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밑줄치며읽기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앨버트 O 허시먼, 웅진지식하우스)-2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10점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이제 반동의 수사학을 순서대로 살펴나갈 차례다. 먼저 역효과 명제다. 사실 실제 논쟁의 현장에서는 수사법들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보다는 여러가지가 뒤섞여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역효과 명제는 어떤 개혁 또는 변화의 프로그램을 반대하는 쪽에서 그런 변화가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방식이다. 일테면 민주주의를 확대하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작용'에 따른 어떤 '결과'가 의도와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회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시도는 당연히 사회를 움직이기는 하지만 의도된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고 주장한다. (…) 자유를 얻으려는 시도는 사회를 노예 상태로 떨어뜨릴 것이며, 민주주의를 추구하면 과두정치나 전제정치를 만들어낼 것이고,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은 빈곤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모든 것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이다. (35~36쪽, 2장 역효과 명제)

역효과 명제가 가장 빈번하게 동원되는 분야는? 빙고!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려 할 때마다 반복되는 레파토리가 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고삐풀린 금융분야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는 반대논리가 팽배했었다.

역효과 명제는 사회·정치 현상을 다루는 다른 어떤 학문에서보다 경제학에서 더욱 밀접하게 그 학문의 핵심적 주장과 연결돼 있다. 그것은 '자기조절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한, 물가나 임금과 같은 시장 결과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공공 정책은 자동적으로 이로운 평형 유지 과정에 대한 유해한 간섭으로 여겨지게 된다. 심지어는 소득과 부에 대한 일부 개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조차도 명백한 '대중주의(populism)적' 개입은 역효과를 낳는 것으로 여기곤 한다. (55쪽, 2장 역효과 명제)

다음은 무용 명제다. 아무리 개혁한다고 해봐야 사회와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는 식이다. 일종의 역사 냉소주의로 읽힐수도 있는데 실제 논쟁의 현장에서는 논쟁 구도를 거시적인 문제로 옮겨감으로써 논점을 일거에 흐트러뜨리는 효과를 가진다.

이제 우리가 살펴보려는 주장은 역효과 명제와는 대단히 다르게, 변화에 대한 시도는 허사라고 말한다. 즉,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어떤 변화라는 것도 이런저런 잉로 대부분 표피적이고 외형적이고 표면적인 환상에 불과하며, '깊숙한' 사회 구조에는 전혀 손으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주장을 '무용 명제'라고 부르려 한다. (77~78쪽, 3장 무용 명제)

역사와 사회에 불변하는 어떤 법칙, 원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무용 명제가 싹틀 가능성이 커진다. 허시먼은 모스카와 파레토의 예를 들고 있다. 특히나 파레토는 20대 80이라는 비율로 대표되는 '파레토 법칙' 또는 '파레토 최적'이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파레토 이야기는 얼마전 국내에 번역된 <사회적 원자>(사이언스 북스)라는 책에서도 등장하는데 이 책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법칙처럼 사회과학에도 물리학 법칙이 발견된다는 취지다. '파레토 법칙'이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카에타노 모스카(Gaetano Mosca)와 빌프레드 파레토(Vilfredo Pareto)에 의해 약간 다르게 표현된 유명한 법칙이 그것이다. 즉 모든 사회는 그 '표면적' 정치조직과는 관계없이 언제나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있거나(모스카), 엘리트와 대중으로 나뉘어 있다(파레토)는 것이다. 그런 명제는 보통선거권을 통해 진정한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려는 어떤 노력도 무용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87~88쪽, 3장 무용 명제)

일단 파레토가 소득 분포에 대한 자신의 통계학적인 발견을 자연법칙의 위치에까지 상승시키게 되자 중요한 정책적 의미가 뒤따르게 되었다. 즉 마치 '수요-공급의 법칙'에 간섭하는 것이 무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득 분포와 같이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변하지 않는 요인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수용을 통한 것이건 과세를 통한 것이건 혹은 사회복지 입법을 통한 것이건 관계없이 (기껏해야) 무용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난한 계급의 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유일한 길은 전체 부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뿐이었다. (95~96쪽, 3장 무용 명제)

그런데 역효과 명제와 무용 명제는 모순관계에 빠진다. 역효과 명제는 어떤 작용이 어찌됐든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 변화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무용 명제는 아무리 변화를 일으킨다고 해봐야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을 가진 인간 행위가 성공을 거둘 확률을 어림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무용 명제가 역효과 명제보다 더욱 파괴적이다. 역효과가 많더라도 그 세계는 여전히 인간 또는 사회의 개입이 먹혀들 여지가 있다. 환율 절하로 인해 국제수지가 개선되기는 커녕 악화되는 것이 드러났다면 환율을 올려보면 되지 않겠는가? (…) 반대로 무용론이 맞는다면 어떠한 성공적인 또는 효과적인 운용이나 개입의 희망도 없고 오직 '미(微)조정'만이 있을 뿐이다. (116~117쪽, 3장 무용 명제)

역효과론은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정치·사회·경제정책들을 매우 진지하게 보는 데 반해, 무용 명제는 오히려 그러한 변화들을 위한 시도들을 어리석거나 심지어 나쁜 것이라고 비웃는다. (121쪽, 3장 무용 명제)

(계속)

(추운 날씨에도 시원~하게 수영하고 계신 북극곰님은 본문과 전혀 관련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