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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번역돼 발간된이 소설책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데뷔 25주년 기념 장편소설'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일본에서 발표된 게 2004년이라고 한다.


이 소설 역시 내가 읽어본 그의 다른 소설과 공통점이 많다. 뭔가를 상실한 선남선녀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각각 '관계'에 대한 상처 또는 아픈 추억을 안고 있다.

재즈, 팝, 그리고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이 바뀌는 배경의 공간마다 흐르고 서양의 의복과 역시 서양식 음식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역시 이 작품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양장본이지만 말랑말랑한 촉감을 주는 짙은 청색의 표지는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듯 싶다.

뒷표지엔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시련처럼 얼마간의 고통을 직접 겪으면서 스스로 공포를 헤쳐나가지 않으면 진짜 성장이란 없을 겁니다. 진짜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작품의 소개글이 짧게 인용돼 있다. 이 말을 보니 내가 읽은 그의 소설은 모두가 '성장소설'로 분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문장들은 지극히 건조한 것 같으면서도 때론 허세가 끼어있는 듯한 반감을 준다. 그러나 계절이 미묘하지만 확실하게 변해가고 있는 시절이라 그런가 그런 허세가 거부감을 주진 않는다. 가을엔 모두가 감상적으로 되기 마련이니까.

몇문장을 슬쩍 갈무리 했다.

애프터 다크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다카하시는 말한다. "법원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랑 비슷해. 그날 있는 심리審理랑 개시 시각이 프로그램 편성표처럼 입구 게시판에 붙어 있고, 그중에서 간심을 가질 만한 걸 골라 거기 가서 방청하는 거야.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 단 카메라와 녹음기는 못 갖고 들어가. 음식물도 안 되고. 떠드는 것도 금지돼. 자리도 좁고, 졸면 법정 경위한테 주의를 받기도 해. 하지만 어쨌거나 무료로 입장하는 거니까 불평할 순 없어."


  "그런데 법원에 몇 번 드나들면서 재판을 방청하다 보니까, 재판을 받는 사건하고 그 일에 얽힌 사람들한테 이상하게 관심이 생기더라고. 아니, 그보다 점점 남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 기분이 참 묘하더라. 그렇잖아? 거기서 재판을 받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나랑 다른 세계에 살면서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나랑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사는 세계하고 내가 사는 세계 사이엔 튼튼하고 높다란 벽이 있어.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잖아? 내가 흉악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없는걸. 난 평화주의자고, 성격은 온후하고, 어렸을 적부터 누구한테 주먹을 휘둘러본 적도 없어. 그렇기 때문에 순전한 구경꾼의 입장에서 재판을 볼 수 있었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그는 얼굴을 들고 마리를 본다. 그리고 표현을 골라 말한다.

  "하지만 법원을 드나들면서 관계자의 증언을 듣고, 검사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본인의 진술을 듣다 보니까 어쩐지 자신이 없어졌어.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거야. 두 세계를 가르는 벽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있어도 종이로 만든 얄팍한 벽일지도 모른다. 몸을 가볍게 기댄 순간 쑥 빠져서 저쪽으로 쓰러질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 자신 안에 저쪽이 벌써 몰래 숨어들어와 있는데 모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말로 설명하려니까 쉽지 않지만." (115~117쪽)


  "마리. 우리가 서 있는 지면은 말이지, 단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밑이 쑥 꺼지고 그래. 한번 꺼지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번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해. 저 아래 어둑어둑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고오로기는 자신이 한 말을 생각해보더니 반성하듯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189쪽)


  고오로기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여전히 손에 든 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생각하는 건데,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 광고지가 됐든,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이라든지 '가슴 끝내주네'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 게 아니야. 불 입장에선 전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해. 그거랑 같은 거야.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202쪽)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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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은 '물정(物情)'이라는 말의 뜻을 '세상의 이러저러한 실정이나 형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세상물정이라는 말은 세상일이 돌아가는 현상과 구조에 대한 묘사 혹은 기술을 뜻한다.


