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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철학 vs 철학>의 강신주

강신주 박사는 지난해에 나온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워낙 감명 깊게 읽었기에 언젠가 한번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었다. 특히 그가 기획위원으로 있는 '문사철'은 출판계, 특히 인문 출판계에선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는 집단이다.

새책이 나왔기에 얼른 인터뷰 약속 잡았다. 강신주 박사는 말하기를 참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보통 글을 쓰는 분들 가운데 말수가 적은 분들이 많은데, 강신주 박사는 인터뷰 하는 내내 내가 몇마디 묻지 않아도 내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줄줄 이야기 했다. 아마 이 책을 내고 인터뷰를 몇번째 하는 것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강신주 박사는 글쓰기로 본다면 '괴물' 같은 사람이다. 책을 한번 쓰려면 1달 안에 써내는 것이 자신의 원칙이라고 한다. 한번 달아올랐을 때 쏟아내야 온전한 '작품'이 나온다는거다. 중간에 끊어지면 한없이 늘어질뿐더러 독자가 바로 그걸 알아본다나?

이번 책은 분량이 두꺼워 4달 가량 걸렸다고 하는데 가로로 읽어도, 세로로 읽어도, 눕혀놓고 읽어도, 세워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저자 스스로가 여러모로 생각해 책의 얼개를 그렇게 짰다고 한다. 40대 초반인 강 박사는 이미 인문 독자들 사이에선 유명인이지만 앞으로 사회적으로도 더 알려질, 이른바 '스타'가 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동서양철학도 우리 몸에 맞아야"

철학 VS 철학 - 10점
강신주 지음/그린비

소장 철학자 강신주씨(43)는 철학자이면서도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공식 직급은 ‘시간강사’이지만 강단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강연, 동서양 철학사상을 끌어다가 일상의 현실에 대입시킨 저술로 그는 인문학, 특히 철학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겐 꽤나 유명한 저술가다.
강씨가 최근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이라는 대담한 부제가 달린 <철학 vs 철학>(그린비출판사)을 출간했다. 단독 저서로는 14번째의 책이다. 이 책은 본문만 820여쪽, 인명사전·개념어사전·더 읽을 책 등 부록을 합하면 900쪽이 넘는다.
철학사의 고전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를 서가에서 밀쳐버린다는 목표에서 출발한 <철학 vs 철학>은 구성부터가 독특하다. 1부 서양편, 2부 동양편으로 나누어 사물의 본질·행복·사유재산·사랑·언어·윤리·깨달음 등 56개 주제를 세우고, 해당 주제에 서로 대립적인 시각을 보인 동서양 철학자 112명을 등장시켰다. 각 장은 해당 주제에 대한 문제 제기에 이어 2명의 철학자를 소개하고, 마지막에는 강씨의 해설과 비평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되고, 끌리는 주제부터 뽑아서 읽어도 된다.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난 20년 동안의 모든 것을 이 책에 쏟아부었다는 강씨. 지난달 26일 그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출판기획집단 ‘문사철(文史哲)’ 사무실에서 만난 강씨는 두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개념어사전을 만드느라고 20일 동안 컴퓨터에 매달려 있었더니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안과에 갔더니 결막염이라고 하더라고요.”


한국의 철학계에 던져지는 비판 가운데 흔한 것이 저자는 없고, 평론가·수입상만 넘쳐난다는 것이다. 강씨 역시 그 비판에 동조했다. “외국의 사상을 수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옷을 수입한다면 긴 곳은 자르고, 짧은 곳은 이어서 우리 몸에 맞게 해야 하는데 선배들은 긴 옷을 그대로 입고 다녔어요. 오히려 옷을 건드리면 안된다고 했죠.”
강씨는 <철학 vs 철학> 역시 “평론가적 글쓰기의 완결판”이라고 했다. 하지만 20년 공부의 매듭을 짓고 새로운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은 이 책에서 동서양 철학을 ‘우리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가능성을 탐색했다. “신채호 선생이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된다’고 개탄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빌리자면 서양철학 혹은 서양철학의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서양철학 혹은 우리의 동양철학이 되어야 합니다.”
강씨는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철학의 주변부에서 살아온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강씨는 책의 서두에 “우리는 서양철학의 중심지도 아니고 동양철학의 중심지도 아닌 제3의 공간에서 살아왔다. 이런 악조건이야말로 우리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제3의 시선으로 인류의 철학사를 다시 조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라고 썼다.
강씨가 강조하는 또 다른 하나는 자유와 희망, 미래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고 삶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철학이다. “철학은 인간에게 미래와 희망을 심어주는 부류와 우울하고 체념하게 만드는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양쪽을 모두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논쟁을 하도록 함으로써 전자를 제 위치에 복원시키고자 했습니다.”
책을 집필하는 동안엔 사흘 글을 쓰고 하루는 등산을 한다는 강씨는 “<철학 vs 철학>의 에필로그까지 쓰고 나니 허탈감과 함께 ‘이제 뭘하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엄살이 섞여 있는 듯했다. 그의 머리와 몸은 이미 올 여름 1차분이 출간될 <제자백가> 시리즈로 옮아가고 있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을 12권으로 총망라하는 큰 작업이다. <2010.3.2>

PS. 그린비 출판사가 이 책 출간을 기념해 진행하고 있는 이벤트가 재미있다. 자신의 철학적 성향 테스트인데 한번 해보시길... 그린비 철학셩향 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