 그런 작품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어봤다. 2010년 신년기획으로 일본의 니시카와 나가오 선생과 한국의 윤해동 선생이 대담을 했는데 윤해동 선생이 식민주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이 글을 언급했다. 반가운 마음에 이 에세이를 단숨에 읽었는데 제국주의, 식민주의, 지배자-피지배자 사이의 메카니즘과 역설을 자신이 겪은 일화를 통해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 빈말이 아니라 매우 탁월하다. 이런 에세이를 써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돌아서다 나를 따라온 군중을 흘낏 보고 말았다. 막대한 인파였다. 적어도 2000명은 되고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중략) 그들은 날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술의 소총을 든 나는 잠시 봐줄 만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2000명의 의지가 나를 거역할 수 없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손에 소총을 들고 서 있는 그 순간 나는 백인의 동양 지배가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군중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백인인 나는 겉보기엔 작품의 주연이었지만, 실은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바보 같은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코끼리를 쏘다' 37~38쪽)


오웰의 에세이집은 편역자가 매우 공을 들여 번역할 대상을 물색했음을 알수 있다. 메뉴가 매우 다채롭다. 29편이 담겼는데 이중 17편인가가 처음 번역된 것이라고 한다. 편역자가 밝힌 저본은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1~4(Nonpareil Books)이다. 기회가 닿으면 영어 공부 삼아 한번 읽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에 밝힌 오웰의 글쓰기 원칙을 보면 매우 평이한 영어로 돼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든다.

기사에도 얼핏 썼지만 오웰이 밝힌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6가지 원칙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원칙들의 이론과 실재를 탐구해 책으로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욕심이 들 정도다.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정치와 영어' 274~275쪽)

로쟈의 경우 평소 새책 동향과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분인데 지난해에 이어 또 한권의 책이 나왔다. 지난해 나온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이런저런 상도 받았고 10년 동안 내공을 갈고 닦은 로쟈를 '중원'이 알아보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가지 재미난 것은 지난해에 나온 것과 올해 나온 책이 처음부터 2권으로 기획이 됐던 것인데 출판사를 달리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사연인즉슨 앞서 나온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제안하고 기획했던 편집자가 그 사이 회사를 옮긴 것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출간하면서 다음 책에 대해 정식 계약을 맺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책임 편집자와 로쟈와의 신뢰가 깊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쌍의 책이 서로 출판사를 달리해서 나오는 일이 생긴 것이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출판사가 바뀐 것을 말하자니 내 책장에 꽂힌 <태백산맥>이 떠오른다. 과거 방위로 근무하던 시절 <태백산맥>을 한권씩 사서 읽었는데 7권인가, 8권인가 읽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태백산맥> 시리즈를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표지가 6권부터 달라진 것이었다. 1권부터 5권까지는 까만색 바탕에 산맥의 골짜기 부분에 색이 들어간 것이었는데 6권부터는 까만색 일색에 요철을 넣어준 것이었다. 표지 디자인을 새롭게 했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출판사가 한길사에서 해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1~5권은 한길사판을, 6~10권은 해냄판을 갖게 됐다. 당시엔 희안한 일도 다 있다 생각하고 지나갔다. <태백산맥>의 출판사가 바뀐 사연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출판담당을 맡고 난 뒤였다.

여하튼 로쟈는 이제 2권의 책으로 서평과 리뷰를 졸업하고 이제는 자신의 책을 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그의 블로그를 보면 여전히 그날그날의 책에 관한 이야기들로 꾸준히 업데이트 되고 있다. 추석 연휴도 쉬지 않았다. 10년 습관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출판담당인 나로서도 그의 '공익적인' 활동이 무척 고마울 따름이다.

책을 왜 쓰느냐 묻거든, 그곳에 길을 만들려
책을 왜 읽느냐 묻거든, 그곳에 길이 있어서

한국인의 문해율은 2008년 기준 98.3%다. 문해율이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98.3%라면 한국의 성인 가운데 문자를 읽고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문자를 읽고 쓸 능력이 있다는 것과 실생활에서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등산을 할 수 있지만, 모두가 산에 오르지는 않는다. 그러고보면 읽기·쓰기와 등산은 닮은 데가 있다. 혼자 가든 떼를 지어 가든 산에 오르기 위해선 결국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읽기와 쓰기 역시 개인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산이 있어야 산에 오를 수 있듯 읽기는 앞서 쓴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고 쓰기는 앞으로 읽을 사람을 염두에 둔 행동이다. 여기, 쓰기와 읽기의 최고 고수들이 쓴 책이 마주보며 놓여있다. 한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의 작가, 한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책은커녕 자신이 욕심내는 책조차 다 읽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리라는 사실을 아직도 섭섭해 하는 한국의 지독한 책벌레다. 살았던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각각 쓴 책은 투수와 포수처럼 나란해 보인다.

▲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 | 한겨레출판사)

나는 왜 쓰는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국민공통교육’을 받은 사람치고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이력은 명문 이튼스쿨 졸업,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 생활, 파리와 런던에서 최하층민 생활, 스페인 내전 참전 등 ‘20세기 초중반 시대의 격변을 온몸으로 살았다’ 정도로 요약하기로 하자.