보통 세상물정이라는 단어는 나이 또는 지혜와 연관돼 사용된다.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라거나 '세상물정도 모르고 날뛰는 바보'와 같은 관용어구가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거나 많이 배웠다고 해서 반드시 세상물정에 밝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요즘처럼 해괴하고 어이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사회에선 세상물정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현대인은 대체로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사유(思惟)는 빈곤하다.


노명우 교수는 '사회학이 전문화의 길을 걷는 동안 잃어버린 세속적 삶으로 이끄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기 위해 연구실을 나왔다'면서 종교, 섹스에서부터 죽음까지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25가지 세상물정을 종횡으로 가르고 역사,사회,철학고전과 버무렸다. 앞서 보았던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의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과 유사한 방식인데, 한국에서 출간된 시기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이 앞선다.





좋은 삶은 단지 선한 의지로만 구성되어 있는 빈한한 삶과도, 지혜와 결합하지 못한 영악함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려한 삶과도 다르다. 좋은 삶은 한편으론 영리하되 영악하지 않은 지혜로움을 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선함이 지나쳐 주어진 모든 것들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무비판적 태도와 거리를 둘 때 가능하다. (17쪽)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은 힘이 세다. 상식은 분명 양적 다수에 근거한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27쪽)


상식이 바람직함으로 갖추면 양식(良識)이 된다. 하지만 상식은 양식보다 힘이 세다. (28쪽)


상식에는 없는 올바름을 갖추고도, 양식은 상식과의 경쟁에서 대체 왜 늘 지고 마는 것일까? 이유는 상식과 양식의 말투 차이에 있다. 상식은 상냥하고 어루만져 주는 어투를 사용하지만, 양식은 공식적이고 엄격하고 훈계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상식이 나를 무조건 이해해 주는 연인 행세를 한다면, 양식은 냉정한 심사위원과도 같다. (29쪽)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른스트 블로흐)에게 말하고 있다는 가금 인용되는 말을 빌려 오자면, 그람시는 좌파이지만 인간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상가이다. (31쪽)


악화에 의해 양화가 밀려날 때, 양화는 악화만을 탓한다. 물론 내용은 빈약한데 읽기 쉬운 책만 편식하는 독자들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난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핏대 세워 비난한다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화학조미료를 탓하기보다, 천연 재료로 만들었어도 화학조미료를 투하해 미각을 마비시켜 맛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음식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게 의미 있는 스타일 변화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43쪽)



르 봉은 군중이 개성을 먹어 치운다고 생각했다. 군중이란 개인을 동질적인 떼로 변형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오직 어떤 특정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집합체만이 그것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성격과는 다른 새롭고 강한 특징을 갖게 된다. 의식을 지닌 인격체는 사라지고 개인들의 감정과 생각은 전부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일시적이긴 하지만 매우 명확한 특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집합적 영혼이 구성된다."(구스타브 르 봉, [군증심리]) (64쪽)


타르드는 군중(群衆)이 서로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공동의 관심으로 연결되고 그로 인해 여론이 형성될 때 공중(公衆)으로 변화함을 발견했다.

…공중은 물리적인 광장에 모이지 않는다. 공중은 서로 흩어져 있다. 물리적인 근접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중은 오합지졸인 군중보다 정신적 밀도가 더 짙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무엇인가? 그 관계는 그들의 확신이나 열정의 동시성과 함께,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의식, 즉 이런 관념이나 저런 의지를 다른 수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순간에 공유하고 있다는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의식이다. 그 각각의 개인이 그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해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르도 충분히 그는 전체로서 받아들여진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가브리엘 타르드, [여론과 군중])(69쪽)



역사는 우리의 순진한 기대처럼 과거의 모든 기억이 집적되는 저장소가 아니다. ‘집합기억’은 과거에 대한 모든 기억의 총합일 수 없다. 역사라는 집합기억은 현재가 관장하는 선별의 문을 통과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역사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역사에 기록되는 사람은 승리자이다. 패배자는 기록되지 않는다. 승리한 사람은 자신의 승리를 역사가 길이길이 기억하도록, 기념일을 제정하고 기념식을 거행하고 기념탑을 세우고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한다.

