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형법 - 양지열 지음/마음산책 |
하지만 안타깝게도 법은 여전히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만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쁜 짓을 한 만큼 세게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겠다는 식인데 그 효과는 미지수다. 시카고 로욜라 대학의 존 브론스틴(John Bronsteen) 교수는 [행복과 벌(Happiness & Punishment)]이라는 논문에서 형벌이 얼마나 범죄자를 바꿔놓을 수 있는지 다루었다. 논문에서 형벌이 얼마나 범죄자를 바궈놓을 수 있는지 다루었다. 그에 따르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심리 현상인 ‘괘락 적응’이 범죄자에게도 작용한다. 1개월 행복하려면 차를 바구고, 6개월 행복하려면 이성 친구를 바꾸라는 농담이 있지 않은가. 그만큼 사람은 좋은 일에 쉽게 시들해진다는 것이다. 존 브론스틴 교수에 따르면 나쁜 일 역시 마찬가지다. 가슴 설레던 이성에 시들해지는 것처럼 형벌에 대해서도 쉽게 권태기를 맞는다는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모건 프리먼이 그러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감옥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벽에 의지하고 있더라고. 형기가 길건 짧건 수형자는 금방 적응하게 마련인지라 죄에 따라 벌을 달리하는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건 그로 인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잊을수록 살기 편해져서인지 금세 흐린 기억 속의 그 시절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게 때려봐야 맞은 것을 기억도 못하니 결국 예방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교도소에서 범죄 수법을 더 배워 나온다는 얘기가 흔하다. 반면 형기가 길건 짧건 일단 감옥에 익숙해지고 나면 사회에 복귀하는 것에는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강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하면서 드는 근거는 주로 예방을 위한 것이다. 잘못하면 크게 혼난다는 것을 범죄자도 알고 주변 사람들도 알아야 감히 죄를 짓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곡 그럴까? 그런 이론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심진아웃제다. 강도나 절도, 살인 등 같은 범죄를 세 번째 저지르면 반드시 장기형을 선고하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1994년부터 시행하면서 처음에는 급격하게 범죄자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작용이 더 컸다. 판사의 재량권이 너무 줄어들다보니 중범죄가 아닌데도 수십 년을 교도소에서 보내도록 하는 판결이 많아졌다. 교도소가 꽉 차 수용 한계 인원을 넘어섰다. 범죄가 발각되면 안 도니다는 생각에 범죄자가 피해자나 목격자를 살해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설령 살인죄로 처벌받더라도 삼진아웃제를 적용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대문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몇 년간 주춤하던 범죄율이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겁을 주는 것만으로는 범죄를 줄일 수 없다는 단적인 증거였다. 결국 캘리포니아 주는 2012년 삼진아웃제를 폐지했다.
학자들은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측정하는 방법의 하나로 범죄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개별적 접근을 하느냐를 꼽기도 한다. 범죄를 사회의 병으로 본다면 조금 더 다양한 치료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 도려내는 수술도 필요하겠지만 보약을 먹여야 할 대도 있다. 예방접종부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범죄에 대한 처벌은 삼국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갑과 같은 상황에 놓인 범죄자를 갱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 형법](양지열 지음/마음산책), 140~143)
'죄와 벌'의 역사는 유구하다. 인류가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 사회의 룰을 어기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고 그를 벌하기 위한 개인적·집단적 노력도 언제나 있었다. 그 룰은 명문화된 것이든, 관습화된 것이든 당대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에 반하거나 공동체의 질서를 흔들리게 한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일벌백계(一罰百戒)'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서, 본보기로 한 사람에게 엄한 처벌을 내림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엽기적인 연쇄살인이나 여성·아동에 대한 상습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 사회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격한 목소리로 들끓는다. 그런 성난 목소리에 힘입어 법정 최고형량도 늘었고 화학적 거세도 도입됐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반박이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읽을 수 있는 논리다. 엄벌에 처하는 것은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이 가지는 복수심을 해소시켜줄 순 있겠지만 재범율을 낮추거나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 형법]의 저자가 인용한 존 브론스틴 교수의 논문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검색이 됐다. 3명이 공저한 것으로서 시카고 대학 법학 학술지(The University of Chicago Law Review)에 실린 논문이었다. 저자들은 이 논문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논문은 인간 행복에 관한 행동심리학의 새로운 발견들을 법에서 가장 깊게 분석돼온 질문들에 적용하는 우리의 프로젝트를 계속한다. 한 국가가 범죄자들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결정할 때 적어도 하나의 중요한 고려사항은 어떤 주어진 형벌이 가할 수 있는 피해의 양이다. 예를 들어 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부과하거나 또는 잔인함의 수준으 넘어서는 피해를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형벌제도는 범죄에 대한 형벌을 주로 벌금의 규모와 형기의 길이를 조정함으로서 맞추지만 인간 적응성에 관한 새로운 발견들은 이 체계가 기대고 있는 가정들을 흔든다. 특히, 사람들은 재산상의 부정적인 변화들 그리고 심지어 교도소에서의 삶의 여러 특징들에 잘 적응하는 반면 실업, 질병, 사회적 유대의 상실과 같은 출소후의 전형적인 상태에 대해 잘 적응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벌금의 규모나 형기의 길이를 조정하는 것은 부과된 피해의 선형적 형태를 바꾸지 못할 것이다. 두가지 형벌의 규모의 큰 차이가 반드시 각각의 범죄자들이 느끼는 피해에 있어서 큰 차이를 (또는, 어떤 벌금형의 경우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를) 낳지 못할 것이다. 이 결과는 형사 행정학과 관련될뿐 아니라 응보주의적 그리고 공리주의적 처벌이론과도 관련이 있다. 형벌에 관한 새로운 접근들은 적응에 의해 제기된 도전을 감안하여 비례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본문에 그래프 하나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세로축은 수형자가 느끼는 행복의 정도를, 가로축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 중간 수위에 있던 수형자의 행복감은 교도소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 급전직하한다. 이렇게 낮아진 행복감은 형기 끝까지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다음 적응시 시작되고 교도소 안이라 하더라도 점점 행복감이 올라간다. 물론 교도소 이전 수준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한가지 더 눈여겨 볼 것은 수형자가 출소한 다음 느끼는 행복감이 교도소 이전 수준을 결코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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