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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13 두꺼운 책의 압박, 두꺼운 책의 즐거움...
  2. 2009.07.22 <서평>냉전의 추억 (3)
짧은 시간 내에 리뷰를 써내야 하는 입장에서 두꺼운 책은 아무래도 부담이다. 솔직히 황당하게 두꺼운 책은-최근에 나온 <앤디 워홀 일기>는 큼지막한 크기에 942쪽이었고, <생각의 역사1>(들녘)은 1239쪽이었다-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때문에 일독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머릿말과 목차를 보고 읽을 부분을 골라 발췌읽기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700~800쪽 분량에다, 개인적 관심사를 다루는 흥미있는 책일 경우다. 대개 그렇듯 앞부분을 조금 읽다보면 재미를 붙이게 되고 끝까지 읽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속독법의 대가가 아닌 이상 700~800쪽 짜리 책 한권을 아무리 빨리 읽더라도 필요한 시간의 절대치가 있다.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도 남아 책을 붙들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페이지 끝을 접어가면서 읽는데 한권을 모두 끝내고 나면 책의 모서리 부분이 불룩해진다. 나름 중요한 부분을 밑줄긋고 접어 놓는다고 한건데 이것도 너무 많아지면 어떤 내용이 어디에 있었는지 찾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메모지를 갖다 놓고 중요한 표현이나 키워드를 간단히 쓰고 해당 페이지를 기록해 두는 방식이다. 눈길을 끄는 도판이 있는 페이지를 표시하는덴 포스트잇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렇게 꼬박 한권을 읽고 나면 12시가 가까운 시간이 된다. 마감은 내일 낮인데 말이다. 여기서 드는 갈등. 새벽까지 쓰고 갈까, 아니면 내일 아침에 와서 쓸까. 책을 읽어내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기 때문에 읽은 내용을 리뷰하는데 들어갈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아래 두권의 책도 그랬던 경우다. 두권 다 분량이 각주와 참고문헌 포함 800쪽이 넘는다. 첫번째의 경우는 시간에 너무 쫓겨 마감을 하다보니 매끄럽게 정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두번째는 첫번째 책의 경험이 있어선지 첫번째 보다는 고통이 덜했다. 한국전쟁을 전공한 모 교수가 다른 일로 사무실에 들렀다가 이 책을 보더니 "이 책이 번역됐나요? 매 학기 학생들에게 원서로 읽히는 책인데"라며 반색을 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데 학술적인 무게가 검증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책의 내용과 서술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그탓에 밤을 새야 했지만.

2005년에 번역된 앤드류 고든의 <현대일본의 역사>(이산)는 도쿠가와 시대에서부터 일본 근대의 출발이라는 메이지 유신을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정치사의 다이나믹스를 다뤘다. 존 다우어는 앤드류 고든이 하나의 챕터로 다룬 부분을 한권의 책으로 부풀렸다. 원경과 근경에서 일본을 바라본 두 책을 함께 놓고 보면서 맥락을 이해하고 관점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종전 후 일본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맥아더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맥아더 평전은 마이클 샬러의 <더글러스 맥아더>(이매진)가 꽤 인정받는 책이다. 최근 나온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살림)(이 책 역시 1084쪽이라는 분량이 압도하지만 저널리스트 특유의 쉬운 문체인 것이 위안이다)는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가 보여준 행위들을 고찰하면서 그를 마마보이에다 소영웅주의에 휩싸인 인물로 그렸다.

두꺼운 책의 미덕은 역시 내용을 축약하지 않고 상세하게 기술해 사안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것과 풍부한 자료가 동원돼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가 설정한 문제의식의 줄기가 초반에 잡힌다면 긴 글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중간에 덮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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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주름