…나치즘이 승리한 현실이 지속된다면 보호될 가치가 없는 유대인이었던 벤야민은 역사의 공허함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오롯이 담아냈다. (83쪽)



뒤르켐은 각각의 자살에서 관계를 파악하고, 다시 관계에서 "특정한 경향"을 해석해 내고, 그 특정한 경향을 개인 외부에 있는 사회적 힘과 연결시켰다. 각각의 자살을 이어 별자리로 기록하기 위해 뒤르켐은 자살률에 관한 통계자료를 뒤적인다. 뒤르켐이 지키는 방법론적인 원칙은 간단히 이렇게 정리된다. "현상의 생성 원인은 개별적인 사례만 관찰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원인은 개인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사건보다 더 높은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무엇이 개별적인 사례들에 단일성을 부여하는지 파악해야 한다."(에밀 뒤르켐, [자살론]) (175쪽)



‘콜드 팩트’와 마주했을 때 발생할 고통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고, 고통을 치유해 준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 탓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고통에 당신은 책임이 없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당신 마음 속의 고통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어떤 존재가 있다. 그 어떤 존재를 우리는 ‘콜드 팩트’라 부를 수 있다. 그렇기에 상처받은 삶은 상처받은 사회를 치유하지 않은 채 치유될 수 없다. 이 명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혹은 마치 상처받은 사회가 치유되지 않아도 개인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우리가 좋은 사회 속에 살고 있지 않아도 개인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권유는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긍정성으로 뒤범벅된 자기계발서만큼이나 거짓말에 가깝다. (266쪽)



세상물정의 사회학 - 10점
노명우 지음/사계절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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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삼스럽게 생긴 취미가 명작동화 감상하기다. 어렸을 적 읽었던 것도 있고, 줄거리만 알았지 정독하지 않았던 것들도 있는데, 다시 봐도 흥미진진하고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지난주말 나들이를 가면서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집어들었다. 긴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그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 이야기의 줄거리에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무모한 내기를 의연하게 해내는 댄디한 성격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Phileas Fogg)와 그를 은행강도로 오해해 뒤쫓으며 방해를 일삼는 픽스(Fix) 형사가 주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읽으면서 포그의 하인으로 채용된 첫날 엉겁결에 세계 여행을 따라나서게 된 장 파스파르투(Jean Passepartout)라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요새 드라마나 영화와 관련해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는 말이 많이 회자된다. 언론에서 그리 쉽지도 않은 영어 단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게 마음에는 들지 않는데, 여하튼 훌륭한 연기와 독특한 개성으로 주연 못지 않게 주목을 받는 조연을 신 스틸러라고 한단다.


파스파르투는 전형적인 신 스틸러에 해당할 것이다. 그는 냉철하고 침착하며 사소한 호기심 따위는 전혀 없는 주인 포그에 비하면 성격상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술 좋아하고 떠벌리기 좋아하며 다혈질인데다 호기심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80일간의 세계 일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파스파르투에서 촉발된다. 파스파르투가 촉발시킨 사건들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포그의 여정을 방해하지만 그럴수록 독자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시간이 아무리 남아돌아도 관광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이 객실에 남아 카드놀이나 하는 포그와 달리 파스파르투는 주요 도시에 갈 때마다 관광을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세계여행의 즐거움도 안겨준다. 그러고보면 [돈키호테]에서 망상에 휩싸여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라는 주인공과 현실적인 하인 산초의 성격이 대비되는 것과도 겹친다.


여하튼 어렸을 적 봤을 땐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가 그리도 대담하고 멋있게 보이더니, 지금은 포그는 지독히도 멋대가리 없는 인물인 반면 파스파르투가 참 정이 가는 인물로 느껴진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 초판본에 실린 장 파스파르투 삽화. Alphonse de Neuville & Leon Benett의 작품이다. 파스파라투는 만능열쇠라는 뜻이다.) 


