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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분 돌아오셨대요?"

출판사에서 언론사에 보내는 홍보용 신간도서를 배달하러 온 분이 책상 위에 놓인 책의 표지를 보더니 물었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란 부제를 달고 있는 <편집자란 무엇인가>였다. 저자는 2년 전 미국 유학을 떠났던 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김학원 대표이사다. 김 대표는 1990년대에 출판계에 등장해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많은 흥행작을 만들었고 2001년 휴머니스트를 창업, 탄탄한 인문학 출판사로 키운 인물이기에 김 대표가 귀국했다는 소식은 책을 배달하는 그에게 뉴스였던 모양이다. 김 대표는 90년대 중반부터 한겨레신문 부설 문화센터, 한국출판인회의 부설 서울출판학교 등에서 출판기획 및 편집에 대해 오랫동안 강의를 해왔기 때문에 출판계엔 그의 '제자'들이 적지 않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 10점
김학원 지음/휴머니스트

편집 및 기획의 이론과 실무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설명한 <편집자란 무엇인가>가 중견 출판인의 노련함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지난달 출간된 <책책책! 출판사 습격기>(서해문집)에서는 출판계 입문을 꿈꾸고 있는 새내기들의 호기심과 패기가 묻어난다. 파주출판도시입주기업협의회가 개설한 출판편집 과정 강좌를 지난해에 이수한 학생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앞으로 일하기를 꿈꾸는 출판사 8곳을 탐방해 각 출판사의 역사와 특징, 출판인들의 일과 등을 꼼꼼하게 소개했다.

책책책! 출판사 습격기 - 10점
조희경 외 지음/서해문집

김 대표나 예비 편집자들이 모두 인정하듯 편집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그리 높지 않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도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는 기억하지만 편집자까지 꼼꼼히 살펴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리가 영화 제목과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다른 스태프들에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감독과 주연배우로만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듯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편집자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개별 출판사는 물론이요, 한 사회의 출판 역량은 편집자들의 역량과 직결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한국의 출판계가 발전하려면 편집자들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려왔던 이유다.

집단으로서 편집자들의 역량이 높아지려면 편집자 개개인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터이지만 이를 위한 환경조성이 중요함은 불문가지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의 핵심은 노력에 대한 적절한 처우와 보상, 편집권의 보장 등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어디서나 존재하듯 '편집자를 키워야 한다'는 당위와 현실의 괴리는 이곳에서 발생한다. 출판 경영자와 편집자는 모두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지만 모든 이해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고상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의 이면에 열악한 여건에 절망하는 편집자들의 한숨이 배어 있는 경우가 많은 건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책에서 "편집자가 걸어야 할 방향은 결국 전문 출판인의 길"이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그는 휴머니스트에서 책임편집자 제도를 정착시켰고 전문 편집장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출판사 설립의 1차 목표를 교양서 1000종 발간과 100여명의 전문 편집인으로 내건 그가 2년간의 재충전을 거치고 돌아와 당위(이상)와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어떤 의견과 활동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귀국을 환영한다. <2009. 8.22>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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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언제부턴가 대형마트에 가는 것이 취미가 됐다. 꿈속에서 그리던 장난감들이 현실의 눈 앞에 펼쳐져 있고, 떼쓰기 혹은 부모와의 심리게임에서 운좋게 이기면 그중 하나를 손에 쥘 수도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어차피 식료품 등속을 정기적으로 사야하고 아이와 함께 이것저것 보면서 눈요기를 할 수 있기에 그리 거부감 없이 마트에 들른다.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두번은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간다. 그런데 여섯살난 아들 녀석이 물건에 대한 집착, 자신의 선택에 대한 고집이 세지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찾았다가 신경전을 끝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아이는 눈물을 찔끔거리고, 부모는 언성을 높이는 경우 말이다.

