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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동물농장

날이 추워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벛꽃이 피었다고 신문에 사진이 실렸다. 아닌게 아니라 겨울도 한참 겨울인데 올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다. 비가 와야할 때 오지 않아서, 더워야 할 때 덥지 않아서, 추워야 할 때 춥지 않아서 걱정인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최근 파리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열렸다는데, 기후변화의 위협은 점진적이어서 각 나라와 개인의 대처는 굼뜨기만 하다.


<동물농장>은 풍자소설이지만 슬프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암퇘지 스퀼러였다. 스퀼러는 독재자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의 전횡이나 모순이 드러나면 그럴듯한 거짓말과 선전선동으로 동물들의 논리와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의 언변과 설득력은 대단해서 동물들의 기억을 조작해내기까지 한다.


스퀼러는 소련 공산당의 기관지였던 '프라우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도 언어가 인민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동물농장>에서도 인민이 공적 영역에 관한 정보를 접하는 주요 원천은 언론이며 언론이 어떤 사항을 왜곡하기로 작정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련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지금 언론은 스퀼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동물농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민음사


<1장>


(전략)


곧 그날이 오리,

독재자 인간이 쫓겨나고

잉글랜드의 기름진 들판이

짐승들의 것으로 돌아오는 그날이.


우리들의 코에서 코뚜레가 사라지고

우리들의 등짝에서 멍에가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잔혹한 회초리도 없어지리라.


상상조차 못 할 부유함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

클로버와 콩과 사탕무가

모두 우리 것이네, 그날이 오면.


(후략)


<3장>

돼지들은 직접 일은 하지 않는 대신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휘했다. 아는 게 많았기 때문에 돼지들이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마침내 동물들은 과거 존스와 그 일꾼들이 했을 때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수확을 끝냈다. 게다가 이번의 건초 수확은 농장이 생긴 이후 최대의 것이었다. 낭비는 전혀 없었다. 암탉과 오리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다가 마지막 풀 줄기까지 모두 챙겨다 모았기 때문이다. 풀 도둑질도 없었다. 농장의 어느 동물도 한 번 입가심할 만큼의 풀조차 훔치는 일이 없었다.


………


왜 그래야 하는지를 다른 동물들에게 설명하느라 언변가 스퀼러가 파견됐다.

동무들, 여러분은 설마 우리 돼지들이 저들끼리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또는 무슨 특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겠지요? 사실은 우유, 사과를 싫어하는 돼지들도 많아요. 저도 싫어합니다. 그런데도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가져가는 것은 건강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 돼지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동무들, 이건 과학적으로 밝혀진 일입니다. 우리 돼지들은 머리 쓰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 돼지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여러분의 복지를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돼지들이 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어찌되는지 아십니까? 존스가 다시 오게 돼요. 존스가! 그래요, 존스가 다시 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동무들.


<5장>

그의 연설이 끝났을 즈음에는 표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가 이미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폴레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 특유의 곁눈질을 스노볼에게 한 번 던지고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에게서 들어 본 적 없는 날카로운 소리를 꽥 하고 내질렀다.

그러자 밖에서 마치 사냥감을 몰 때 개들이 짖는 무시무시한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더니 목걸이에 놋쇠 장식을 더덕더덕 붙인 커다란 개 아홉 마리가 헛간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개들은 스노볼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 스노볼은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나 개들의 이빨을 피해 도망쳤다. (중략) 동물들은 소리 없이 겁먹은 얼굴로 다시 헛간 안으로 들어왔다. 쫓던 개들이 이내 돌아왔다. 처음 동물들은 그 개들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몰랐으나 곧 내력을 알게 되었다. 개들은 나폴레옹이 암캐 제시아 불루벨에게서 떼어다 몰래 키운 바로 그 강아지들이었다. 아직 다 큰 건 아니었지만 개들은 몸집이 크고 늑대처럼 사나워 보였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들이 나폴레옹에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은 지난날 농장의 개들이 주인 존스에게 꼬리 치던 모습 그대로였다.


<6장>

숨을 헐떡이며 미끄러지지 않게 발굽으로 땅을 단단히 밟고 허리는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 한 발 한 발 비탈길로 돌덩이를 끌어 올리는 그의 모습은 동물들에게 경탄의 대상이었다. 이따금 클로버는 그런 복서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복서는 듣지 않았다. 그의 두 가지 슬로건인 "내가 더 열심히 한다"와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가 그에게는 모든 문제에 대한 충분한 해답 같아 보였다.


………


이건 스노볼의 짓이오. 그 반역자는 앙심을 품고 우리 일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당한 부끄러운 추방을 앙갚음하기 위해서 야음을 타고 여기 숨어들어 우리가 근 1년 동안 공들여 세운 풍차를 파괴한 겁니다. 동무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스노볼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바이오. 누구든 그를 처단하는 자에게는 '동물 영웅 이등 훈장'과 사과 반 부셀을 주고 생포해 오는 자에게는 사과 한 부셀을 주겠소.


<7장>


정말 모를 일이야. 이런 일이 우리 농장에서 일어나다니. 우리 자신이 뭔가 잘못돼 있어. 내 상각으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아. 지금부터 난 아침에 한 시간 먼저 일어나야겠어.


<8장>

며칠 후, 처형이 몰고 왔던 공포가 다소 누그러지면서 일부 동물들은 '일곱 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이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명령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거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돼지들과 개들이 듣는 자리에서는 아무도 감히 그 얘길 꺼내 놓지 못했지만 동물들은 며칠 전 있었던 동물 살육이 아무래도 그 여섯 번째 계명에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중략) 뮤리엘이 여섯 번째 계명을 읽어 주었다. 계명은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로 되어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그 "이유 없이"라는 두 단어를 동물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 무렵,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하나 벌어졌다. 어느 날 밤 자정께 마당 쪽에서 쿵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고 무슨 일인가 싶어 동물들이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달 밝은 밤이었다. '일곱 계명'이 씌어 있는 헛간 끝 벽 아래 사다리 하나가 두 쪽으로 부러져 있고 잠시 정신을 잃은 스퀼러가 사다리 옆에 자빠져 꿈틀대고 있었다. 곁에는 등불, 페인트 붓, 넘어진 흰색 페인트통 등이 나뒹굴었다. (중략) 며칠이 지나 염소 뮤리엘이 '일곱 계명'을 읽어 보다가 동물들이 그 계명 중의 하나를 또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다섯 번째 계명이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라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동물들은 두 단어를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벽에 씌어진 다섯 번째 게명은 이런 것이었다. "어떤 동물도 '너무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


<10장>


일곱 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그 후로는, 이를테면 다음 날 농장 일을 감독하러 나온 돼지들이 하나같이 앞발굽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드래곤. 2011년 1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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