작품 전체에서 파스파르투의 활약은 계속 이어지는데 거의 마지막에 파스파르투의 성격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대륙횡단 열차에 탄 그는 모르몬교의 본거지인 솔트레이크 근처에서 모르몬교 선교사가 열차 안에서 개최한 집회에 참석한다. 모르몬교가 일부다처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상식 밖에 없었던 그는 선교 집회에 참석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열심히 경청한다.


  이제 객차에 남은 청중은 파스파르투밖에 없었다. 장로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로 그를 현혹시켰다. 그는 스미스가 살해된지 2년 뒤에 그의 후계자로 계시를 받은 예언자 브리검 영이 노보라벨을 떠나 솔트레이크 호숫가에 정착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주민들이 유타 주를 통과해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비옥한 땅에서, 새로운 이주민 집단이 일부다처제의 원칙을 기반으로 크게 발전했다는 말도 했다.

  윌리엄 힛치가 열심히 말했다.

  "이게 바로 의회가 우리를 질투하는 이유라오! 연방 정부의 군대는 어째서 유타의 땅을 짓밟았을까! 우리의 지도자인 예언자 브리검 영이 어째서 정의와 상관없이 감옥에 갇혀야 했을까! 그런다고 우리가 힘에 굴복할 것 같소? 천말의 말씀! 버몬트에서 쫓겨나고, 일리노이에서 쫓겨나고, 오하이오에서 쫓겨나고, 미주리에서 쫓겨나고, 또 유타에서 쫓겨났지만, 우린 독립된 영토를 반드시 찾아내어 그곳에서 우리의 장막을 세울 거요……. 그런데 당신……."

  장로가 하나뿐인 청중인 파스파르투에게 성난 눈길을 고정시킨 채 물었다.

  "당신도 우리의 깃발 아래로 들어오겠소?"

  "천만의 말씀!"

  파스파르투는 용감하게 대답한 뒤, 그 광신적인 설교자를 사막 가운데 내버려 둔 채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293~294쪽)


  파스파르투는 신념을 가진 독신주의자였다. 그래서 한 남자의 행복을 위해 여럿이 짐을 감당해야 하는 여자 모르몬 교도들을 바라보면서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남편들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기쁨이 가득한 낙원에서 명예로운 자랑거리가 되어 있을 영광스러운 스미스와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그 많은 아내들을 이끌고 삶의 굴곡을 지나는 내내 그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져야 한다는 게 끔찍하게만 여겨졌다. 결정적으로 파스파르투는 그런 사명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도 착각이겠지만, 그는 솔트레이크 시티의 여자들이 자기에게 약간 심상치 않은 눈길을 보낸다고 생각했다. (298~299쪽)


  기적 소리가 들렸고 기관차의 바퀴가 레일 위를 미끄러지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멈춰요! 멈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기 시작한 기차는 서지 않는다. 그렇게 소리를 지른 신사는 출발 시간에 늦은 모르몬 교도였다. 그는 숨이 차게 달렸다. 다행히 역에는 문도 울타리도 없었다. 그는 선로로 훌쩍 뛰어들어 맨 끝 객차의 발판으로 뛰어올랐고, 마침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객차의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이 묘기 같은 행동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파스파르투는 이 지각생을 흥미롭게 찬찬히 살펴보았다. 파스파르투는 이 유타 주의 시민이 부부 싸움 끝에 도망쳐 온 것임을 알고 그에게 큰 호기심을 느꼈다.

  모르몬 교도가 한숨을 돌리고 나자, 파스파르투는 그에게 아내가 몇 명이냐고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도망친 것을 보면 적어도 스무 명쯤 될 거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가 두 팔을 하늘로 쳐들면서 대답했다.

  "하납니다, 하나! 하나도 지긋지긋해요!" (299~300쪽)



80일간의 세계 일주 - 10점
쥘 베른 지음, 김주경 옮김, 레옹 베넷 외 그림/시공주니어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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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마음' 전문가들과의 대화) 연재를 시작했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가 세계적인 '마음' 전문가들을 찾아가 대담을 나눈다. 첫번째 손님이 스티븐 핑커였다.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그어본다.