지난주말 아이가 만들기 책에서 발견한 것을 해보고 싶다고 해 마트엘 갔다. '아이 클레이'라고 색색깔의 고무찰흙의 일종을 사기 위해서다. 전에 세트로 된 것을 산 적이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 칼이나 찍는 틀 같은 것은 집에 굴러다니고 있다. 그래서 가기 전 아이에게 다짐을 받았다. 만들기 도구는 집에 많이 있으니까 아이 클레이만 낱개로 사자고. 아이도 수긍했고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 클레이 매대 앞에 서자 아이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렸다. 아이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캐릭터로 치장된 세트 상품에 '꽂혀' 버린 것이다. 약속을 상기시켰더니 삐죽삐죽 눈물을 흘린다. 이 모습을 보면서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일단 애 엄마가 설득을 시작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엄마는 소릴 지르고 딴데로 가버리고 아이의 눈에선 더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Treasure Megazord DX 02
Treasure Megazord DX 02 by Jinho.Jung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번엔 내가 나섰다. 어르고 달래고, 눈을 부라려 봐도 아이는 오로지 낱개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다. 세트 상품을 하나 고르며 "아빠 이건 어때요?"라고 묻고, 다시 다른 세트 상품을 고르며 "이것도 안돼요?"라고 묻는다. 나는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해 납득시켜 보려 애쓴다.
 
"네가 지금 원하는 것은 아이 클레이지 도구가 아니지?"
"네"
"근데 네가 고른 것은 집에 많이 있는 도구들까지 들어있어. 그래서 비싼거야"
"......"
"그러니까 여기 도구 없이 아이 클레이만 들어있는 것으로 사자"
"..... 으앙....."

결국 내 인내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냥 가자. 아이 클레이 없어!"라고 언성을 높이며 아이 손을 이끌고 나왔다. 이걸 애 엄마가 다시 한번 반복했고, 마지막에 내가 다시 한번 시도했다. 결국 1시간30분이 지났고 아이는 빈손으로 차에 올라타야 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슬피도 울어댔다.

사실 가격이 얼마 차이가 나지도 않는데 애가 하고 싶은대로 해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안들었던 것은 아니다. 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와 함께 무언가 물건을 사러 가면 항상 겪는 갈등이다.

심란하던 차에 이번주에 나온 <상처입지 않을 권리>(강신주/프로네시스)을 접했다. 아, 이거다 싶었다.

아이는 자라가면서 자본주의 화폐경제와 소비문화에 편입돼 간다. 요즘은 미디어가 워낙 편재하고 있어 과거보다 편입 시기와 속도는 더 빨라졌다. 아이의 욕망이라고 해서 어른보다 덜할 리 없다. 오히려 더 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욕망을 가로막는 것이 부모다. 어른의 경우 돈의 적음이 자신의 소비 욕망을 억압하는 요소다.
 
이 둘 사이의 간극.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다. 요즘 아이와 함께 마트엘 가면서 부쩍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렵기로 정평이 난 독일과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상의 핵심을 뽑아 읽기 쉽게 제공했다. 철학박사로서 학교 밖 강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강의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래서 친절하다. 설명이 너무 길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도면 수작이다.

아이와 마트 얘긴 어떻게 됐냐고? 당분간 마트엔 금족령을 내렸다.



<서평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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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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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21 2009.07.12 1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중씨 안녕. 블로그에는 처음 와보네. 재밌게 읽었어요. ^^

  2. 딸기21 2009.07.12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글씨 읽기가 좀 힘들어요..(늙어서 그런가;;)
    배경색하고 글씨하고 조금만 조절해주면 안될까요?

어린 시절 책에 관한 나의 최초의 강렬한 기억은 아버지가 초등학교 졸업기념으로 사주신 40권짜리 <동서양 전래동화 전집>이다. 외딴 산간마을을 찾아온 책 외판원을 통해 구입한 이 전집은 한 권에 200쪽이 넘었는데, 방학 동안 모두 읽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책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별로 없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새로 전집을 선물받는 일도 없었고 학급문고에 꽂힌 책들은 대부분 허접했다. 사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학교 시험 준비에 허덕이다 보면 남는 시간은 놀기에도 빠듯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동서양 고전은 참고서가 ‘친절하게’ 요약해준 줄거리를 밑줄 치며 외웠다. 허다한 고전들은 이처럼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습’을 통해 앙상한 기억들만 남겼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뜻하는 고전. 하지만 시대배경이 다르고 현재 우리가 쓰는 문자나 문체와 달라 딱딱하게 느껴지는 고전을 직접 읽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제목은 알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게 고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특히나 어린이·청소년에게 고전은 우주 저 멀리에 있다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진다. 이런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그간 손쉽게 시도됐던 방식이 원본을 짜깁기 혹은 변형하거나 만화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동서양의 고전들을 원전에 가까우면서도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읽기 쉽도록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몇몇 출판사에서 이어졌고 결실을 맺고 있다. ‘창비’는 2003년 <토끼전>을 처음 펴낸 이래 지난해 말 20권째인 <최척전>을 마지막으로 ‘재미있다! 우리 고전’ 시리즈를 완간했다. 이 시리즈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옛이야기를 원문 그대로 읽히고 싶어하는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어필했고 성공을 거뒀다. 올해 초 시리즈 가운데 4권의 판권이 일본에 수출되기도 했다.

