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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밑줄치며읽기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앨버트 O 허시먼, 웅진지식하우스)-1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10점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너도 나도 소통과 협력을 말하지만 그럴수록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대립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라는 20세기가 끝난지도 10년이 지났지만 대립의 양상은 해소될 기미가 없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대립적이라기 보다는 서로 대립적인 사회세력이 진보 혹은 보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진영을 갖추고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지난해엔 진보와 보수가 이념적으로 어떻게 대비되는지,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왔다. 특히 오랫동안 사회지배세력으로 군림했던 보수진영의 레토릭(수사)을 파헤친 책들이 연이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책들은 대체로 서구의 사례를 다룬 번역서이지만 한국에서 두세력이 벌이는 ‘말싸움’의 양상과 대비시켜도 적실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치부로 발령이 나고 나서 며칠동안 들고 다녔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앨버트 O 허시먼/웅진지식하우스)의 짤막한 서문에는 '그들에게 매혹당하지 않기 위하여'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접근방식을 적절하게 예고하고 있는 제목이다. 원저자 혹은 원서의 편집자가 붙인 것인줄 알았는데 인터넷 원문 맛보기를 통해 확인했더니 원서는 그냥 'Preface'라고만 돼 있다. 번역서를 만들면서 번역자 또는 편집자가 붙였다는 뜻이다. 여하튼 이 서문 제목이 이 책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압축하고 있다는 것은 다음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보수주의자들의 담론·주장·수사법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적 현상에 대해 역사적이고 분석적으로 '냉정한' 검토를 시도해 보기로 작정했다. 그 과정에서 담론은 근본적인 성격적 특징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참여자의 욕망·성격·신념과는 거의 무관한 논쟁의 규범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17쪽, 서문)

이 책의 원서 제목은 'The Rhetoric of Reaction'이다. 아시다시피 reaction은 '보수'라기 보다는 '반동'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따라서 굳이 따지자면 부제의 제목이 말하는 '그들'은 반동을 지칭한다. 지은이가 반동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이유를 직접 설명한 대목도 있거니와 본문에선 반동으로 나온다. 지은이는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반동이라는 단어에 부가된 폄하의 뜻을 걷어내고 어떤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물리적인 개념,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서 반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여하튼 '반동의 수사학'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설명적인 제목으로 바뀐 셈인데 한국의 맥락에서 원제목보다 훨씬 더 호기심과 독자의 지지를 자아낼 수 있는 제목이라고 본다.

지은이가 다루는 것은 요약하면 가로 3칸, 세로 3칸의 표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가로 3칸에 들어갈 각각의 항목은 다음과 같다.

영국 사회학자 토머스 마셜(Thomas H. Marshall)이 1949년에 했던 서유럽 '시민권(citizenship) 발전'에 관한 유명한 강의를 상기시킴으로써 모임의 토론 대상이 될 주제가 어떠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는지를 밝혔다. 마셜은 시민권의 시민적(civil) 차원과 정치적(political) 차원, 사회적(social) 차원을 구분한 뒤 … 마셜의 도식에 따르자면, 공교롭게도 세가지 과제는 매 세기마다 하나씩이 부여되었다. (21쪽, 지난 200년을 지배해온 반동 레토릭)

지은이는 18세기 시민적 차원(프랑스 혁명), 19세기 정치적 차원(투표권 확대), 20세기 사회적·경제적 차원(복지국가)으로 순차적을 확대됐다는 것이 마셜의 설명이었다고 부연했다. 이러한 세가지 항목이 가로 3칸에 각각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지은이는 마셜의 단계론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너무 낙관적인 분석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작용과 반작용의 지루하고 위험한 교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명의 중요한 진보란 거의 예외 없이 그 진보가 일어난 사회를 파괴하는 과정이다'라는 앨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의 잘 알려진 관찰에 담긴 깊은 지혜를 새삼 더 깨닫게 된다. (23쪽, 지난 200년을 지배해온 반동 레토릭)

예를 들어 20세기의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보자면 20세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이전의 다른 개혁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자들의 공격과 저항이 거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개혁 과제가 완수되면서 개혁세력이 강고해져 다음 과제를 완수해나가고 하는 식이 아니라 매번 개혁에는 맹렬한 공격이 퍼부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세로 3칸에 들어갈 항목들을 살펴볼 차례다.

마셜이 말한 세 가지의 연속되는 '진보적' 추진력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근본적인 방법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또 다른 세 가지 대칭 명제들을 발견했다. … 나는 그것을 역효과 명제(perversity thesis, 엉둥한 결과를 낳는 명제), 무용 명제(futility thesis), 역효과 명제(jeopardy thesis)라고 부른다. 역효과 명제에 따르면 정치·사회·경제 질서의 일부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행위지가 개선하려는 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다. 무용 명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으며 그 노력들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위험 명제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변화나 개혁은 이전의 소중한 성취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28쪽, 1장 지난 200년을 지배해온 반동 레토릭)

이렇게 해서 가로 3칸, 세로 3칸의 표가 만들어졌다. 사회과학자들, 특히 사회학자들은 이렇게 2*2 또는 3*3의 표를 만들어 X축과 Y축의 각각의 항목들이 만났을 때의 조합을 분석하는 것을 즐긴다. 어떤 이론이든지 이렇게 표로 만들어질 수 있으면 보는 사람의 이해도를 대번에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허시먼은 직접 그린 표를 책 말미에 제시하고 있는데 이 책은 이 표를 채워 나가기 위한 작업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계속)

P.S. 상식이 매우 빈약한 나이지만 허시먼은 구면이다. 전에 국토균형발전에 관한 논쟁을 취재하던 중 허시먼의 '불균등 발전론'이 수도권 중심 발전론의 이론적 배경이라고 설명하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우연히 허시먼의 책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나남)라는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한참동안 가방에 넣고 다닌 것 같은데 워낙 맥락 없이 토막토막 읽다보니 완독하지 못했고, 지금 이 책이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석훈 박사가 이 책의 추천사를 쓰면서 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학자라고 밝혔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허시먼의 불균등 발전론과 발전국가론, 나아가 장하준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국가의 산업정책론의 연관성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