안 = 인류 역사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길은 한 갈래로 상승해왔고, 앞으로도 서로 보완해 가리라고 봅니다. 선생님은 진화심리학자로서 우리 마음은 아주 오래전에 디자인됐다고 하셨는데, 그럼 고고학에 대해 더 많이 안다면 현재 우리의 마음, 또 세상을 훨씬 잘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인가요?


핑커 = 과거에 대해 더 알게 된다면 현재에 대해 보다 현명해질 수 있겠죠. 어린아이들은 읽기에 서툰 반면, 성인들은 독해능력이 높습니다. 이는 읽기가 아주 최근의 인간 역사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이기도 해요. 인간의 뇌가 아직 읽기에 맞춰지지 않은 거죠. 말하기에는 적응되어 있습니다. 말 배우러 학교에 가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읽으려면 최소 몇 년은 학교에 가야 합니다. 또 다른 예로 입맛을 들 수 있습니다. 왜 몸에 좋지 않다는 그 많은 설탕과 소금, 지방을 섭취할까요? 입맛이 기아에 허덕이던 시절에 맞게 적응돼 있어서 그래요. 우리가 설탕이나 지방을 소비하도록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일은 기근에 대비하는 거죠. 비만을 염려하는 나라들에서는 결코 기근 따위는 오지 않을 텐데도 그런 습성이 남아 있는 것은 우리 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맞춰져 있다는 예가 됩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들이 거미와 뱀을 무서워하죠. 운전하면서 문자 보내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요. 위험으로 치면 운전하면서 문자 보낼 때 간이 졸아드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대신 거미가 나타나면 등을 움츠립니다. 네, 그 옛날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그런 감각이 자리잡지 못한 거죠. 우리는 정부 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법원도 없고 경찰도 없었어요. 그래서 복수하려는 폭력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거죠. 분쟁을 조정하는 방법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불건전할 수 있는 방법인데도 사람들은 아직까지 무시당했다고 여기면 싸우려듭니다. 이것도 또 다른 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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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 민주적인 마음을 확산시킨다면, 먼 훗날 평화주의로 우리의 마음도 진화할까요?


핑커 = 다윈의 진화론이 갖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는 진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이런 종류의 진화는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려야 자리 잡을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이는 어떤 형질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형질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많이 생존 자손을 퍼뜨릴 때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저는 독재나 군주제를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유전자를 바꿀 정도로 오래 우리 역사에 존재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진화는 다윈주의가 문자 그대로 말하는 유전적 차원보다는 문화적 차원으로 대체되는 진화와 흡사한 내용으로 표현된 건데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인간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행복을 증진시키는 많은 구조를 창조해 왔잖아요. 인간적 본성을 갖고 있음에도 법정 시스템을 만들었죠. 이는 사람을 감정으로 처단하는 대신에 법과 경찰, 제3의 기관에 의해 판정하는 게 더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아직 변화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를 개선하는 사회적인 기구나 장치를 창조할 겁니다. 더 나은 삶을 만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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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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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차용한 것이 분명한 [MD본색: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제목은 경쾌하다. 그러나 책에 담긴 내용은 무겁고 어둡기만 하다. 한반도 주변에서 돌아가는 MD라는 톱니바퀴에 발목이 끼어 종아리, 무릎, 허벅지까지 차례로 끼어들어가는 한반도의 형국이 폭로되고 있어서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4대 열강이 각축하는' 한반도에서 외교와 안보는 사활이 걸린 사안이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은 언제든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위기의 만성화 때문일까, 잠시나마 열렸던 남과 북 사이의 화해와 대화 무드 때문일까, 우리는 이런 위기에 종종 둔감하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감고 있는 이 순간에도 각자의 이익과 논리를 앞세운 열강의 각축은 치열하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사건으로 사드(THAAD) 논란이 갑작스럽게 돌출했으나, 사실 사드라는 '부분'을 포함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계획은 동북아 외교안보의 치열한 쟁점으로 부상한지 오래다. MD논란은 탈냉전과 함께 부상한 최근으로 것으로 오인되기 쉽지만 논쟁의 핵심 구조는 미소냉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기간의 평화를 지탱했던 논리가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이었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확신이 미소 양측에 있었고, 이로 인한 공포심이 핵전쟁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했다. 그런데 상호확증파괴는 어느 한쪽이 절대적 핵전력 우위, 즉 절대안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약속이 바로 ABM조약이었다. 이 조약은 단순히 말해 상대방으로부터 날아오는 탄도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미소 양국이 서로의 약점을 방치함으로써 공포에 의한 균형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였다.


