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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심청전(고영 글, 이윤엽 그림)




어릴 적 동화로 읽고, 명절 특선 TV 단편 만화로도 보고, 역시 TV에서 방영해주는 판소리로도 보고, 마당놀이로도 봤던 '심청전'. 우리 고전이든, 서양 고전이든 많은 형태로 변형돼 재창작 되고 있는 고전들은 대강의 뼈대는 다 알고 있지만 다시 보면 지나쳤던 부분들이 눈에 띄고 다양한 화소(話素)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진 심청전을 보고 들으며 울고 웃었는데, 청소년을 겨냥하고 있지만 진지하게 활자화된 심청전을 읽으니 문장 하나, 표현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알다시피 심청전은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읊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설 부분은 구구절절 읊는 느낌, 소리 부분은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흥얼거리는 느낌을 준다.


북멘토 출판사에서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 고전' 시리즈의 첫번째 권으로 내놓은 [심청전]을 보며 특히 눈에 띈 것은 등장 인물과 장면, 사건을 구체화시키는 방식이다. 판소리계 소설이라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서술 방식이 매우 전형적이고 고루하긴 하지만 전형적인만큼 쉽게 인상을 형성한다.


아래는 청이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수양딸로 들어올 것을 청하는 장승상 부인 댁을 묘사한 대목이다.


문 앞에는 버드나무가 '여기가 장승상 댁이오' 하듯 늘어서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왼편에는 푸른 속에 오동나무가 늠름히 서 있고, 오른편에는 푸른 대밭이 깨끗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바람이 문득 불자 늙은 소나무가 바람을 받아 일렁이는데 마치 용이 꿈틀하는 듯했다. 중문을 지나니 높은 지붕을 인 큰 건물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저택을 이루고 있었다. 그 집마다 누각마다 창문은 샐 수 없이 많이도 나 있고, 창이며 문에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조각이 아로새겨 있었다. 잘 가꾼 정원은 그야말로 꽃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온갖 꽃이 피어 있는 가운데 새가 한가로이 짝지어 날고, 연못 속에는 금붕어가 노닐고 있었다. (62쪽)


다음은 장승상 부인의 눈에 비친 청이의 모습이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게 한 뒤 자세히 살펴보니, 별로 단장하지도 않았으나 심청은 타고난 미인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앉은 모습이 곡 비 개인 맑은 시냇가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가 사람 보고 놀라는 듯하고, 하늘 가운데 돋은 달 같은 피부가 빛나고, 샛별같이 빛나는 눈동자에 꽃빛 어린 두 뺨이 그야말로 꽃다웠다. 말을 나눌 때면 두 입술 사이로 가지런하고 흰 이가 언뜻언뜻 드러났다. 장승상 부인은 정답게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63쪽)


아래는 악처의 전형인 뺑덕이네를 묘사한 장면이다. 뺑덕이네의 고약한 심성과 행실을 우스꽝스런 말투로 이어가고 있는데, 흥부전에서 놀부의 고약한 행실을 묘사하는 대목과 유사한 느낌이다.


뺑덕이네가 워낙 불량한 인물이라 남의 집 부인이 되고서도 양식 주고 떡 사 먹기, 베 내주고 술 사 먹기, 농사철에 정자 밑에서 낮잠 자기, 마을 사람더러 욕설하기, 일꾼들과 싸우기, 술에 취해 한밤중 울음 울기, 빈 담뱃대 들고 공짜 담배 청하기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하니, 동네 사람들과는 원수를 지게 됐고, 심학규의 재산은 거덜이 났다. (141쪽)


마지막은 심청전에서 워낙 유명한 대목으로서 인당수로 끌려가는 날 아침 청이가 홀로 괴로워 하며 부르는 노래다.


이윽고 닭이 울었다.

"닭아, 닭아, 울지 마라. 너 울면 날 새고, 날 새면 나 죽는다. 죽기는 서럽지 않으나, 의지할 데 없는 우리 아버지 어쩌면 좋단 말이냐?" (93~94쪽)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고전은 장화홍련전, 춘향전 등 여러권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책 속 그림은 판화가인 이윤엽 작가의 작품이다. 이윤엽 작가의 홈페이지.)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폭을 무릅쓰고 - 10점
고영 지음, 이윤엽 그림/도서출판 북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