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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여전히 옛날 이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출판사 이름으로서 ‘창작과 비평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창비’라는 이름이 쓰인다. 그런데 의외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도 출판을 담당하기 전에는 ‘창비’가 그냥 ‘창작과 비평’ 또는 ‘창작과 비평사’를 줄여서 부르는 것으로 알았다. 출판사 이름을 ‘창작과 비평사’에서 ‘창비’로 줄여서 개명한 게 한참 전이란다.

‘창비’란 이름에 관해 들었던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 창비의 어린이 책 편집자로부터 들은 얘긴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묻길래 출판사에 다닌다고 했단다. 출판사 이름을 묻길래 ‘창비’라고 했더니 “아, 나 그 출판사 안다”고 답하더란다. 반가워하는 편집자에게 이어서 들려온 소리는 “참고서하고 문제집 만드는 곳 아니냐”는 것이었다. 어라? 참고서? 문제집? 편집자는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친구가 ‘창비’란 이름을 듣고 머릿속에 떠올린 출판사는 ‘비상’이었던 것이다.

어정쩡한 세대인 나는 창작과 비평, 줄여서 창비에 대해 그닥 깊은 인상은 없다. 내가 문학평론 같은 것에 그닥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여러 계간지들이 시도됐으므로 다양한 읽을거리가 있었다. 다만 창비에 대해 그 명성은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캠퍼스를 누볐던 그 유명한 ‘창비 아저씨’ 정도? 귀 얇은 내 친구 녀석이 그걸 사가지고 하숙방, 자취방으로 끌고다니느라 고생께나 하는 걸 본 기억도 난다.

그런데 계간지가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른바 ‘종합 계간지’가 별로 남지 않았다. ‘녹색평론’이 명백을 유지하고 있고, ‘황해문화’가 통권 69호를 기록중이다. 물론 이런저런 계간지, 특히 요사이는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계간지들이 운영되고는 있는데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계간 ‘비평’이 지난해에 휴간 형식으로 사실상 종간됐고, ‘당대비평’은 이제 그 이름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한참 전에 사라진 ‘이론과 실천’이란 계간지도 있었구나! 창작과 비평이 기초체력을 보유한 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 대견하고 반갑긴 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 창비의 ‘시각’과 ‘입장’이 정답은 아닐 터인데 서로가 비평 혹은 비판하면서 논쟁을 벌이는 그룹이 만드는 계간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P.S. USB메모리에 담긴 디지털 영인본은 매우 강력하다. 목차와 필자만 일별하더라도 1960년대 이래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20만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창작과 비평’ 44년… ‘통권 150호’ 발행

창작과 비평 150호 - 2010.겨울 - 10점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창비(창작과비평사)

계간지 ‘창작과 비평’(이하 계간 창비)이 통권 150호를 발행했다. 1966년 1월 창간호를 낸 지 44년 만이다. 지난 2006년 창간 40주년 기념호를 내면서 ‘운동성의 회복’과 동아시아 차원의 매체간 연대를 내세웠던 계간 창비는 통권 150호 발간에 즈음해선 ‘창비사회인문학평론상’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사회인문학’ 비평가를 발굴·육성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적 인식과 현장의 실천 경험, 문학적 상상력의 결합을 추구하는 ‘창비표 글쓰기’를 확산시킨다는 취지다.

계간 창비는 현재 평균 발행부수가 1만2000여부, 정기독자가 9000여명이다. 한번 발행하면 2만부씩 나가던 1970년대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든 것이지만 다른 인문·사회과학 계간지들이 살림살이를 제대로 꾸리지 못해 줄지어 자진 폐간한 상황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초체력을 보유한 셈이다. 국내 계간지 가운데 독보적인 발행부수이며, 비판적 지식인 잡지로서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편집주간인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계간 창비의 성공비결에 대해 “ ‘창작과 비평’이라는 이름에 절묘하게 들어있다고 본다”면서 “창작과 비평이 결합돼 있으므로 양쪽의 독자들을 포괄할 수 있었고, 저희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비 통권 150호의 주요 아이템이 이 말을 뒷받침한다. 150호는 2000년대 첫 10년 동안의 한국문학에 대한 회고와 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한 제언이 특집으로 마련됐다. 백승헌·심상정·이인영·이남주 등이 2012년 대선을 전망하는 대담도 포함됐다. 창간호부터 150호까지 전체내용을 USB메모리 하나에 담은 전자 영인본(20만원)도 출시됐다.


계간 창비는 처음부터 ‘저항’과 ‘참여’에 방점을 찍으며 출발했다. 칠순을 넘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스물 여덟의 패기만만한 평론가였던 시절 계간 창비를 창간하면서 이를 명확히 했다. “메마르고 대중의 소외와 타락이 심한 사회일수록 소수 지식인의 슬기와 양심에 모든 것이 달리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식인이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만나 서로의 선의를 확인하고 힘을 얻으며 창조와 저항의 자세를 새로이 할 수 있는 거점이 필요하다.”(1966년 겨울 창간호)

백낙청 교수는 150호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의 주도성이 아주 강했던 잡지가 집합적인 지성이 작용하는 잡지로 진화해 왔다”면서 “창간호에서 밝힌 기대나 포부가 상당부분 실현됐다”고 말했다.