그는 소설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데 이건 그가 쓴 방대한 글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는 생전에 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 등 11권의 책을 냈거니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수백편의 길고 짧은 칼럼과 서평, 에세이를 썼다. 이 책은 에세이 29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는 나치의 파시즘과 스탈린식 공산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등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던 오웰의 작가적 입장이 명확히 담겨 있다. 그는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오웰이 작가의 작업을 정치 선동가의 역할과 동일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가 말하는 ‘정치적 글쓰기’란 어떤 거짓이나 폭로하고 싶은 것을 ‘미학적 경험’에 입각해 쓰는 것이다. 그는 “<동물농장>이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고백한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와 영어’라는 제목의 매우 신랄한 에세이를 볼 필요가 있다. 오웰은 당시 지식인들의 글들을 실례로 들어가며 죽어가는 비유, 지극히 불분명한 표현, 젠체하는 용어, 무의미한 단어들을 집어냈다. 마치 시범을 보이듯 이 책에서 예리한 통찰과 특유의 비유, 신랄한 독설의 진수를 보여준 오웰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뜻을 최대한 분명하게” 한 다음 “뜻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을 택해야 “진부하거나 뒤섞인 이미지, 이미 만들어진 어구, 불필요한 반복, 그리고 허튼소리와 막연함을 대체로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글쓰기 6원칙을 제시하는데 이것만 가지고 글쓰기 교재를 써도 될 정도로 포괄적인 동시에 실용적이다.

이 책은 오웰의 르포집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번역하기도 한 번역가 이한중이 4권으로 엮인 오웰의 원문 에세이 저작집에서 명문(名文)으로 평가받는 것들, 오웰의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술회된 것들을 뽑아 시간순으로 배치했다. 오웰은 자신의 전기를 쓰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는데 편역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오웰의 자서전으로 읽을 수도 있다.

오웰은 생애 자체가 워낙 다채로웠다. 그리고 철저히 체험에서 우러나온 에세이들을 썼다. 런던 부랑자들의 삶을 묘사한 ‘스파이크’, 버마 경찰 복무 경험을 그린 ‘코끼리를 쏘다’, 스페인 내전 참전 회고담인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생계를 위해 서평을 쓰면서 느낀 역겨움을 여과없이 드러낸 ‘어느 서평자의 고백’ 등 어느 것 하나 지루한 게 없다. ‘빨주노초파남보’가 무지개를 이루듯 29편의 글이 제각각 고유한 색깔을 뽐내며 글쓰기라는 그 무엇으로 향하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냈다.

▲책을 읽을 자유(이현우 | 현암사)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로쟈’가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이어 두번째로 낸 서평집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가 에세이 범주에 속하는 글들을 모은 것이라면, 이번 책은 본격적인 서평집에 해당한다. 지난 10년간 각종 매체에 썼던 서평, 그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에 올렸던 글들을 30개의 꼭지로 정돈했다.

로쟈의 서평을 보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주인공 톰 크루즈가 눈 앞에 떠오른 가상의 스크린에 매우 빠르게 명멸하는 화면들을 검색하면서 양손으로 그것들을 이리 저리 짜맞추는 유명한 장면 말이다. 로쟈가 블로그에 공개한 ‘공익적인’ 글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평론가 신형철은 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쟈는 문학·철학·역사학·사회학을 넘나들면서 배치하기·짝짓기·지도 그리기·교정하기 등등의 테크닉을 발휘하여 저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다양한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요즘 강조되는 ‘맥락적 책읽기’를 일찍부터 보여줬다. 그의 블로그는 책과 작가에 관한 ‘위키피디아’를 방불케 한다. 시인이자 소설가 장정일이 메인 게스트로 나온 어느 ‘북포럼’에 패널로 나가 발표한 글에서 로쟈는 장정일의 작품이 읽히던 시대, 장정일의 작품세계를 따라가면서 이성복·황지우·유하 등의 시인, 마광수, 밀란 쿤데라, 노무현, 이문열, 황석영, 강유원 등을 줄줄이 떠올린다. 작년에 나온 김규항의 <예수전> 위에 한완상의 <예수 없는 교회>를 겹쳐 읽으면서 ‘혁명’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낸 뒤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으로 나아가는 식이다.

이런 일은 그가 ‘지독하다’는 표현으로는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읽어대기에 가능했다. 간간이 등장하는 번역자의 태만에 의한 오역이나 ‘꼴’을 갖추지 못한 책에 대한 꾸짖음은 준엄하다. 그러나 “우리는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진다”고 말하는 로쟈의 책에 대한 태도는 대체로 겸손하고 따뜻하다. 그는 말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내게 그 책을 읽을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 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돼야 한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이번엔 독자들이 로쟈에게 고마워해야 할 차례다. (2010.9.18)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로쟈의 인문학 서재 - 10점
이현우 지음/산책자



Posted by 까만주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