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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정치 쇠퇴를 보는 두가지 시선, 후쿠야마와 최장집-1

정치 불능의 시대다. 정부와 국회,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밥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은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은 아니지만 용광로처럼 갈등을 녹여내야 할 정치가 갈수록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캐나다 태생의 미국 원로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런 과정이 고장났다는 것이다. 정치 체제의 한 형태인 대의제 민주주의의 요체인 3권분립과 정당, 선거, 갈등의 제도적 해소 등도 이념적으로 극단화된 사회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가적 재난인 '세월호 사건'을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채 6개월째 '정치 무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으로 정부 예산이 의회에서 제때 통과되지 못해 역사적인 '정부 폐쇄(government shutdown)' 사태를 겪었다. 한국과 미국 모두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과 한국의 내노라하는 원로 학자 2명이 최근 정치 쇠퇴, 민주주의 불능에 대해 각각 분석한 글이 나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최장집이 주인공이다.


후쿠야마는 지난 세기 말인 1992년 사회주의 붕괴에 즈음해 내놓은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으로 큰 주목을 받은 보수 성향의 학자다. 후쿠야마는 최근 국제문제 전문 저널인 <포린 어페어스>에 '미국의 쇠퇴(America in Decay)'라는 글을 기고했다.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America in Decay' 전문보기)


최장집은 한국의 노동문제에서 시작해 계급과 정당,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에 천착해온 정치학자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후, 즉 한국에서 제도적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 평가받는 시기 이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민주주의화>,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의 저작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분석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는 네이버 열린연단에 주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하고 있는데 최근 '대표와 책임'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네이버 열린연단 '대표와 책임' 전문보기)


노장 학자들의 글답게 절제된 표현과 정제된 문장들이 돋보인다. 특히 후쿠야마의 글은 영문 문장이 무척이나 평이하면서도 쓰였으면서도 심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내용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영문 글쓰기 교재로 삼아도 좋을만큼 훌륭하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두 나라의 정치의 쇠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 다르다. 정치가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 묘사는 비슷하지만 이런 현실을 가져온 원인과 해법은 크게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후쿠야마는 '견제와 균형의 과잉'을 정치 쇠퇴, 그리고 미국의 쇠퇴의 원인으로 본 반면 한국의 최장집은 '허약한 견제와 균형'이 대통령의 책임성 결여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후쿠야마의 글을 발췌번역하고, 최장집의 글 역시 밑줄을 그어 대조해 봤다. 글이 길어 두차례 나눠 올린다.




<정치와 민주주의 쇠퇴 현상>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의 쇠퇴(America in Decay)'


20세기 전환기에 설립된 미국 삼림청(US Forest Service)은 혁신주의 시대(progressive era) 미국 국가 형성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1883년의 펜들턴법(Pendleton Act)이 통과되기 전 미국에서 공직은 임명권(patronage)의 기반 위에서 정당들에게 할당됐다. 삼림청은 이와 대조적으로 능력에 기반한 새로운 관료제 모델의 원형이었다. 산림청은 능력과 기술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대학에서 교육받은 농학자들과 산림관리원을 직원으로 충원했으며, 초대 청장인 지포드 핀초트(Gifford Pinchot)는 의회로부터의 일상적인 개입에서 벗어나 관료적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살림청을 정의 내리는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당시에는 정치인이 아닌 삼림전문가가 공유지를 관리하고 부처의 직원으로 일한다는 사고는 하나의 혁명이었지만, 삼림청의 인상적인 실적은 이것의 정당성을 입증했다. 학계의 몇몇 주요한 연구들은 삼림청의 초기 수십년을 성공적인 공공행정의 고전적인 사례로 취급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삼림청을 글러먹은 수단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심각하게 고장난 관료제로 간주한다. 삼림청은 여전히 삼림청의 임무에 매우 충실한 직업적 산림 관리인들이 일하고 있지만 핀초트 시절에 누렸던 자율성을 거의 대부분 상실했다. 삼림청은 의회와 법원들이 제기하는 중첩되고 종종 모순되는 지시를 받으며 납세자들이 낸 상당량의 돈을 의심스러운 목표들을 달성하는데 낭비한다. 삼림청의 내부 의사결정 시스템은 종종 교착상태에 빠지고 핀초트가 강화하기 위해 애썼던 직원들의 사기 및 높은 응집성은 이미 상실됐다. 요즘은 삼림청이 완전히 해체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까지 나오고 있다. 삼림청 설립이 근대 미국 국가의 발전의 전형적인 예였다면, 이것의 쇠퇴는 국가 쇠퇴의 전형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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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그의 고전적 저작 <변화하는 사회의 정치적 질서(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ies)>에서 '정치적 쇠퇴(political decay)'라는 용어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신생독립국에서 나타난 정치적 불안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헌팅턴은 사회경제적 근대화는 전통적인 정치 질서에 문제를 일으켰고, 이는 새로운 사회적 집단들의 결집으로 이어졌는데 기존의 정치적 제도가 그들의 참여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쇠퇴는 변화하는 환경들에 적응하지 못하는 제도들의 무능력에 의해 초래된다. 그러므로 쇠퇴는 여러모로 정치적 발전의 조건이다. 옛것은 새것에 길을 내주기 위해 파괴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변환은 극도로 혼란스럽고 과격할 수 있으며, 오래된 정치적 제도들이 끊기지 않고 평화적으로 새로운 상태에 반드시 적응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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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쇠퇴는 그러므로 지적 경직성의 발로이건 그들이 차지한 자리를 지키고 변화를 봉쇄하려는 집권 엘리트들의 권력에 의해서건 제도들이 외적인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데 실패할 때 발생한다. 쇠퇴는 권위주의든 민주주의든 모든 정치 시스템을 괴롭힐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들은 이론상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자기 교정(self-correcting) 메카니즘을 보유하는 반면, 필요한 변화를 봉쇄하는 강력한 이익집단들의 활동을 적법화함으로써 쇠퇴에도 노출돼 있다.


