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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이 시대 '청년'은 무엇으로 사는가(천정환-한윤형 대담)

리영희 선생은 살아 있는 동안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홍세화씨가 <리영희 프리즘> 서문에도 썼지만 평생을 우상과의 싸움으로 살아왔던 그였지만 리영희 선생은 그 자신이 1970년대와 그 이후 '청년'들에게 정신적 스승으로 자리매김됐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기까지다. '청년'이 화두가 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을까마는 이 시대 청년들은 위태롭다. 나 역시 넓게 보면 청년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20대는 정처없이 표류하는 난파선의 인상이다. 이들의 현주소와 활로를 찾아보자고 준비했던 대담인데, 대담을 진행하면서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이 시대, 이 사회의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경쟁에 지치고, 공통문화 없는 ‘모래알 청년세대’
-각 분야 10인이 쓴 ‘리영희 프리즘’ 필자 2인의 대담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20대 논객 한윤형 씨

리영희 프리즘 - 10점
고병권 외 지음/사계절출판사

고은 시인이 ‘1970년대 대학생의 아버지’라고 썼던 리영희. 군부독재 정권이 ‘대학생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해 탄압했던 그를 프랑스 신문 르 몽드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리영희는 지난해 12월 팔순을 맞았지만 대학생 혹은 청년이라는 단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리영희 선생 팔순을 기념해 최근 출간된 <리영희 프리즘>(사계절)은 리영희를 이 시대 청년을 위한 교양의 기초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이 책은 고병권, 천정환, 김동춘, 이찬수, 오길영, 이대근, 안수찬, 은수미, 한윤형, 김현진 등 10명의 각 분야 ‘논객’이 리영희의 삶과 사상이 던진 생각거리를 각각 풀어냈다. 필자로 참여한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41)와 20대 논객 한윤형씨(27)가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대학생으로 뭉뚱그려지는 이 시대 청년세대의 교양과 삶, 책읽기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청년세대의 교양
천정환(천) = 리영희 선생은 저희 세대만 해도 영향을 덜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리영희 프리즘> 기획서를 처음 받았을 때 한윤형씨가 필자에 들어 있어 흥미롭기도 했고 어떻게 볼지 궁금했습니다.
한윤형(한) = 리영희가 지금 20대에게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누군지 모른다가 정답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니까요. 제가 쓴 글도 그런 취지인데 그때 리영희에 해당했던 것이 지금의 20대에게는 왜 없는가, 어떤 조건이 바뀌었는가라고 묻는 것이 옳은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리영희 선생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세대에겐 꼭 리영희를 읽지 않더라도 공통의 무엇인가가 있었을 텐데, 지금 시대는 텍스트로서 그런 것은 없습니다.
천 = 저희 세대는 미리 짜여져 있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의식화됐는데 지금은 같이 읽기라든지 세미나가 존재하지 않고 의식의 편차도 세대 안에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20대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옛날말로 지식인스러운 태도를 갖고자 할 때 어떤 경로로 인식을 넓혀가는지 궁금합니다.
한 = 저 같은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케이스인데, 인터넷을 별로 안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여기에서도 패턴이 좀 나뉘는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보는 쪽은 박노자의 영향력이 큰 것 같고, 인터넷 많이 하는 친구들은 진중권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강준만은 90년대 후반 학번에게 좀 더 영향력을 미쳤던 것 같고요. 어디까지나 정치에 관심 있는 친구들 얘깁니다만.
천 = 88만원 세대라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대학생 내부의 격차가 그야말로 극심하잖아요? 세대로 규정 당했지만 하나로 묶일 수 있을까 회의적입니다. 같은 대학생이지만 고민하는 주제나 행동하는 양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일테면 어떤 여학생이 소개팅을 할 때 서열상 어떤 위치 이하 대학의 남학생과는 절대 안 만나겠다고 말하더군요.
한 = 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옛날에 비해 대학생 집단이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대학진학률이 86%에 달합니다.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90년대 초반만 해도 농촌 출신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만 해도 같은 수준의 텍스트를 읽고 섞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같은 학교, 같은 과라고 해도 계층이 다르면 서로 안 섞이고 사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수능을 비슷하게 쳐서 들어와도 그 안에서 이미 계층이 갈라지는 것이죠.
청년세대의 현실
천 = 결국 대학생들이 끝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원자화하는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 방식처럼 ‘100만 청년학도’라고 호명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한 부분에서 공동체성 같은 것들을 회복하거나 대학생 공통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20대를 사회 전체의 변혁을 위해 복무하는 전사로 동일시하거나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 역시 등록금 문제입니다. 대학생들이 영어와 컴퓨터 등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도 있죠. 이건 전체 사회의 문제이자 자기 자신의 문제이고 내 주머니에서 돈을 갈취해가는 문제인데 정치의식이 없더라도 같이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요.
한 = 설문조사를 보면 운동이 필요하다고 답하는 비율이 많은데 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들 합니다. 원자화가 완료된 상태에서 문제의식은 느끼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 거죠. 시간이 지나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요. 지금은 부모가 돈을 투자해서 대학만 가면 취직이 된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삶의 문제가 곧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천 = 작은 단위의 실천 같은 것이 중요하겠죠. 예를 들어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 ‘여학생자취연대’ 같은게 있더군요. 자취하는 여학생들이 같은 문제에 처해 있으니 같이 대응하자라는 취지인 것 같았습니다.
한 = 20대가 운동을 해서 당장 정권을 바꾸고 하는 것보다는 작은 것부터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20대 내부의 논쟁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대끼리 서로 누가 옳네 그르네 하며 싸우면 20대가 보게 되고 힘이 세지는 것 아닌가 합니다.
청년세대의 책읽기
천 = 주제를 책읽기로 돌려보죠. 대학생들이 책을 덜보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물론 문화적 조건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많이 보니까요. 저희 세대에 책은 사회과학, 인문·교양서 이미지가 강한데 2000년대 들어 인문사회과학 시장이 굉장히 쪼그라들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독자가 재생산이 안된다는 것이고 그 핵심은 20대 독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자기계발로서의 교양이든 삶의 태도나 지향점으로서의 교양이든 교양을 다 포기했다거나 열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 20대는 어릴 적부터 아이폰을 갖고 노는 초등학생하고는 다른 세대이므로 책읽기에 대한 강박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바쁩니다. 경쟁하느라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거죠.
한 = 제가 아는 후배는 이공계를 다니는데 제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자기 주변에 전공서적 이외에 다른 책을 보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바쁘니까요. 전공 외에도 영어, 컴퓨터, 중국어를 시간표를 짜놓고 공부합니다.
천 = 처절한거죠. 학원 5~6개씩 다니는 강남 초등학생들도 불쌍하지만 20대들도 자기 책임을 이행하느라 엄청난 압박에 시달립니다. 구조적인 문제라 어디서부터 뚫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간 경쟁, 대학 내부의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대학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당분간 희망은 없다고 봅니다. 청년문화가 붕괴된다고들 하는데 청년이라는 말 자체가 20세기 들어서면서 처음 쓰인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청년문화가 아예 없는 시대, 청년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201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