MD는 이런 약점을 없애고 상대방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완벽한 방어막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생각해보자.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무기를 지닌 A와 B가 서로 대치하고 있다. 그런데 A가 B의 공격을 막아낼 완벽한 방어막을 구축했다. B의 입장에선 자신이 가진 무기가 무력해졌다는 뜻이 된다. B로서는 A가 언제든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고 두려워할 것이다. 당연히 B는 A의 방어막을 뚫기 위한 새로운 무기 개발에 나서게 된다. B의 무기가 더 위력적이게 되면 A는 방어막을 더 정교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핑퐁처럼 무한 반복되는 상황을 바로 '군비경쟁'이라고 한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무한 군비경쟁은 막대한 이익을 올릴 군수업체와 이들로부터 뇌물 또는 로비를 받을 정치인 빼고는 비효율만 낳을 뿐이다.


그래도 북한 미사일 방어라는 혜택이 있지 않느냐고? 최대 속도가 초속 5킬로미터(시속이나 분속이 아니다!)에 달하는 탄도마시일을 미사일이나 레이저로 맞춘다는 MD가 과연 현실에서 유용한 무기체계인지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숱한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것만 지적하고자 한다.


외교 특히 안보 분야는 어려운 영문 약자가 난무하고, '전략적 안정' 또는 '전략적 모호성', '억지' 등 한글 용어도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해당 사안을 쉽게 풀어 전해야 하는 것이 기자들의 기본적인 임무인데, 이런 것들을 다 풀어서 쓰려면 원고량이 너무 길어져서 정작 전해야 할 주제를 심도 있게 건드리지 못한다.


저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외교안보 사안을 단순한 '운동' 차원으로만 접근하는게 아니라 나름의 분석과 자료에 입각해 실증적인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사드와 MD가 왜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고, 중국이 MD의 한국 배치를 왜 그토록 반대하고 있으며, MD를 한반도에 배치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MD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안되는지에 대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은 'MD와 북핵의 적대적 동반성장'이라는 용어에 압축돼 있다.





북핵은 미국의 MD 집착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MD는 21세기 유라시아의 철의 장막이 되고 있다.

MD와 북핵은 적대적 동반성장을 하고 있다.

MD와 북핵의 악연을 끊어내지 않는 한, 평화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MD와 북핵의 악연은 끊어낼 수 있다.


이 책의 요지를 다섯 문장으로 요약해본 것이다. 단언컨대, MD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이다. MD를 아는 만큼 북핵 문제도 볼 수 있게 된다. (머리말)




결국 부시 행정부의 MD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에 대한 집착을 다시 호출하고 말았다. 반대로 김정일 부자의 이들 무기에 대한 집착은 MD라는 괴물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MD와 북핵의 적대적 동반성장이다. (88쪽)



북핵과 이란 핵, MD와 관련한 미국의 협상 양태를 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이 MD라는 저울에 북한과 이란을 양쪽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상황이 10년 가까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 말기인 2007~2008년에 북미관계는 2000년에 이어 제2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가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북한을 삭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 MD 구축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바로 이때 유렵에서는 '신냉전' '미사일 위기'가 언급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미국이 이란 위협을 이유로 MD 배치를 강행하려고 하자, 러시아가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재배치하겠다고 맞서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제의를 거듭 뿌리치면서 북한 위협을 이유로 한-미-일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을 달고 말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이 세 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은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똬리를 틀고 있다. 동시에 북한 위협을 근거로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전략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의도가 내포된 것을 보인다. 이 와중에 동아시아에서는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MD를 둘러싼 한미일 대 북중러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2014년 '사드(THAAD) 논란'이 대표적이다.

