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밑줄치며읽기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조지 레이코프/웅진지식하우스)-3

여와 야가 주거니 받거니 복지논쟁을 하고 있는 지금만큼 논보수주의의 사고방식과 진보주의의 사고방식, 보수주의의 언어와 진보주의의 언어, 보수주의의 수사법과 진보주의의 수사법을 현실에서 목도하며 비교하기에 더 좋은 기회는 쉽게 찾기 어려울 것이다. 보편적 복지 논쟁, 복지 재원 논쟁을 하면서 양측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만 봐도 흥미롭다.

진보주의자들(보편적 복지논쟁을 야기한 민주당을 진보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선 이견이 많겠지만 일단 진보주의자를 보수주의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세력이라고 넓게 정의하고자 한다)의 '무상복지' 주장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붙인 딱지는 '포퓰리즘'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은 '표를 매수하기 위해 불가능하거나, 지속가능하지 않는 인기영합적 정책을 내놓은 것'을 포퓰리즘으로 정의하고 있는듯 하다. 경향신문에서 지적하기도 했지만 포퓰리즘 딱지 붙이기는 현실에서 색깔론하고 비슷한 메카니즘으로 작동했다. 적어도 보수주의자들이 그렇게 작동하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겼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원조 보수'를 자처하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무상복지 주장에 대해 "집권하면 사회주의를 하겠다는 것"이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포퓰리즘이 1단계였다면 2단계로 나온 것이 세금폭탄론이다. '세금폭탄'이라는 딱지는 처음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내 기억으로는 참여정부 시절 보수언론이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세금폭탄이라고 딱지를 붙이면서 크게 유행했다. 그런데 포퓰리즘이라는 딱지에 비해 세금폭탄 딱지는 논리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복지정책을 확대했을 때 필요한 재정에 대한 계산법을 두고 벌이는 논란이기 때문이다.

레이코프가 진보주의자들의 세계관으로 '자애로운 어머니' 모형(=유기적 인과관계), 보수주의자들의 세계관으로 '엄격한 아버지' 모형(=직접적 인과관계)을 반복적으로 대비하고 있는데 진보주의자들은 복지논쟁을 제기하고 주도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유기적 인과관계 모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방식은 자애로운 어머니 모형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복지에 대한 논쟁은 레이코프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 10점
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도덕적·정치적 추론은 각각 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 모형을 사용한다. 엄격한 아버지 모형은 직접적 인과관계를, 자애로운 부모 모형은 유기적 인과관계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 차이를 통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자가 인과관계에 대해, 그리고 자유에 대해 왜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146쪽, 7장 썩은 사과만 버리면 된다?)

앞서 레이코프 이론의 중심에 프레임 이론이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민주당이 선거에서 공화당에게 번번이 깨지고 있는 이유를 이 프레임 이론으로 설명해 냈다. 프레임 이론은 쉽게 말해 홈에서 싸울 것이냐, 어웨이에서 싸울 것이냐로 비유할 수 있다. 홈에서 싸울 경우 경기장의 지형을 미리 알고 있고 게임 룰도 나에게 유리하다. 어웨이는 반대다. 따라서 어워이에서 싸우는 자는 항상 불리하고 질 수 밖에 없다. 프레임 이론은 자유의 개념을 보수/진보주의자가 왜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지도 설명해준다.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은 사람이 자연보다 우월하고 또한 동물이나 식물보다 우월하다는 도덕적 질서의 개념을 동반한다. 즉, 자연이 순전히 이익을 위해,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그 자리에 있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이 쟁점을 '올빼미 대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넣는다. 보수주의의 도덕적 질서 프레임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사람이 올빼미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나무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다. (…) 진보주의자들은 오랜 역사와 무한한 미래에 대한 유기적 인과관계의 관점에서 생태 문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비용·이익 분석은 암묵적으로 직접적 인과관계를 사용한다. (…) 보수주의 이념은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는 지구온난화의 존재조차 의심한다. 지구온난화는 모든 유기적 인과관계 문제의 발단이다. 유기적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구온난화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150~151쪽, 7장 썩은 사과만 버리면 된다?)

시장의 관점에서 이 선택을 프레임에 넣으면 도덕적 책임은 사라진다. 시장은 은유를 통해 자연적이며 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시장의 자연적 기제인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의 극대화를 보장해준다는 측면에서 시장은 도덕적이다. 따라서 시장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으며,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작동 중인 자유 시장 자유이다. (158쪽, 7장 썩은 사과만 버리면 된다?)

앞서 제기한 복지의 문제에 대한 보수/진보주의자들의 입장차에 대한 레이코프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의 보수들도 '복지는 필요하다. 그러나~'라고 말한다. 이들이 '복지는 필요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말해서 그들을 복지론자로 오해해선 안된다. 그들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나' 이후에 나오는, 복지 확대를 할 수 없는 혹은 확대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의 기준으로 볼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벌지 않은 돈을 주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의존적이 되어서 절제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도덕적이 되어 자유 시장에서 부유해지려면 절제력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정부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은 비도덕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프로그램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사람들에게 주어 정부에 의존하게 만들고, 그들에게서 절제를 빼앗기 때문이다. 소유권 사회는 정부의 모든 사회보장 프로그램과 사회 안전망이 이미 제거되어 모든 사람이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극우 보수주의의 유토피아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회보장제도와 노인 의료보험 제도 대신 개인들이 월가의 중개업자에게 투자하는 개인 계정을 보유한다. 이들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한다. 주식시장은 정말로 도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188쪽, 9장 돈은 자유와 많은 관련이 있다)

시장에 대한 정부, 넓게 봤을때 공공이 규제가 시도될 때마다 보수주의자들은 공공은 악이자 비효율이라고 말한다. 공적부조 역시 그 맥락에서 본다. 그러나 한 사회 안에서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선 공공의 지원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제 아무리 세계 최대의 부자 빌 게이츠라 전용 비행기를 이착륙 시킬 비행장이 필요하고, 최고급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한 도로가 필요하다. 그건 세금을 통해 만들어진 공공의 재산이다.

오늘날 개인의 필요와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공공의 기반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공공재산은 세금을 통해 마련된다. (…) 그 누구도 공공재산, 즉 납세자의 돈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운영하거나 시작할 수 없다. (190쪽, 9장 돈은 자유와 많은 관련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