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연령대는 다르고 사건을 다루는 톤도 매우 다르지만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냉소적이고, 때로는 거칠지만 속으론 여리디 여린 소년이다. 일찌감치 학교 사회에 적응하는데 실패하고 이제는 진입조차 포기한채 시간을 죽이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던 그에게 벌어지는 사건은 긴박하다. 이 작품에 매료됐던 것은 플롯이 적당하게 중첩적이고 긴박하면서도 여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의 극적 반전이 압권이다. 조금 더 분량을 늘려 여백을 조금 더 채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유도 모르게 멜랑콜리 해지던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꽤 괜찮은 작품이다.
순수함에 열병 앓은 ‘첫사랑’의 기억
첫사랑은 기억하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유치했던 감상과 행동의 기억은 얼굴이 붉어지게 만든다.
바다거품 오두막 - 멕 로소프 지음, 박윤정 옮김/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첫사랑은 기억하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유치했던 감상과 행동의 기억은 얼굴이 붉어지게 만든다.
첫사랑의 기억은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단단하게 자신을 감싼 각질을 단숨에 헤집어 버리는 마력을 지니는데 첫사랑의 감정이 이성을 향한 그것의 차원을 뛰어넘어 성장기 청소년이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모순과 갈등, 냉소와 희열을 모두 응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백 살이다. 그리고 내 머리는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다. 거의 언제나 똑같은 해변을 배회하고 있다”로 시작된다. 여리고 순수한 이들의 아름답지만, 그러기에 더욱 슬픈 우정과 사랑 이야기다. 소설 속 화자는 자신이 열여섯 살이던 1962년으로 시계를 되돌린다. 학교에서 두 번이나 퇴학당한 주인공은 부모에 의해 바닷가의 오래된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무관심한 교사들, 악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동료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주인공은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날 체육시간, 바닷가를 달리다 일행에서 빠져나와 홀로 외딴 오두막에 들어간 주인공은 이 집에 혼자 사는 소년 ‘핀’과 만난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아무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은 채 날품팔이로 살아간다는 핀. 핀은 그를 무뚝뚝하게 대하지만 주인공은 핀에게 끌린다. 몰래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찾아오는 주인공에게 핀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핀의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한 주인공은 학교와 부모를 모두 속이고 2주간의 휴가를 핀과 함께 보낸다. 한편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동료 가운데 한 명인 소심한 리즈가 주인공 주위를 맴돌지만 그는 리즈를 매몰차게 밀어낸 채 핀에게만 몰두한다.
그러나 학교에 퍼진 선열이 주인공을 통해 핀에게 전염돼 앓아눕는다. 핀에 대한 죄책감과 걱정 때문에 폭풍우가 치는 밤에 핀의 오두막으로 향하는 주인공. 주인공을 쫓아오던 리즈가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은 핀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핀에게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두고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간다. <20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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