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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이자 시인인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인기를 끌고,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당시 영국의 윤리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성적 취향 때문에 귀양가듯 프랑스 파리로 쫓겨가 쓸쓸하게 숨졌다.


그는 동화도 여러편 썼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동상이 제비를 시켜서 자신을 치장했던 보석과 금을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제비와 함께 숨을 거둔다는 내용의 '행복한 왕자'다.


욕심쟁이 거인이 아이들이 뛰놀면서 사철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던 정원에 높다란 담을 쌓아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사철 겨울이 됐지만, 반성하고 다시 아이들이 불러들이자 봄이 찾아온다는 '욕심쟁이 거인'도 널리 읽힌 작품이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는 흥미가 있어야 하겠지만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들을 새롭게 읽으니 교훈을 주는 방식이 무척 사실주의적이었다. 그리고 역설과 풍자가 일품이었다.


인간의 심장을 가지고 있을 때 나는 눈물이 뭔지 알지 못했어. 슬픔이 들어오지 못하는 평화로운 궁전에서 살았거든. 낮에는 친구들과 정원에서 뒤어놀고 밤에는 넓은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었단다. 궁전은 높디높은 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난 담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어. 내게 세상은 그저 아름다운 곳일 뿐이었단다.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어. 즐거움이 곧 행복이라면 그 말이 맞겠지. 난 그렇게 살다가 죽었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이 높은 기둥에 세워 놓은 다음부터 나는 이 도시의 모든 불행을 보게 되었어. 내 심장은 납으로 만들어졌는데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구나." (행복한 왕자, 12쪽)






자신이 먼저 떠났다가 후회하고 돌아왔지만 살아서 만나지 못하고 숨진채 만나게 된 연인을 끌어안은 남자의 고백은 너무 절절하다.


"사랑은 지혜보다 값지고 재물보다 귀하며 예쁜 여인의 발보다 눈부시답니다. 사랑은 불로 태울 수도 없고 물로 식힐 수도 없어요. 내가 당신을 부르는 동안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지요. 달은 내가 당신을 부르는 걸 들었지만 당신은 내게 오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을 떠나 세상을 떠돌며 상처만 받았지요.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어요. 나는 나쁜 일도 보고 착한 일도 보았지만, 그 무엇도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어요. 이제 당신이 죽었으니 나도 당신을 따르겠어요." 젊은 어부가 아리따운 인어를 부르며 말했다. (어부와 영혼, 201~202쪽)






동화라고 하지만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묘사는 직설적이다. 아래와 같은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의 대비는 전형적인 서술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전쟁 때에는 강자가 약자를 노예로 만들고, 평화로울 때에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노예로 만드는 법이야. 우리는 살아 보려고 애써 일하지만 그들은 보잘것 없는 품삯으로 우릴 죽게 만들지. 우리는 그들을 위해 하루 종일 천을 짜고 그들은 금고에 금을 쌓아 둔단 말이야. 우리 아이들은 얼마 살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험상궂고 흉악하게 변해 간다고. 우리는 발로 포도를 밟아 즙을 짜고 그들은 그 포도주를 마시지. 옥수수를 거두는 건 우리지만 우리 식탁은 늘 비어 있지. 감시하는 눈은 없지만 우리는 얽매여 있고 자유롭다고 하지만 노예나 다름없어." (어린 왕, 101쪽)





사실 이 책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위에 든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교훈보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답고 풍부한 묘사로 가득찬 문장들이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선 너무 현란해 좀 느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저토록 현란한 묘사들을 한번쯤은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흉내를 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은 비명을 지르다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 밖에는 새벽이 잿빛의 기다란 손가락으로 희미해져가는 별들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린 왕, 104쪽)


자줏빛 나비들은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날개를 펄럭이며 이 꽃 저 꽃 사이를 날아다녔고, 작은 도마뱀들은 벽 틈에서 기어 나와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누워 있었다. 잘 익은 석류는 살짝 벌어져 핏빛처럼 붉은 심장을 드러냈고, 무너져 가는 격자무늬 울타리에서부터 어두컴컴한 아치를 따라 탐스럽게 열린 노란 레몬들은 햇빛을 받아 더 샛노래 보였다. 상아로 조각해 놓은 듯한 하얀 목련에선 짙은 향기가 났다. (스페인 공주의 생일, 118~119쪽)


그러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팔에 청동 항아리 무늬 같은 시퍼런 힘줄이 툭툭 튀어나올 때까지 거친 밧줄을 힘껏 잡아당겼다.……인어의 머리카락은 젖은 금빛 양털 같기도 하고 잔에 담긴 황금 실타래 같기도 했다. 몸은 상아처럼 하얗고, 은과 진주로 만든 것 같은 꼬리에는 초록빛 해초가 둘둘 감겨 있었다. 귀는 조가비 같았고 입술은 산호처럼 붉었다. 가슴에는 파도가 부딪혀 하얗게 부서졌고 눈꺼풀 위에는 소금이 반짝거렸다. (어부와 영혼, 149쪽)


젊은 어부는 산을 내려와 금빛 모래가 깔린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리스의 동상 같은 구릿빛 피부에 건장하게 생긴 젊은 어부는 벌꿀처럼 노란 달을 등지고 섰다. 파도가 마치 그를 부르는 것처럼 하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어부와 영혼, 167쪽)


검은 바다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몰려오고 있었다. 검은 바다는 하얀 거품 발톱으로 바닷가를 할퀴었다. (어부와 영혼, 201쪽)







행복한 왕자 - 10점
오스카 와일드 지음, 소민영 옮김, 나현정 그림/보물창고


(※이 책은 1888년에 출판된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와 1892년에 출판된 [석류나무의 집](A House of Pomegranates)를 한권으로 묶은 것이다.)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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