계간지는 1년에 4번 발행하므로 정상적으로는 150호를 내려면 37년6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44년이 걸린 것은 초기 정착과정에서 형편이 어려워 합본호를 낸 적이 몇차례 있었고, 80년대 들어 폐간됐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간 창비는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활동하는 무대로 자리잡았고, 여러 논쟁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문화권력’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백낙청 교수는 “70~80년대에 문학작품을 진영논리로 평가해선 안된다고 했지만 우리도 모르게 민족문학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꽤 소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0년대 들어 그런 것을 시정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제는 창비가 줏대를 못 세우고 우왕좌왕한다고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백영서 교수는 “창비가 신인발굴과 문학비평의 중요한 담론들을 만들어가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문학과 비문학의 두 바퀴를 굴린다고 했는데 잘 결합시켜서 해왔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창비는 인터넷이 대세를 이루는 매체환경 변화에도 나름대로 적응해 왔다. 호흡이 길고 늦을 수밖에 없는 계간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인터넷 칼럼 ‘창비주간논평’은 매주 시의성있는 쟁점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창비는 매년 주간논평을 골라 ‘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라는 단행본으로 묶어 내고 있다. 계간 창비가 새롭게 기획한 창비사회인문학 평론상(상금 500만원)은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논쟁적인 글쓰기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백영서 교수는 “문학평론가를 발굴하는 공모는 많아도 사회인문학 비평가를 찾고 육성하는 일은 제도화돼 있지 않다”면서 “주체적 담론 생산에 앞장설 신예평론가 발굴을 위해 공모전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2010.11.30)


 

Posted by 까만주름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최근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을 묻는 사설에 대해 민주노동당 측이 강하게 반발하자 어느 글에서 '기자는 허락받고 물어보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다가 잠깐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어느 방송사 기자는 "물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권력인지 깨달았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기자로 일하던 시절 자기는 언제 어디서나 거리낌 없이 상대방에게 물어볼 수 있었는데 사장 비서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만 있을뿐 물어볼 권리는 없더란 얘기였다.

어제(24일) 계간 '창작과 비평' 통권 150호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는 약간의 긴장이 흘렀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 모르지만 연평도 사건 다음날이었기 때문이다. 백낙청 선생은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통일운동을 펼쳐온 분이라 연평도 사건은 곤혹스런 사건일 수 밖에 없을 터였다.

상대방이 곤혹스러워 한다고 해서 안물어볼 수 없는 노릇. 그게 기자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질문이 너댓개 나왔지만 연평도 사건에 관한 것은 없었다. 궁금한 사람이 직접 물어볼 수 밖에. "기자간담회 나오실 때 이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셨겠죠?"라고 운을 떼며 백낙청 선생의 의견을 물었다. 당신도 "오늘 간담회를 나오면서 그에 대한 질문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번째인가, 다선번째인가에 이 질문이 나온 것을 보면 여기 오신 가자분들이 참을성이 있으시거나, 역시 문화부 기자분들이라 문화적 소양이 있으시기 때문 아닌가 한다"고 농담섞일 말로 운을 뗐다. 질문을 던진 사람으로서 백 선생의 답변은 그리 명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추가로 질문을 할까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피차가 겪을 심리적 부담이 귀찮기도 했고 에둘러 말하기로 작정한 분과 말싸움 하듯 할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간담회 자리가 연평도 사건에 관한 백 선생의 견해를 듣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는 배려심도 작용했다.
 
그렇지만 독자를 위한다면 그래선 안됐다. 나는 아직도 야성이 많이 부족하다.

참, 이날 간담회의 주제였던 계간 '창작과 비평' 통권 150호 발간 기사는 다음주 화요일자에 실릴 예정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2·사진)는 24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이유와 경위가 어떠하든 북측이 자신들도 인정하는 남쪽 영토에 포격을 하고, 민간인의 신체와 재산에 피해를 입혔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이날 자신이 편집인으로 있는 계간지 ‘창작과 비평’이 1966년 창간된 이래 44년 만에 통권 150호를 발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연평도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지낸 바 있는 백 교수는 “먼저 희생된 해병대원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당한 분들이 하루빨리 쾌유하시길 빈다”며 말문을 열었다. 백 교수는 “길게 보면 이런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며 정부의 ‘한반도 평화관리’ 책임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백 교수는 “한반도 평화관리를 소홀하게 해 대통령의 기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못한다면 정부로서의 직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한반도 평화를 안정되게 관리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만 있자니 체면이 상하고, 응징하려면 새로 사건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것이 전쟁으로 갈 수 있다”며 “정부가 당장의 상황에 매몰되지 말고 좀 더 거시적인 방안을 세워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백 교수는 또 “북측으로서도 이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며 “일시적으로 자기들이 이겼다고 선전할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도, 어떤 면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백 교수는 북한의 3대세습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이 펼쳐온 ‘분단체제론’에 입각한 설명을 내놓았다. 자유화·민주화를 상당히 성취한 남한과 달리 여전히 분단체제의 억압을 강하게 받고 있는 북한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북한이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냐에 대해 극히 일부를 빼놓고는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며 “세습은 사회주의에서 점점 멀어지고 왕조적인 성격이 강화돼온 흐름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3대세습이 발표됐다고 해서 갑자기 새로운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흥분하기보다는 북한의 비정상성, 왕조적인 성격이 한 단계 더 드러났구나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며 “북측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이후 남북대화와 6자회담 복귀 의사 등 여러 제안을 했지만 우리의 태도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북측이) 무너질 것이라며 ‘전략적 인내’ 운운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0.11.25)
Posted by 까만주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