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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바이오그래피 매거진5-최재천

워낙 책을 닥치는대로 보긴 하지만 근래 갈무리한 책들이 중구난방이다. 게다가 주요 독서시간이 버스타고 이동하는 시간이다보니 부담이 적은 짧고 가벼운 책들이 손에 들어온다.


최재천 교수. 워낙 유명한 인물이어서 더 설명을 보탤 게 없다. 그의 고향 강릉 이야기는 내가 유일하게 통독한 그의 수필집 <열대예찬>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경복중-경복고-서울대-미시건대-하버드대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주류 인사로만 알았는데, 그가 살아온 인생의 솔기마다 이야깃거리가 솔찮게 많은 줄은 몰랐다. 그를 수식하는 '시인을 꿈꿨던 동물학자'가 그저 멋부리용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나는 최재천 교수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분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꼽아보라면 통섭(consilience)과 진화론과 제인 구달일 것이다. 그는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번역하고 한국에는 없던 통섭이라는 용어를 번역어를 고안했다. 그래서 통섭의 저작권은 상당 부분 그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과 제인 구달을 그가 전유(專有)해 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왠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저명한 사회생물학자(그가 가장 선호하는 호칭이라고 한다)이기에 진화론은 그의 강력한 학문적 기반이고, 세계적인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 역시 그의 연구영역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진화론에 대해 대중이 갈수록 귀를 기울이고, 제인 구달이 한국에 올 때마가 항상 그가 가이드 또는 '호위무사'처럼 동행하는 것 같이 비춰지면서 진화론과 제인 구달에 대해 일종의 독점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억울해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감정은 사적인 인상 비평이기에 어떤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이런 느낌이 '오해'로 판명되기를 바란다.


다음은 책 이야기. 양장제본을 한 이 책은 잡지를 표방하고 있는데 한 권이 한 인물을 다룬다. 앞서 이어령, 김부겸, 심재명, 이문열을 다루었다고 한다. 고급스런 제본과 화보, 그리고 여러편의 짧은 글들로 채워진 이 책은 마치 잘 단장된 블로그를 보는 듯 했다. 앞서 나온 책들은 보지 못했으나 최재천 교수를 다룬 5권을 보면 상당히 공을 들여 제작됐다. 재미난 형식의 잡지(또는 책)인 것만은 틀림없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5 최재천 - 10점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스리체어스



글 잘 쓰는 과학자로 유명하신데 비결이 있습니까?

“미국 유학 시절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영문과 교수님한테 문장 수업을 받았어요. 그분이 나중에 제가 박사 학위를 하러 다른 대학에 지원할 때 추천사를 써 주셨어요. 그 추천사가 저한테는 감격이었어요. ‘그는 경제적이고 정확하고 우아하게 쓴다He writes with economy, precision and grace.’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싶었죠. 이후로 머릿속에 그 세 가지를 박아 넣고 써요.”


.....


전문 분야일수록 쉽게 써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쉬운 내용이 아니라 쉬운 문장으로 쓰라는 뜻이죠. 리처드 도킨스가 그런 얘길 했어요. 과학의 대중화를 한답시고 글 쓰고 강연하면서 진짜 과학은 쏙 빼고 흥미롭게 포장해서 분위기만 띄우는 건 안 된다고. 저도 절대적으로 동의해요. 과학적 글쓰기가 그래서 힘든데, 내용은 충실하되 전달은 쉽게 해야죠. 아인슈타인도 그랬다고 하잖아요. 할머니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네가 모르는 거라고.


.....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화학자입니다. 150년도 더 된 진화론이 현대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두 가지로 얘기해 볼까요? 하나는 우리가 대체 지금 왜 이곳에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가장 탁월한 이론이기 때문이에요. 학문에는 물리학도 있고 사회학도 있고 법학도 있지만 모두 추리고 발라 뼈대만 남기면 지적 활동의 궁극은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거에요. 그 해답에 가장 접근한 이론이 다윈의 진화론이죠. 두 번째는 우리가 당면한 거의 모든 일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에요. 제 딴에는 그걸 유전자장遺傳子掌 이론이라고 표현해 봤는데, 결국 우리는 유전자 손바닥 안에 있다는 얘기예요. 인간이 고래처럼 바닷속에 몇 시간씩 머물 수 있나요? 안 되죠. 우린 몇 분만 지나도 익사하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 생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인간 사회의 여러 일들은 따지고 보면 진화의 결과물에 연결된 것들로 구성되어 있죠.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 삶을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에 가깝다는 생각이에요.” (인터뷰 중에서)



우리는 경쟁이 전부라고 서로를 세뇌시켜 왔습니다. 적은 양의 자원만이 남았으니 경쟁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쟁만 내내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룹별로 묶었을 때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생물이 뭘까요? 고래도 아니고 코끼리도 아닙니다. 바로 식물입니다. 개체 수로 따지면 누가 가장 성공했을까요? 바로 곤충입니다. 곤충과 식물은 항상 경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를 도우며 공생Symbiosis해 왔습니다. 공생에 의한 상호 작용이 생존을 위한 강력한 도구였고, 가장 경쟁력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예전 방식을 답습한다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현명한 인간이라며 붙인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포기하자고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은 할 수 있습니다. 이 행성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이니까요. (TED 강연 중에서)




(2008년 8월 과천 서울대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