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썼던 기사인데 한참 지난 뒤에야 갈무리를 한다. 최승호 시인은 시인으로서 매우 널리 알려진 분인데 동시집 출간을 계기로 간담회가 있었다. 교수로 계셔서 그런지 무척 달변이었다. 어릴 적 동시짓기는 무척 어려운 숙제였던 것 같다. 도대체 시라는게 뭔지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준 기억이 없다. 대충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 가지고 수업을 한 다음에 써오라고 숙제를 내주니 괴로울 수 밖에. 매번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들 보고 대충 비슷하게 짜맞춰 갔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 왜 시들은 모두 '~네'라고 끝나는지 궁금해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동시는 커녕 시 조차도 읽어본지 까마득 하다. 하지만 내 새끼도 비슷한 난감함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기사 외에 간담회에서 최 시인이 했던 말들을 함께 갈무리 했다. 아이들에게 시를 읽히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겐 참고가 될만할 것 같아서다.
"딸에게 작품 읽혀서 어렵다고 하면 뺐죠"
'도롱뇽'
도롱뇽 노래를 만들었어요
도레미파솔라시도
들어 보세요
도롱뇽
레롱뇽
미롱뇽
파롱뇽
솔롱뇽
라롱뇽
시롱뇽
도롱뇽
시집 <대설주의보>의 시인 최승호씨(56·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말놀이 동시 '도롱뇽'이다. 최씨는 이처럼 우리말의 소리와 음악성을 살린 동시 371편으로 구성된 말놀이 동시집 5권(모음편, 동물편, 자음편, 비유편, 리듬편)을 비룡소 출판사에서 완간했다. "그동안 동시들이 너무 의미에 치중하다 보니 오히려 어린이들을 억압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말놀이 동시집을 통해 소리글자인 우리말의 맛과 멋을 어린이들이 제대로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최씨의 말놀이 동시들은 특정단어의 머리글자(두운), 끝글자(각운)를 되풀이함으로써 리듬감을 살리고 상상력을 북돋워주는 것이 특징이다.
'귀뚜라미'
라미 라미
맨드라미
라미 라미
쓰르라미
맨드라미 지고
귀뚜라미 우네
가을이라고
가을이 왔다고 우네
라미 라미
동그라미
동그란
보름달
최씨는 "한시, 영시 등은 모두 운문시(두운과 각운 등을 맞춘 시) 전통에서 출발하는데 우리는 한글을 가지고 운문시를 쓴 전통이 별로 없어 전부터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면서 "말놀이 동시는 언어감각과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한 훌륭한 교재"라고 말했다. 말놀이 동시집은 2005년 1권이 나온 이후 12만부가 팔렸다. 동시집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시집의 경우에도 1만부가 팔리면 '대박'으로 평가받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판매량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최씨는 "딸아이가 올해 중학교 1학년인데 모든 작품을 아이에게 읽혀서 어렵다고 하면 뺐다"면서 "실제 강연에서 어린이들에게 말놀이 동시를 읽히면 바로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고 했다. 또 "말놀이 동시는 소리내 읽어야 하고 시의 의미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면서 "아이들이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배울 수 있으려면 부모들이 먼저 의미에서 해방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0.1.13>
-말놀이 동시를 짓기 시작한 계기는?
"제가 시집 <대설주의보>를 쓸 때 사북에 있었습니다. 사북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는데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기엔 교과서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것이 두가지인데요, 하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주고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또 하나는 동시를 쓰게 해서 1년에 4번 문집으로 만들었습니다. 철필이라고 아시죠? 그걸로 긁어서 등사를 했는데 120부 정도 만들어 아이들 나눠주고 매번 출판기념회를 했습니다. 시 낭송도 하고 노래도 하고 연극도 했죠. 1990년에 제가 민음사에서 주간으로 있었는데 1년만에 폐간되긴 했지만 '민음동화'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감수성에 대해 나름의 이해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릴려면 색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고 음악을 잘 연주하려면 소리에 대한 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문학을 잘 하려면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겠죠. 그런데 언어에 대한 감각을 길러주는 텍스트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걸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말은 다 아시다시피 소리글자입니다. 그래서 의성어, 의태어가 매우 발달돼 있죠.