반면 이란과의 핵협상에는 그야말로 올인하고 있다. 이란은 아직 핵실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을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주장이다. 또한 협상을 포기해 이란의 핵무장 문턱을 넘어서면 중동에서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중동 분쟁도 격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이 북한과 이란을 상대로 동시에 협상에 나서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미국은 북핵 협상에 집중할 때는 이란 핵 위협을 이유로 MD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반대로 이란과의 협상에 몰두할 때는 북핵을 MD의 최대 구실로 삼는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우연일까? 대화를 통해 적대관계를 해소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적을 필요로 하는 것이 미국식 체제의 특징이라면, 이런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119~121쪽)





동북아의 전략적 불안의 매트릭스는 네 가지이다. 하나는 한반도 차원에서 한미동맹 대 북한 사이의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차원에서 중국과 일본의 갈등관계이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경쟁이 있고, 이는 동북아 정세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끝으로는 미일동맹(해양 세력) 대 중러협력체제(대륙 세력) 사이의 대립 격화이다. 이게 한미일(남방 삼각동맹) 대 북중러(북방 삼각동맹)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북핵 문제 및 이에 대한 한미일의 MD 구축 시도는 이러한 갈등 구조를 더욱 격화시키고 또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MD가 미일동맹의 결속을 다지는 핵심 프로젝트였던 것만큼이나, 미국 주도의 MD는 냉전시대 적대적이었던 중러관계를 우호협력관계로 전환시키고 준군사동맹 관계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174쪽)



한때 북핵 문제가 5자를 결속시킨 사유였다면, 이제는 MD가 6자를 분열시키고 헤쳐 모이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사드 논란은 이러한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냉전을 그나마 불안한 평화로 유지케 했던 ABM 조약이 오늘날에는 없다. 한반도에서 북핵과 MD가 적대적으로 동반성장하면서 그 파장이 동북아 전체로 번지고 있고, 강대국 간의 군비경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적어도 오늘날의 동북아 질서가 냉전시대보다 질적으로 좋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과 MD의 적대적 의존관계를 혁파하지 않는 한,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과 평화는 공허한 구호로 끝날 것임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현실이다. (175쪽)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핵 때문에 전작권 환수가 시기상조라면, 핵 문제 해결도, 전작권 환수도 영원히 불가능해지고 한국은 MD의 늪에 더더욱 깊숙이 빨려들어갈 것이라는 데 있다. 한미, 혹은 한미일이 대북 대화는 기피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MD에 매달릴수록 북한도 핵과 미사일 전력 증강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보수 진영은 또다시 전작권 환수가 곤란하다고 할 것이고, 미국은 이를 지렛대로 삼아 한국에게 MD 참여를 더욱 높은 수준에서 요구할 것이다. 이렇듯 전작권 연기-MD-북핵의 악순환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외교의 가장 참담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214쪽)



보수 정권 들어 한국의 MD 참여가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이를 거듭 부인해왔다. 이와 관련해 네 가지 문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 영토에 미국 MD 시스템이 배치되면, 그건 MD 참여인가, 아닌가? 둘째, 한국이 누군가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탐지·추적해 그 정보를 미국과 일본에 전달하는 건 MD와 무관한 것인가? 셋째, 한국형 MD라는 KAMD와 미국 MD의 상호운용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MD 참여와는 무관한 것일까? 넷째, 한국이 미국 및 일본과 함께 MD 대화를 하고 정보고 공유하고 훈련도 함께 하는 것도 MD와는 상관없는 것인가? (214~215쪽)



MD본색 : 은밀하게 위험하게 - 10점
정욱식 지음/서해문집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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