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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밑줄치며읽기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조지 레이코프/웅진지식하우스)-1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 이어 손에 잡은 책이 조지 레이코프의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이다. 두 책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다. 정확히는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는 한번 나왔다가 표지 등을 바꿔서 새롭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여하튼 두 책은 정치수사학 또는 정치언어학에 관한 것이어서 처음부터 연결해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에서 눈에 띄는 대목들을 밑줄을 쳐 보았다. 밑줄치며 읽기가 끝나면 두권을 비교해서 리뷰를 한번 써볼 생각이다.

레이코프는 국내에선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으로 워낙 유명해진 사람이다. 책 날개에 실린 프로필에는 '노엄 촘스키를 잇는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인지언어학을 창시하고 인지과학사에 이정표를 세운 석학'이라고 돼 있는데 조금 호들갑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다. 여하튼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에게 선거에서 깨지고 있는 이유가 공화당이 설정한 '프레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주장을 담고 있다. 프레임의 개념에 대해선 아래 밑줄친 부분에도 나온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읽어보지 못했음에도 번역될 시 정치권에서 워낙 관심들을 갖고 봤는지라 정치면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국회의원 들이 이 책을 탐독하고, 보좌관들이 이 책을 읽고 세미나까지 한다고 말이다.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 10점
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는 '자유'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미국의 보수주의자(정확히는 극우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벌이는 프레임 투쟁을 분석하고 있다. '자유'는 역사적으로 진보주의 진영의 중심 담론으로 여겨져 왔지만 보수주의자들이 이 개념을 전유하기 시작했으며, 극도의 억압적 상황을 낳는 조치들을 자유의 이름으로 설명하고 유권자들을 설득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그러고보면 군 주요 보직 인사를 특정 지역, 특정 학교 출신으로 채워넣으면서 "가장 공정한 인사"라고 한다거나, 강바닥을 파헤치고 강둑을 시멘트로 바르면서도 "맑은 물과 깨끗한 경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분에 대해 우리는 우습다고 비웃거나 비난만 한 채 무시하고 마는 경향이 있는데 어쩌면 그러는 사이 '공정함' 또는 '친환경'이라는 용어의 프레임의 주도권이 '그들'에게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극우 보수주의자는 어떻게 자유의 개념을 뒤집는데 성공하는가?
- 극우 보수주의자는 전통적인 자유를 뒤집으려 하는가?
-극우 보수주의자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미국의 모습은 자유에 의해 결정되며, 현재 미국에서는 누구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극우파들은 바로 이 자유 개념을 재정의하려 하고 있다. 자유를 잃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자유의 개념을 잃는 것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다. (10쪽, 머리말: 자유라는 수수께끼)


부시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가지 자유(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궁핌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에 반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런 부시 대통령이 '자유'를 말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12쪽, 머리말: 자유라는 수수께끼)


진보주의자들은 '자유'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이 유일하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그들은 극우파가 자유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한다. 이러한 거부의 태도로 인해 그들은, 우파가 말하는 '자유'는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이 낱말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며, 부시는 자신이 하는 말뜻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냉소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선동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은 문화적·정치적 지배를 향한 실제적이고 계속적인 극우파들의 약진을 보지 못했다. (…) 무엇보다도 훨씬 더 두려운 점은, 우파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자유'의 개념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13~14쪽, 머리말: 자유라는 수수께끼)


프레임은 개념의 특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심층 프레임일 수도 있고 표층 프레임일 수도 있다. (…) 낱말은 대부분 표층 프레임에 의거해 정의된다. '사망세', '사법적극주의 판사', '천박한 소송', '진보주의 엘리트', '정치적 올바름' 등의 용어가 그 실례이다. 이들 용어는 우파가 대중들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촉발하기 위해 사용한다.
정치에서는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이 논쟁에서 승리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35년간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정치 담론에서 대부분의 쟁점에 대한 프레임을 만들었다. (19쪽, 머리말: 자유라는 수수께끼)


<도덕의 정치(Moral Politics)>에서 나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부모 가정이라는 이상화된 가정 모형을 중심으로 은유를 통해, 어떻게 보수와 진보라는 복합 사고 체계가 조직화 되는지를 아주 상세히 보여주었다. (21쪽, 머리말: 자유라는 수수께끼)


만일 자유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자유는 빼앗기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념을 바탕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개념은 추상적 대상이 아니라 행동의 요소이다. 개념은 이상을 정의하며, 행동의 규범을 만들어낸다. 개념은 옳고 그름의 특성을 규정하며, 이에 따라 과거와 현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 미래에 대한 우리의 전망, 그리고 심지어는 이 나라의 법률도 바꾸어버린다. (25쪽, 머리말: 자유라는 수수께끼)


이러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유를 정의하는 방식이다. 이때의 자유는 개인적 자유인가 아니면 정치적 자유인가? 무엇을 국가의 역할로 보는가에 따라 다른 견해가 도출된다. (…) 간단히 말해서, 아주 많은 경우에 개인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경계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질 수 있다. (45~46쪽, 2장 동물적 본능으로서의 자유)


단순한 자유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모두가 공유하는, 자유에 대한 완전히 합의된 해석이다. 하지만 단순한 자유는 여백을 남긴다. 이는 명시되지 않은 개념으로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구별해준다. (51쪽, 2장 동물적 본능으로서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