‘알마’에서도 2006년부터 ‘샘깊은 오늘고전’이란 타이틀 아래 한문으로 쓰인 우리 고전들을 한글로 다듬어 펴내고 있다.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을 두지 않은 이 시리즈 역시 조각나고 찢긴 채 읽히고 있는 우리 고전의 원래 이야기를 그대로 살려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시리즈 목록을 보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을 발굴하는 것에도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번주에 나온 <표해록>은 성종·연산군 시대의 문신관료인 최부가 바다를 표류하다 중국 남부지방에 도착, 베이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아이세움’ 역시 2006년부터 ‘나의 고전 읽기’라는 독특한 시리즈를 시작했다. 전문 연구자들이 <자산어보> <삼국유사> <사회계약론> <법구경> <공산주의 선언> 등 동서양 논픽션 고전의 원문을 발췌해 독창적인 시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14권째 책인 <미래를 창조하는 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소재다. 원문을 잘근잘근 씹어 소화하기 좋게 펼쳐 놓았다는 느낌을 준다.

‘명불허전’이라더니 이런 책들을 보면 ‘역시 고전(古典)은 고전(高典)’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솔기마다 생각의 샘들이 놓여 있다. 전래동화 전집이 유소년 시절 독서기억의 전부인 나로선 요즘 아이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이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  <2009. 6.12>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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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의 죽음을 해석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우리가 추모의 염을 담아 그의 죽음을 ‘서거’로 부르는 데 대해 “파렴치범에게 웬 존경”이라느니 “자살로 불러야 한다”느니 하는 저급한 딴죽이 들려오는 것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정치의 세계에선 하나의 색깔이 누구에겐 검게, 다른 누구에겐 희게 보이는 게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워낙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해석쟁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검은 것을 희게 보는 사람이나, 흰 것을 검게 보는 사람이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팩트’는 뭘까. 노 전 대통령이 꽤나 책읽기를 좋아한 독서가였다는 게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자신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음’을 들었다.

책읽기가 힘들어지기 전 그는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읽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그가 정독한 마지막 책으로 보인다. 세계화 시대에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철학적, 실천적 방편을 탐구한 이 책은 분량이 550쪽이나 되는 데다 건조한 문체여서 읽기가 쉽지 않다. 노 전 대통령도 “내용은 최고인데 정말 읽기 힘들다”고 투덜댔지만 꾸역꾸역 읽어냈다고 한다.

그에게 책읽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생전에 읽고 추천한 책이 하나둘씩 회자되면서 인터넷에 리스트가 올라왔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거나 추천했다는 책들의 목록을 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미래 비전을 강구한 책, 조직과 리더십·혁신과 변화에 관한 책, 역사서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책읽기는 단순히 지식을 넓히거나 시간을 때우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고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할 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매우 실천적인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요즘 유행하는 ‘독서경영’에 빗댄다면 ‘독서정치’라 할 수 있다.