냉전의 추억 - 10점
김연철 지음/후마니타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이 최근 책으로 묶어 낸 <냉전의 추억>을 보면서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난 7월11일 일반에 개방된 우이령 길이었다. 1968년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한 침투로로 사용한 것이 밝혀지면서 폐쇄된 뒤 41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그 길 말이다. 남북 사이의 대결은 우리 내부에 있었던 길마저 끊어버릴 정도로 위력을 발휘했다. 하물며 남북 사이의 길이야 말해 무엇 하리.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물리적·정신적 선을 긋고 반목과 대결, 증오와 저주를 일삼던 시절을 우리는 '냉전'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말 미·소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담론의 영역에서 냉전이라는 용어의 사용빈도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한때 우리도 냉전을 추억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긴 했다. 2007년 3월 취재차 개성과 개성공단 방문할 때 나도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는 것이었지만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는 이미 수많은 남쪽 사람들이 금강산·개성·평양을 방문한 뒤였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당부의 말은커녕 "이제야 처음 가보나?"란 핀잔어린 질문을 들을 정도였다. '의식' 있는 지식인들조차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사적인 토론의 장에서, 술자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설마 냉전 시절로 되돌리기야 하겠어?"라고 말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역사의 비가역성(非可逆性)에 대한 믿음이 깨져나가려는 조짐을 목도하고 있다.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냉전의 추억>은 좁게나마 열렸으되 다시 잡초가 자라기 시작한 남북 사이의 길, 이 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를 되짚고 있다. 저자가 그간 재계(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학계(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관계(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에 두루 몸담으며 남북관계에 관한 이론과 실무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만큼 개인적 경험과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버무려졌다. '산비탈의 작은 샛길도 사람들이 다니면 넓은 길로 변하지만, 잠시라도 그 길로 다니지 않으면 잡초가 자라 길을 막는다'(맹자)가 열쇠말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은 무한대결의 시대였다. 당시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었고, 공교롭게도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간첩(단)과 무장공비가 출현해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럼에도 길을 만들려는 정부의 시도는 있었다. 첫 결실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다. 소련·중국과의 '데탕트'를 추진했던 닉슨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첫 만남'은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꼭두각시란 뜻의 '괴뢰(傀儡)'로 부르던 시절. 상대측 대표단을 평양과 서울로 불러들이면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비 오는 날 스프링클러를 뿌려대는가 하면 급하게 길을 닦으면서 뿌리없는 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초절정 코미디성 아이디어가 난무했다. 합의문을 작성할 때도 상대방을 인정한 전례를 문서로 남기지 않기 안간힘을 써야 했다. 7·4 남북공동성명의 명의가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 김영주'라고 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이 1991년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면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인정하기 전까지 이런 일이 반복됐다.
 남북대화의 꽃은 역시 정상회담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앞선 정부들도 끊임없이 정상회담을 시도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초장부터 떠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애용된 것이 밀사(密使), 즉 비밀사절이다. 이 책은 정홍진·이후락·박철언·박지원·임동원·김만복 등 북한 땅을 밟았던 남측 밀사들의 계보를 짚어가면서 남북간 비밀대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그런데 권위주의 정부들은 왜 정상회담을 추진했을까. 시민들이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잡아가두려고 혈안이 됐던 정권들이 말이다. 이 책은 이 부분을 깊게 다루지는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만 남북관계는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외부의 적' 북한과의 냉전적 대결은 남한 내부를 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써먹었지만, 한편으론 결여된 정권의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남북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남북정상회담이 최초로 성사된다면 대통령으로선 최대의 업적이 될 터였다.
 정·관계 인사들이 걸었던 길과 달리 험하디 험한 가시밭길이 또 하나 있었다. 정부의 불합리한 처사에 열받아서 막걸리를 먹고 '북한은 없는 사람들을 위하는 정부라더라'라고 한탄하기만 해도 잡혀가던 것이 일상이던 시절 불타는 사명감으로 남과 북 사이에 길을 걸었던 민간인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돌아왔을 때의 처벌을 감수하고 북녘 땅을 밟았다. 김낙중이 그랬고, 문익환·황석영·김수경·문규현이 그랬다.
 이들이 비밀리에 북녘 땅을 밟은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남한 사회는 온통 홍역을 앓아야 했다. 정부와 보수언론, 보수세력은 이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었지만 한쪽에선 이들의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 저자는 당연히 후자쪽이다. 그는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민간 교류의 길이 만들어졌다. 루쉰의 말처럼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사람들이 걸어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냉전의 추억>에서는 이밖에도 1992년 이동복 훈령조작 사건, 한반도기의 연원(뉴라이트가 도끼눈을 뜨고 비난하는 한반도기는 사실 오랜 남북대화의 결과물이다), 이산가족 상봉사, 남북한이 주고 받은 선물들, 간첩의 누명을 받고 억울하게 스러져간 사람들, 금강산 관광·개성공단을 성사시키기 위해 흘렸던 눈물, 북핵문제 등 '우습지만 슬픈 냉전의 풍경'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본 부분은 김영삼 정부에 대한 저자의 혹평이다. 정권별 남북회담 횟수만 봐도 그 근거가 나온다. 박정희 정부는 111회, 전두환 정부는 32회, 노태우 정부는 163회, 김대중 정부는 80회의 남북회담을 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고작 28회였다. 저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전쟁 직전까지 갔었던 1994년 6월 북핵 위기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하고 그때 대판 싸웠습니다. 그때 내가 싸우지 않았으면 아마 '남북전쟁'이 났을거에요"라고 쓴 대목에 실소를 보낸다.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 전쟁의 벼랑에서 한반도를 구한 것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이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는 포부를 갖고 취임했던 김영삼 정부는 왜 이처럼 형편없는 결과를 가져왔나. 저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무능과 대북 강경파들의 오기가 하마터면 전쟁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고 적나라한 비판을 쏟아냈다. 국내 여론에 휘둘려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미숙하기 그지 없는 자세로 남북관계에 임한 바람에 미국마저도 "제발 일관성을 보여달라"고 하소연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에 대한 저자의 혹평은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다. 임기 1년반을 지나고 있는 현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수의 모자를 쓴 실력 없는 '올드 보이'들의 귀환인가?", "오늘도 실력은 없지만 색깔이 강한 전문가들이 설친다. 오늘도 무능한 정부는 공포를 뿌린다"고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남북관계를 일거에 '시계제로' 상태로 만들며 냉전시대를 연상시키게 한 현 정부를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냉전의 풍경들의 다시 살아나고, 증오의 말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반면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이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근본인 군사적 대결구조 완화까지 나가지 못한 한계를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북한의 후계구도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안정적인 상황이었더라도 남북관계가 꿀렁댈 수 밖에 없는 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남한 정부는 "이번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심사다. 뒤로 달리는 기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저자가 말하듯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는 일단 "냉전의 추억을 딛고 평화의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계간 광장 4호>(2009년 여름)
Posted by 까만주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