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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 선생의 자전 에세이가 손에 들어 왔다. 연속으로 나오는 단행본인 모양인데, 뒷날개를 보니 앞서 천양희 시인의 자전 에세이가 나왔다.


대학 다닐 때 '문청'들로부터 오탁번 선생의 이름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문청'도 아니었고, 그 학과도 아니었으니 그럴 일은 없었지만.


동화, 소설, 시로 각각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이름을 올린 오탁번 선생은 시에 쓰이는 '말'을 무척이나 강조하는데, 1980년대 강단에서 학생들과 논쟁을 꽤 벌였을 듯 하다. 칠순이 넘었는데도 책을 보면 그는 여전히 꼬장꼬장해 보인다.



작가수업 오탁번 : 병아리 시인 - 10점
오탁번 지음/다산책방



 장자(壯者)에 포정해우(포丁解牛)라는 말이 나온다. 포정이라는 사람은 소를 수십 년 동안 잡았는데도 소 잡는 칼이 하나도 녹슬거나 무뎌지지 않아 금방 숫돌에서 갈은 것 같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연유를 묻자, 소 뼈다귀는 보이지 않는 틈새가 있고 잘 갈은 칼은 두께가 없는 법이니 그 칼로 소 뼈다귀의 틈새를 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인이 언어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이다. 언어가 지닌 속살을 왜곡하지 않고 시어로 차용할 때 비로소 시적 상상력과 언어가 운명적 해후를 하게 되는 것이다. (109쪽)


 나는 아직도 우리말을 첫걸음마부터 배우는 혀 짧은 아기다. 시 한 편을 쓸 때마다 줄잡아서 국어사전을 서른 번을 펼친다. 이처럼 나는 아직도 습작을 하는 병아리 시인이다. (117쪽)


 나는 적극적으로 교수의 틀을 탈피하려고 했다.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 체질이 그러했다. 죽어 있는 문학강의가 아니라, 살아서 펄펄 뛰는 문학 그 자체를 만나는 것이 진정한 문학강의라고 굳게 믿었다. 창작론 시간에는 창문 쪽 자리는 아예 흡연석으로 지정해주고 강의를들으면서도 마음대로 담배를 피우게 했다. 시를 강평할 때 담배 한 대 꼬나물고 해야 제맛이 나는 것 아닌가. 대학 건물 전체가 금연지역으로 지정되어 ‘금연’ 표지가 붙어 있었지만, 나는 내 멋대로 였다. 나는 물론 정녁퇴직할 때까지 강의를 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153쪽)


 시는 언어예술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이 ‘언어’에 유의해야 한다. 그림이 색깔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고 음악이 소리를 이탈하고 형성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도 언어를 도외시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시 작품에 등장하는 그림이나 사진, 도표도 시 작품 속에서 ‘언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들이 작품 속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효과가 언어와 동등한 의미로 작용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시의 언어는 하나의 낱 언어만이 아니라 그것들이 상호 이어지면서 교직해내는 말의 집합과 연속을 의미한다. (178쪽)


 시는 대단한 세계관을 엄숙하게 선언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시인들이 꽤 많다. 법조문에나 나올 법한 언어들을 분별없이 남발하고 고상한 수사로 칠갑을 하여 마침내 시를 내용 중심으로 주제파악에 골몰하게 만ㄷ르어서 종당에는 시는 지겨운 문학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게 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시는 하나의 말의 놀이이다. 말이 사물과 관념을 표상하여 본디의 사물이나 관념보다 더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재현되는 것, 그리하여 더욱 또렷이 각인되는 예술행위인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우스개도 그 안에 말의 기막힌 묘미가 살아서 숨을 쉬는 경우가 있다. 죽어 있는 말이 아니라 팔딱팔딱 뛰는 활어처럼 날비린내가 확 풍기는 진짜 ‘시어’가 있는 것이다. (194쪽)





(2011년 11월11일, 경주)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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