일찍이 그의 책읽기 행위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6년 8월 경향신문에는 ‘책에 빠진 노 대통령 독서정치’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의 독서 편식과 무비판적 해석 경향을 우려한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언급했듯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배기찬의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대연정론(강원택의 <한국의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 등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제시하고 추진한 굵직한 정책과 담론의 배경엔 항상 특정 책이 등장했다. 책을 보고 감명받아 저자를 등용한 사례도 꽤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독서 못지않게 글쓰기를 좋아했다. 연설문을 직접 작성한 경우가 많았고, ‘편지정치’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지지자와 국민을 향해 수시로 글을 써서 인터넷에 띄웠다. 돌연한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귀중한 자산을 하나 잃어버렸다. 회고록이 마무리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회고록이 출간됐다면 한쪽에선 격찬을, 한쪽에선 비난을 쏟아냈을 것이다. 더구나 회고록이란 게 크든 작든 분식(粉飾)의 경향을 띤다. 하지만 5년 동안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 겪었던 일과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를 그 자신의 글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역사의 손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떠난 사람에게 “가시더라도 회고록은 마무리하고 가실 것을…”이라고 한탄한다면 너무 욕심어린 추모가 되는 것일까. <2009.5.31>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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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산티아고야?”

새로 나온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김희경/푸른숲)을 받아들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올해 들어서만 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재로 한 세번째 책이다. <비아델라플라타 : 산티아고 가는 다른 길>(김효선/바람구두), <산티아고 가는 길 : 카미노 데 산티아고>(최미선/넥서스BOOKS)가 먼저 나왔다. ‘산티아고’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지난해에 나온 것까지 헤아리면 번역서를 포함해 10권이 훌쩍 넘는다. 여행서 모으기가 취미인 동기에게 산티아고 여행서 좀 보자고 했더니 다음날 여섯권을 재까닥 가져왔다. 모두 지난 2년 이내에 나온 것들이다.

스페인 북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명인 야곱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순례의 대상으로 자리잡았고, 여러 갈래의 순례길이 만들어졌다. 특히 프랑스의 소도시 생 장 피르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764㎞의 순례길이 유명한데, 걸어서 가자면 30일 남짓 걸린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어떠하기에 많은 한국인이 고생스럽게 이곳을 걷고, 그 많은 책이 쏟아지는 것일까.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의 저자는 “독일인과 한국인을 빼면 카미노(길을 뜻하는 스페인어)의 순례자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 같다”고 썼을 정도다.

국내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인기작가 파울로 코엘류가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소재로 쓴 에세이 <순례자>가 2006년 국내에 소개됐고, 여행작가 김남희씨의 책도 비슷한 시기에 나오면서 관심을 확산시켰다. 제주도 올레길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조성되기도 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각광받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대론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재로 책을 쓴 사람들은 40세 언저리의 여성들이 많다. 386세대다. 이들은 교복자유화 세대, 해외여행자유화 세대다. 자유분방하고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면서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됐고 색다른 여행, 감동적인 여행을 갈구했는데, 산티아고 가는 길이 소구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힘들기는 하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처럼 험난하지 않은 데다 안전이 담보돼 있다는 것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점이다. 유럽과 외국인에 대한 동경심 역시 산티아고 가는 길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산티아고 여행서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싶은데 여건상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해외여행이 자유화됐지만 배낭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해 한이 맺혔던 사람들이 이처럼 색다른 여행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룬 여행 에세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세세한 내용이야 다르지만 스페인 시골의 이국적인 풍광을 담은 사진들,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데서 오는 고통과 이를 극복하는 순간 느끼는 희열, 순례길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그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 이국적인 음식들, 생경한 지명과 스페인어 몇 마디,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 등이 하나의 정형화된 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재로 한 책들이 나올 때마다 기시감이 더 깊어진다. <2009.5.15>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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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21 2009.07.12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난 울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유럽에 몰두할 시간에 세계의 '다른쪽'에 조금만 더 시선을 돌리면 그 몇 배는 더 얻어건질(저급한 표현은 죄송...)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ㅎㅎㅎ
    파울로의 <연금술사>는 누가 뭐래든 재밌게 읽었고, 절대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에겐 또 나대로의 <연금술사>와 산티아고의 길에 대한 추억(?)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제대로 연금술사의 길을 따라가려면, 스페인에서 머물지 말고 바다를 건너 사막을 걸어야 제대로 따르는 것 아닐까 싶어요. 탕헤르와 페스와 사하라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고 스페인에 머물면서 색다르고 이국적이고 개성있다고 주장하는 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