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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밑줄치며읽기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앨버트 O 허시먼, 웅진지식하우스)-3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10점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보수(반동)주의 수사학 탐구 세번째다. 책의 서두에서 이미 제시했듯이 위험명제 차례다. 위험 명제는 새로운 개혁이 이뤄지면 앞선 개혁의 성과까지 위협한다는 것이다. 역효과 명제와는 또다른 논법이다.

(…) 반동주의자들은 다시 한 번 진보주의자들의 옷자락을 잡고, 새 진보나 옛 진보나 모두 바람직한 것처럼 주장한다. 그런 뒤에 일반적으로 새 개혁이(만약 시행된다면) 어떻게 해서 귀중한 이전 개혁을, 특히 겨우 최근에야 이루어낸 그것을 치명적으로 위태롭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애써 얻은 노획물 또는 성과인 옛 개혁이 '손 안의 떡'일 수는 없으며, 새로운 프로그램에 의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 주장은 위험 명제(jeopardy thesis)라고 불릴 것이다. (128~129쪽, 4장 위험 명제)

허시먼은 이 책에서 시민권, 투표권, 복지국가가 순차적으로 이뤄진 개혁이라고 보고 이 개혁들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수사를 검토하고 있다. 위험명제는 각각의 개혁을 대립시키는 것이다. 일테면 '투표권을 확대되면 시민권이 위협을 받는다' 또는 '복지가 확대되면 민주주의가 위축된다'는 식이다.

1. 민주주의는 자유를 위협한다.
2. 복지국가는 자유 또는 민주주의 또는 그 둘 모두를 위협한다. (130쪽, 4장 위험 명제)

이런 류의 수사법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상급식을 하면 오히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어들고 교육의 질이 낮아진다'는 논리도 비슷한 것 아닐까? 거시적으로 보면 이런 논법은 반복적이다.

제임스 버틀러(James R M Butler)는 1914년에 쓴 그의 고전적인 논문('The Passing of the Great Reform Bill')에서 1832년의 개혁법안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1831년 당시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위치는,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날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비슷하다. 그것은 점잖은 사람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올지도' 모르고 '올' 것으로 보이는 막연히 공포스러운 어떤 것, (…) 격변을 일으키고 지배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왕과 귀족은 사라지고, 과거의 것임을 드러내주는 모든 종류의 표지도 싹 쓸려 나간다는 것이었다. (132~133쪽, 4장 위험 명제)

허시먼은 위험 명제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대표적인 인물로 자유시장주의자로서 국가의 시장 개입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보인 하이예크를 들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은 모두 하이예크의 직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시장자유' 혹은 '시장자율'에 대한 도그마와 신화는 너무 강력해서 하이예크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사상의 영향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이예크의 <예종의 길>은 고전으로 꼽히는데 이번에 허시먼의 책을 통해 간추린 핵심을 습득할 수 있었다.

(하이예크의) <노예의 길>은 복지국가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추론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했다. (…) 이 주장의 기본 구조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통치 영역의 확대를 향한 어떤 경향도 자유를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추론에 근거하고 있다.

(1) 사람들은 언제나 단지 매우 적은 공통의 일에만 동의할 수 있다.
(2) 민주적이 되려면 통치는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3) 따라서 민주적 통치는 국가가 그 활동을,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소수의 일로 한정할 때만 가능하다.
(4) 그러므로 국가가 중요한 추가 기능을 수행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오직 강제를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이때 자유와 민주주의는 모두 침해를 받게 된다. (160쪽, 4장 위험 명제)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Ceci tuera cela)'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Notre-Dame de Paris)>의 유명한 한 장 제목이다. 여기서 '이것(ceci)'은 인쇄와 책을 나타낸다. 인쇄와 책은 활자의 발명과 함께 '저것(cela)', 곧 대성당과 기타 거대 건출물들을 대신해 서유럽 문화의 주요 표현 양식이 됐다고 위고는 설명한다. …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라는 형태의 진술에 자주 의존하는 것은 굳건한 '제로섬 심리'에 뿌리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70~171쪽, 4장 위험 명제)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 허시먼은 진보파의 레토릭을 슬쩍 검토한다. 자신의 연구의 본래 목적은 반동파의 레토릭을 연구하는 것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진보파의 레토릭까지 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리고는 진보 레토릭에서도 유사한 점이 발견됐다고 말한다.

위험 명제와 무용 명제의 경우, 반동 레토릭을 그 반대로 변형시키면 상승작용 환상에서부터 역사는 우리 편이라는 믿음에까지 이르는 진보 레토릭의 유형들(또는 전행들)이 만들어진다. (216쪽, 6장 보수에게서 배우는 진보 레토릭)

이처럼 반동(보수)파와 진보파의 레토릭을 검토한 허시먼은 마지막으로 '인상비평' 비슷한 것을 덧붙인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비평도 매우 적절하다고 느낀다. 지금 밑줄치며 읽는 책의 다음 순서로 조지 레이코프의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를 보고 있는데 레이코프는 이 문제를 정색하고 탐구하고 있다. 레이코프의 책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밑줄쳐 두으므로 곧 비교해서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풍자라는 강력한 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있어, 보수주의자들은 분명히 진보주의자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 일반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의 노력과 가능한 성과에 대해 회의적이고 경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대 보수주의자들이 지니는 태도로서 필수적이고 매우 효과적인 요소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진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의분(義憤)에는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했다. (224쪽, 7장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가)

(끝)

P.S. 지난 화요일 아침 목이 칼칼하고 관절이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근은 했으나 열이 견딜 수 없이 올라 병원에 갔더니 '플루'란다. 근육주사를 맞고 처방을 받아 약을 먹었지만 의사가 예고한대로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아직도 열은 계속인데 약기운으로 간신히 억누르고 있다. 연초부터 웬 날벼락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