이것은 미국에서 최근 몇십년 사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것인데, 많은 정치적 제도들이 갈수록 기능장애에 빠지고 있다. 지적 경직성과 포획된 정치적 행위자들의 권력의 결합은 그러한 제도들이 개혁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리고 정치 질서에 주요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고 이 상황이 변할 것이란 보장은 전혀 없다.


■최장집, '대표와 책임'


하나의 사건으로서 세월호의 비극은 오늘날 한국 정치, 특히 국가권력과 현임 정부의 책임성의 결여가 만들어내는 한국 정치의 취약성을 축약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건강한 작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것보다 선출된 대표에게 어떻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민주주의의 작동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 책임성이 효능을 갖도록 하는 여러 조건들 가운데 정당의 건강한 발전과 이들간의 건강한 경쟁을 가능케 하는 정당체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곧 민주주의의 퇴행 내지 실패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사회는 분열되고 정치적 불만이 사회 전체에 팽만하게 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의 쇠퇴(America in Decay)'


근대 자유민주주의는 정부가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세갈래로 나뉜다. 이는 국가, 법의 지배,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의 세가지 기본적 범주에 상응한다.…정치학자 스티븐 스코로넥(Stephen Skowronek)은 19세기에 미국 정치를 “법원과 정당의 국가(state of courts and parties)”라고 특징지었는데, 유럽에선 행정부 관료들이 수행할 정부 기능들을 미국에선 법관들과 선출된 대표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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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 초기 하나의 정당 또는 다른 정당이 지배적일 때 이 시스템은 다수의 의지를 완화하고 소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좀 더 균등하게 균형이 이뤄지고, 1980년대 이후 도래한 고도로 경쟁적인 정당 시스템에서는 이것은 교착상태로 가는 하나의 공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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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 정치 시스템은 견제와 균형이 다수 측의 의사 결정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책임성이 형편없는 기구에 권한을 위임하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여러 사례가 발생하는 복잡한 풍경이 드러난다. 이러한 위임의 중요한 문제점은 전혀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회는 종종 특정 기관이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지에 관한 명확한 입법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의무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해당 기관이 자신의 임무를 스스로 작성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서 의회는 만약 어떤 일들이 잘 풀려나가지 않을 경우 법원이 개입해 오남용을 바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과도한 위임과 거부정치는 그러므로 서로 얽혀 있다.


■최장집, '대표와 책임'


대의제 민주주의는 두 축으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대표이고, 그와 짝을 이루는 다른 하나는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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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두 측면 가운데 책임에 대해서는 잘 알거나 크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짧지 않은 기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해오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것은 그 제도가 작동하는 정치과정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과정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한 실망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두 축 가운데 대표의 측면보다 책임의 기능이 약한 것이 가져온 결과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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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책임은 영어로 accountability, responsiveness, 또는 responsibility에 해당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선출된 대표, 또는 정책결정자가 정책결정과 집행, 의제의 선정, 입법 등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책임진다는 뜻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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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선출된 대표가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어떤 윤리적인 행위 규범과 같은 선택사항이라기 보다는, 민주주의라면 지켜야 되는 공준(公準)이다. 그러므로 헌법은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하여 그리고 선거를 포함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을 통해 정부의 최고 수반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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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국가기구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선거경쟁의 압력으로부터, 그리고 이념과 정책을 달리하는 정당 간 경쟁으로부터 보호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들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한 최대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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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민주주의는 치자와 피치자 사이에 잘 제도화된 행정관료기구를 갖는 국가라는 제3의 제도가 존재한다. 즉 시민 피치자-국가 기능적 공직자-선출된 통치자 3자관계의 통치 구조를 갖는다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구조는 책임을 묻는 제도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가 그만큼 어려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왜 정당이 중요한가 하는 것은 뒤에서 말하겠지만,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책임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리를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제도적 근간으로 삼았다. 국가의 통치기구를 입법, 행정, 사법 기능별로 구분하여 상호간 감시 감독과 견제와 균형이 작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 원형인 미국의 “매디슨 헌법”이 그러하고, 그 모델을 따르는 한국의 헌법 또한 그러하다. 매디슨 헌법은 사회의 한 파당, 한 세력의 수중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전제정으로 정의하고, 이를 방지하는 것을 제도 디자인의 정신이자 목표로 삼았는데, 이를 한국의 조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와 민주주의 쇠퇴의 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의 쇠퇴(America in Decay)'


