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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책과 만나기, 책을 소비하기

왓더북?! WHAT THE B**K?! - 10점
강용혁 외 지음/엑스북스(xbooks)


1.

(전략) 내 경험으로 보건대, 독서하는 사람 중에 열에 아홉이, 책을 만나는 게 아니라, 다만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책을 만나는 것과 책을 소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책은 단 한 권만 만나도 엄청난 자기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책을 몇 천 권 소비해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자기 고집만 공고해질 수도 있다.


2.

책을 만나는 것과 소비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내게 있어 책을 만나는 것은, 저자의 문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책이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책을 소비하는 것은 다만 책을 다 읽었을 뿐, 문장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책을 읽지만, 문장을 기억하진 못한다. 문장은 하나도 기억 못하면서, 책장을 덮고 나면 "아,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잘 읽었어!"라고 말한다. 저자는 몇백 쪽 분량으로 말했는데, 독자는 다 읽고 나서 고작 한두 줄로 뭉둥그려 덮어 버린다. 그리고 저자의 약력이나 출신, 판매 부수 따위나 기억한다.

  이렇게 읽으면, 만 권을 읽어 봐야 무용지물이다. 책과 만나려면 문장으로 기억해야 한다. 책은 다만 길게 이어 놓은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정보들-저자의 나이나 출신, 학벌, 판매 부수 등-은 모두 문장과는 무관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6.

  (중략)좋은 독서는, 인종이나 나이나 시간대 따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인류의 빛나는 영혼들의 생각과 똑같은 생각에 독자를 잠기게 만드는 일이다.


8.

  (중략)결국 책을 읽을 때는 좋은 문장, 좋은 단락마다 반드시 표시해 둬야 한다.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은 결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소비하는 짓에 불과하다. 밑줄과 표시를 해두고, 소리 내어 낭송해 보거나 따라서 써보기까지 해야 한다.


('부록 책 읽기에 대하여: 좋은 책은 언제나 '더'라고 말한다'(소설가 이만교) 중에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적었을 때는 '많이' 읽는 것이 항상 소원이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많은 지식을 쌓고, 남들보다 더 똑똑해지길 바랐다. 더러는 책에 담긴 내용이 워낙 재밌거나 심금을 울려서 더 읽고자 하기도 했다. 소설이든 인문학 서적이든, 사회과학 책이든 저자의 통찰력이 엿보이는 좋은 문장을 보고는 무릎을 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책을 읽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러기엔 너무 게을렀고, 술잔을 나누며 수다를 떠는 걸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갈증을 끼고 살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읽는 책의 권수에 대한 갈증에 더해 읽고 있는 혹은 읽은 책에 대해 내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곤 했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은 나하고 인연이 닿지 않는 책이므로 던져 버린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었던가, 아니면 술자리에서 들었던 얘기였던가? 나에겐 그런 과단성도 부족했으므로 이제 나에게 책은 갈증에 더해 약간의 자괴감까지 더해진 대상이 됐다.


'서평기사'라는 걸 2년 가까이 전담해서 쓴 적이 있으니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내가 너무 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위 글의 필자가 말한 것처럼 나는 여전히 책을 만나기 보다는 책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자책을 피할 수 없다. 다시 밑줄치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출발점으로 삼기에 충분한 글귀다.



 







(※지난 주말 경기도 광주의 용문산이라는 산엘 다녀왔다. 588미터 높이였는데 산이 제법 가팔랐다. 소나무보다는 밤나무와 참나무 등 활엽수가 무척 많아서 며칠 지나 단풍철이 되면 꽤 아름다울 법했다. 등산로에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어릴 적 가을만 되면 도토리 주우러 이산저산 쏘다녔던 기억에 한개, 두개 집어서 주머니에 넣다보니 한웅큼이나 됐다. 꽃 사진은 하산길에 들른 '검단산 각화사'라는 절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