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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밑줄치며읽기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조지 레이코프/웅진지식하우스)-2



레이코프는 자유의 개념에 대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쟁탈전을 다루고 있지만 실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의 심대한 차이를 전제하고 있다. 도식적으로 러프하게 정리하자면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는 세계관과 사고의 방식에서 심대한 차이가 존재하고, 이러한 차이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단어의 개념에 대해서도, 같은 단어를 쓰지만 서로 다른 것을 그 단어 안에 담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 10점
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레이코프는 자유에 대한 표피적 개념, 따라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큰 이견을 보이지 않는 자유의 개념을 '단순한' 자유라고 명명했다. 이 말은 곧 단순한 자유의 개념보다 복잡하고 깊은 개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단순한 자유의 개념이 있고, 심층적 자유의 개념이 있는데(지은이는 '논쟁적 자유'라고 명명한다), 이 심층적 자유의 개념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자유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유에 대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해석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들 두 해석은 실제로 핵심 개념과 핵심 논리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단순한 자유라고 부른다. (54쪽, 3장 그 정도는 합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의 개념을 두고 왜 논쟁-저자는 이를 두고 쟁탈전이라고 했다-이 벌어지는가. 세계관이 차이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를 하나의 가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가정의 운영원리나 바람직한 가정의 모습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서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도 심대한 차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개념은 모두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개념들에 대한 쟁탈전은 체계적인 방식으로, 즉 진보주의 세계관의 프레임과 보수주의 세계관의 프레임에 따라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두 프레임은 가정(family)에 대한 아주 다른 두 개념에 근거한다. (82쪽, 3장 그 정도는 합의할 수 있다)

우리가 가정을 이상화하는 방식은 우리 정치에서 매우 중요하다. '국가는 가정' 은유에서 가정은 국가에, 자녀는 성인 시민에, 부모는 국가 지도자에 대응한다. (…) 엄격한 아버지 모형은 급진적인 보수주의 정치의 토대이며, 자애로운 부모 모형은 진보주의 정치의 특성을 결정한다. (…) 이 두 모형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정치적 이념을 형성하고 조직화한다. 또한 이 두 모형은 자유라는 완전히 합의된, 기본적이지만 애매한 개념에 체계적으로 적용되어 자유 개념 속의 여백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채운다. 그 결과 자유에 대한 아주 다른 두 가지 개념이 심한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86~87쪽, 4장 부모의 지배, 혹은 국가의 보살핌)

저자는 책 전반에서 진보주의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자유의 개념이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전유당하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우려를 제기한다. 보수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인 '엄격한 아버지 모형'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역동적인 진보주의적 자유의 주창자인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극우파가 자신의 선전 기관을 동원해 사람들을 점점 더 철저한 보수주의 쪽으로 몰아가고 삶과 정치의 모든 측면에서 엄격한 아버지 모형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철저한 보수주의 내의 '극단주의자'가 미국적 자유의 위대한 신장 과정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92~93쪽, 4장 부모의 지배, 혹은 국가의 보살핌)

나는 진보주의 세계관이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을 중심으로 조직화 되며, 이 모형의 핵심은 감정이입과 책임, 힘이라고 생각한다. (95~96쪽, 5장 우리는 언제나 싸워왔다: 진보의 자유)

지은이가 진보주의자들의 사고방식으로 자애로운 부모 모형에 이어 제시하는 세계관은 감정이입이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의 매카니즘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감정이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따지고 보면 진보주의자들의 주요 가치인 '연대'라는 것 자체가 감정이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뇌 속에 감정이입이라는 신경회로가 들어있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된다고 레이코프는 지적한다. 따지고 보면 섬찟한 지적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 국내에 번역된 <공감의 시대>(민음사)에서 공감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제시했는데 레이코프는 오히려 감정이입, 즉 공감의 능력이 퇴화하고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감정이입은 진보주의 세계관의 토대가 된다 우리는 감정이입을 통해 타인의 자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자애로운 부모 모형이 감정이입과 함께 시작되는 것은 당연하다. 진보주의 도덕성이 핵심적 내용은 감정이입이다.
(…) 우리가 감정이입을 위한 신경 회선을 가지고 태어나긴 했지만, 이 신경 회선은 계속해서 발달시키고 사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악화되거나 더 이상 발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타인이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즉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감정이입의 증표이다.
감정이입은 진보주의 가치의 핵심이다.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보살피는 것은 이 가치 체계의 한가운데에 있다. 감정이입에는 자연스럽게 책임이 수반된다. 이는 타인을 도울 책임, 즉 당신의 감정이입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할 책임이다. 책임감 없는 감정이입은 무가치하다. (108~109쪽, 5장 우리는 언제나 싸워왔다: 진보의 자유)

자유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견해는 단순한 자유의 여백을 보수주의 세계관으로 채우는 데서 비롯된다. 보수주의자들이 계속해서 드러내는 바와 같이, 이 세계관은 가정의 가치, 특히 '국가는 가정' 은유를 통해 정치에 적용되는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가치에 의해 구조화된다.
자애로운 부모 가정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아버지 가정도 가정생활에 대한 이상화, 즉 하나의 이상으로 작용하는 인지적 모형이다. 엄격한 아버지 가정에서 보수주의 세계관의 주요한 요소들은 유기적 전체로 구조화된다. 보수주의 세계관들이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유기적 전제 때문이다. (120쪽, 6장 우리는 언제나 수호해왔다: 보수의 자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양 진영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짚어나가보자. 이 부분에서 레이코프의 통찰력이 다시 한번 빛난다. 진보주의자들이 유기적 인과관계에 기반해서 말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는 직접적 인과관계에 기대서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정치에서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양측의 사고방식과 수사법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요즘 복지정책과 관련해서 매일 쏟아내고 있는 언사들을 보라. 보수주의자들은 한마디로 '퍼주기식 복지를 하면 국가 재정이 거덜난다'고 간단하게 규정해 버린다. 민주당을 비롯한 복지론자들은 '보편적 복지'의 개념을 바탕으로 길게 설명하지만 레이코프가 말한 것처럼 유기적 인과관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가 복잡하게 느껴진다.

진보주의자는 사회적·생태적·경제적 체계 내에서 유기적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반면, 보수주의자는 직접적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각 개인의 주장을 펼친다. 그 실례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천계나 늪지와 같은 복잡계의 생태 대 개인의 사유재산권
-빈곤의 복합적인 사회적 원인 대 개인적 주도에 대한 초점
-복합적인 의료보장 체계 대 개인의 책임
-복합적인 경제 대 개인에 대한 낮은 세금
보수주의자들이 아주 단순해서 복합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전략적 주도에 관해 말하자면, 실제로 보수주의 전략가가 시종일관 진보주의 전략가를 압도한다. (138쪽, 7장 썩은 사과만 버리면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