행정의 사법화와 이익집단의 영향력의 확산이라는 두 현상은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가졌던 신뢰의 기반을 붕괴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럴 경우 정부에 대한 불신은 영속하면서 스스로를 키워나가게 된다. 행정 기구에 대한 불신은 행정부에 대한 더 많은 법적인 점검이라는 요구로 이어지고, 이는 정부의 질과 효율성을 낮춘다. 이와 동시에 정부의 서비스들에 대한 요구는 의회로 하여금 집행부에 새로운 새로운 명령을 부과하게 만들고, 이것은 종종 수행하기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어려운 것으로 판명된다. 두 과정은 모두 관료적 자율성의 감소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경직되고, 규칙에 얽매이며, 비창조적이고 응집력이 떨어지는 정부를 초래한다.


그 결과는 대의제의 위기로서 보통의 시민들이 민주적이라고 간주했던 그들의 정부가 더이상 진정으로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고 그늘 속의 다양한 엘리트가 통제한다고 느낀다. 이런 현상에서 아이로니컬하고 특이한 점은 대의제의 위기는 상당 부분 시스템을 좀 더 민주적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개혁들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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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점에 대한 해법이 단순히 규제를 제거하고 관료제를 폐쇄하자는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지지하는 것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유독성 폐기물 규제나 환경 보호, 특수교육처럼 정부가 수행하는 목표들은 사적 시장에 맡겨질 경우 추구되지 않는 중요한 것들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종종 미국의 시스템을 규제에 관한 법원 중심적인 훨씬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이끈 것이 좀 더 강한 집행부를 가진 민주주의에서 선택된 것이라기보다 바로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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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보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도 똑같이 문제가 있다. 그들 또한 남부에서 흑백분리학교 시스템을 만들거나 거대 기업에 포획된 것으로서 관료제를 불신한다. 그리고 그들은 입법자들로부터 지지를 충분히 획득하지 못할 때 사회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선출되지 않은 판사들을 투입하는 것을 선호해 왔다.


행정에 대한 분산되고 법률주의적인 접근은 미국 정치 시스템의 다른 주요한 양상과 딱 들어맞는다. 이익집단의 영향력에 대한 개방성이 그것이다. 이런 집단들은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훨씬 더 강력한 통로가 하나 더 있는데 좀 더 많은 자원들을 확실하게 제어하는 의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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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이익집단과 로비의 폭발은 놀라울 정도다. 로비스트로 등록된 기업의 수는 1971년 175개에서 10년 뒤 대략 2500개로 늘었고, 2009년엔 1만3700개의 로비스트들이 35억달러를 썼다.


■최장집, '대표와 책임'


같은 대통령중심제를 갖는 나라라 하더라도 미국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대통령은 제도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향유한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그러하다. 이 말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언제나 강력하고 리더십을 갖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미국과 같이 강력하고도 독립적인 사법부에 의해 견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의 허약한 정당체제에 기반한 허약한 입법부라는 차이도 존재한다. 한국 정부 구조에 있어 권위주의의 유산을 가장 많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법부이다. 이 점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는 쉽게 전제화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갖는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헌법의 차이가 어떻든 정부 기능을 분리하는 것을 통해 서로를 감시 감독하도록 하는 방식은 책임을 제도적으로 강제(정치학자들은 이를 “수평적 책임(성)”이라고 부리기도 한다)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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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정부의 다른 부분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책임을 묻는 방식에 비해 시민과 정부 사이의 관계를 통해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정치학자들은 이를 ‘수직적 책임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더 강력할 수 있다. 시민이 정부에 대해 수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시민사회를 국성하는 사회 세력, 자율적 기구, 자율적 이익결사체들에 의해 권력이 작용하는 모든 층위, 모든 기능적 영역에서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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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제 민주주의는 가장 단순한 선거 경쟁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대표-책임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를 지켜 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