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리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원인을 후쿠야마는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인 3권분립에서 기인한다고 보는데, 3권분립의 핵심 정신인 '견제와 균형'의 과잉이 현대 미국 정치를 쇠퇴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꼽고 있다.
이에 반해 최장집은 한국 민주주의가 불능 상태에 빠진 원인을 정반대로 분석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국가는 헌법에 따라 3권분립 체제로 출범하긴 했으나 허약한 정당으로 대변되는 입법부의 무능, 그리고 권위주의적 유산을 전혀 청산하지 못한 사법부는 정점에 대통령이 서 있는 행정부를 제대로 견재하지도 균형을 맞추지도 못하고 있다. 더구나 5년 단임제라는 선거제도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표'의 권리만 누릴뿐 '책임'을 지려는 동인을 갖지 않아도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최장집의 지적이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이러다하보니 해법도 정반대다. 후쿠야마는 '견제와 균형'을 낮춰서 행정부가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데 보수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반면 최장집은 대통령(행정부)가 책임성을 갖도록 강제하려면 견제와 균형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의 사법화와 이익집단 정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의 쇠퇴(America in Decay)'
경제학자 만수르 올슨(Mancur Olson)은 1982년에 나온 책 <국가의 흥망(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에서 이익집단 정치가 경제 성장, 그리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에 관해 가장 유명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20세기 동안 영국의 장기적인 경제적 쇠퇴를 고찰하면서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기에는 민주주의들이 계속 증가하는 이익집단들의 수를 축적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집단들은 부를 창출하는 경제적 행위들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들을 위한 이익이나 지대를 뽑아내기 위해 정치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런 지대들은 집단적으로 비생산적이며 전체로서 공공에 비용을 부과한다. 그러나 일반 공중은 집단행동의 문제가 있으며 예를 들어 금융산업이나 옥수수 생산자들만큼 효율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화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장기적으로 지대추구행위에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낭비되고 이 과정은 전쟁이나 혁명 같은 대규모 충격에 의해서만 중단이 가능했다.
이처럼 극도로 부정적인 이익집단에 관한 이야기는 시민사회에 관한 훨씬 긍정적인 이야기, 또는 민주주의의 건강함에 대한 자발적 결사체에 관한 이야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미국인들이 사적 결사체를 조직하는 강한 성향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는 이런 결사체들이 개인들에게 공적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치는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위한 학교라고 주장했다. 개인들은 그 자체로는 약하므로 함께할 때에만 공통의 목적, 특히 전제적인 정부에 저항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은 20세기 후반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 같은 학자에 의해 한발짝 더 앞으로 나갔다. 퍼트넘은 결사체를 만드는 경향, 즉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것인데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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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반대로 대립하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까? 가장 분명한 방법은 “좋은” 시민 사회 결사체와 “나쁜” 이익집단의 구분을 시도하는 것이다. 전자는 열정의 지배를 받지만 후자는 이익의 지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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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이런 구분은 이론적 검증을 배겨나지 못한다. 어떤 집단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집단이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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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E.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는 1960년에 나온 책 <절반의 인민주권(The Semisovereign People)>에서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실제 집행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부라는 유명한 이미지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적 결과물은 대중의 선호와 거의 조응하지 않고, 정치적 자각이나 참여의 수준이 매우 낮으며, 실제 결정은 조직화된 이익을 대변하는 아주 작은 집단에 의해 내려진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주장이 올슨의 분석틀에도 내포돼 있는데 왜냐하면 올슨은 모든 집단이 집단 행동을 위한 조직화 능력이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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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사법화, 그리고 이익집단들의 영향력 확산이 어우러진 결과는 필수적인 집단 행동의 전망을 약화시키는데, 이것은 “거부정치(vetocracy)”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정치 쇠퇴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의 쇠퇴(America in Decay)'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장기간에 걸쳐 쇠퇴해 왔는데 전통적인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심화되고 갈수록 경직되기 때문이다. 정치가 날카롭게 극단화 된 환경에서 이러한 분산된 시스템은 다수의 이익을 대표하는 능력이 점점 더 떨어지고 미국인들의 주권의 총합에 보탬이 되지 않는 이익집단과 활동가 조직들의 시각을 과도하게 대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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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퇴해 가는 경향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두가지 장애물이 있다. 첫째는 정치의 문제다. 미국의 많은 정치 행위자들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황을 온존시키려는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정당도 이익집단의 자금의 접근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려는 유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익집단들은 돈으로 영향력을 살 수 없는 그런 시스템을 원치 않는다. 18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시스템으로 이득을 보지 않는 집단이 규합해 개혁을 위한 동맹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외부의 집단 사이에서 집단적인 행동이 달성되기란 매우 어렵다. 그들은 리더십과 명확한 의제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두가지 모두 요원하다.
두번째 문제는 의식의 문제다. 정부의 기능장애가 감지됐을 때 전통적인 미국적 해법은 민주적 참여와 투명성을 늘리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것은 1970년대에 국가적 수준에서 일어났는데 개혁론자들은 더 많이 열린 오픈 프라이머리와 시민이 좀 더 법원에 접근 가능할 수 있도록 하고, 의회에 대해 미디어가 시시각각으로 보도하도록 밀어부쳤다. 심지어 캘리포니아 같은 주는 둔감한 정부를 일깨우기 위해 주민발의를 확대시켰다. 그러나 정치학자 브루스 케인(Bruce Cain)이 지적했듯, 대부분의 시민들은 시간도, 배경지식도, 복잡한 공공의 이슈들을 붙잡고 씨름할 동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참여 확대는 단지 잘 조직된 활동가 집단이 더 많은 권력을 쥐도록 길을 닦았을 뿐이다. 이 문제에 관한 분명한 해법은 이른바 민주화 개혁들의 어떤 것을 끌어내리는 것인데 어느 누구도 이 나라가 참여와 투명성을 약간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감히 주장하지 않는다.
■최장집, '대표와 책임'
선거는 사회의 밑으로부터 창출되는 힘이기 때문에 수직적으로 작용하는 책임성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선거의 중요한 특징은 대표 또는 지도자를 선출할 때 개인 후보가 속한 정당의 과거의 능력, 행적, 업적을 평가함으로써 그 연장선상에서 후보자의 미래의 능력, 리더십을 예측해서 판단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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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가 보장된 단임제 대통령은 재선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더 잘해야 되겠다는 책임의 압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정당이 잘 제도화되고 정당체제가 강한 유럽의 의회중심제에서는 정당에 대해 투표하기 때문에 대표-책임의 연계는 완전히 중첩돼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 같은 대통령중심제에서는 그 간극이 매우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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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미국의 조건에서, 2년마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의 경쟁을 위해 여당에게 대통령의 업적과 유권자의 지지도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고, 따라서 대통령은 그 자신의 정당으로부터 항시적인 압력 하에 놓이게 된다. 오늘의 한국 정치체제에 있어, 무엇보다 야당의 허약함으로 인해 정당체제가 공고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현임 정부에 대한 책임성을 부과하는 데 커다란 취약성의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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