중요한 것은 독자입니다. 시인은 언어의 요리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언어로 음식을 만들어 미식가들이 음미할 수 있도록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줍니다. 우리말의 맛과 멋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한글은 소리글자인데 우리는 운문시 전통이 없습니다. 프랑스 시도 그렇고 한시나 영시는 운문시 전통에서 출발하는데 말이죠. 우리 조상은 한자로 두운과 각운을 맞춰 운문시를 만들었지만 한글을 가지고 운문시를 쓴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한글을 가지고 운문시를 쓸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솔길의 두운은 '오'입니다. 돼지의 각운은 '지'입니다. 코뿔소의 각운은 '소'인데 소자를 가지고 랩처럼 썼습니다. 한글을 가지고 운문시를 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간 부분적으로 운을 맞춘 운문시들은 있었지만 시집 형태로, 그것도 5권을 낸 것은 제가 최초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 말이 가진 특징 중에 단어의 미묘한 선택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테면 햇빛, 햇볕, 햇살은 모두 같은 뜻이지만 시를 쓸 때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햇빛은 찌르는 말입니다. '햇빛이 눈을 찌른다'고 하지 '햇살이 눈을 찌른다'고 하지 않습니다. 햇볕은 면적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햇살은 곡선의 의미입니다. '나비가 너울너울'과 비슷한 이미지이죠. 이런 것을 가르쳐주는 텍스트가 없습니다. 프랑스는 어린이들이 시를 가지고 언어를 배운다고 들었습니다. 말놀이 시를 가지고 언어감각가 상상력을 교육하는거죠.
또하나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상상력입니다. 우리말을 잘 살펴보면 묘한 우연성 같은 게 있습니다. '구리'를 예로 들어볼까요. 딱따구리, 개구리, 너구리, 쇠똥구리 등 뜻은 다르지만 '구리'가 들어갑니다. '라미'는 동그라미, 귀뚜라미, 쓰르라미 같은 게 있죠. 이걸 연결시키면 음악이 됩니다.
우간 뜻 중심의 동시들을 써왔습니다. 선배 시인인 한하운 시인이 부분적으로 운문시를 썼죠. 언어는 소리도 있고, 문체, 행태도 있습니다. 4권의 경우 행태시를 시도해 봤습니다. '뿔'이라는 시는 쌍비읍 위로 비읍들이 뿔처럼 솟아나는 형태를 그렸습니다. 시는 3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음악성입니다. 음악성이 없으면 시가 아닙니다. 그림 즉, 이미지, 회화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최소화입니다. 이런 것들이 사라진 것을 아쉽게 생각했습니다. 한국동시가 하지 않은 것, 울타리를 깨는 작업을 하고 싶었던 것이 계기입니다."
-말놀이 동시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췄는지, 그리고 5권이 나오는 동안 다양한 피드백이 있었을텐데?
"말놀이 동시를 넘기는 과정을 묻는 것인가요? 제 딸이 초등학교 때 작업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중학생인데요. 딸에게 보여줘서 어렵다고 하면 뺐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에 2배의 원고를 보냈습니다. 시집 한권에 70편이 들어간다면 140편 정도를 보냈다는 것이죠. 비룡소 편집자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수용자 중심의 글쓰기를 한 것인데요 딸 아이의 검토, 편집자의 검토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삽화가께서 너무 그림을 재미있게 그려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왜 말놀이 동시를 좋아한다고 보시는지?
"5권의 경우 읽으면 그대로 노래가 됩니다. 강연 같은 곳에 가서 시를 읽어보라고 하면 어머니와 아이가 랩을 하면서 춤추고 놉니다. 그간 동시들이 너무 의미에 치중해서 아이들을 억압한 측면이 있지 않나 합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가 '도롱뇽'인데요 넌센스가 깔려 있습니다. 의미는 별로 없죠. 대신 소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뜻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조리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억압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 말이죠."
-우리 부모들의 언어교육에서 보이고 있는 문제점이나 조언을 하신다면?
"제가 딸 아이 말을 가르칠 때 카드를 만들어서 그림과 글시를 보여주면서 읽게 했습니다. 거긴 음악적 요소가 없습니다. 어린이를 궁극적으로 언어의 미식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맛과 멋을 알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딜리아니라는 화가가 있는데요, 어머니가 늘 화랑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화랑에서 선과 색을 봤을 것입니다. 만약 이발소만 데리고 다녔다면 이발소 그림 이상 그리지 못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예술 교육은 느낌이 중요합니다. 예술은 느낌에서 출발하거든요. 지식의 장르가 아닙니다. 일단 교과서에 좋은 작품들이 실려야 합니다. 학교 예술교육은 안목을 갖게 하는 겁니다. 안목만 생기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안목이 없으면 문제가 됩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을 어린 미식가들에게 맛보게 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어린이가 느낌이 섬세해지고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주입식 교육보다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예술은 개성화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동시 작업을 계속 하실건지요?
"시집도 내야 하고요. 일단 5권으로 마무리하고요, 한동안은 시 작업을 할 것입니다."
-말놀이 동시를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읽혀야 할까요?
"소리내서 읽어야 합니다. 소리내서 읽으면 리듬감이 생깁니다. 뜻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부모가 먼저 의미에서 해방돼야 합니다. 색채교육, 소리교육 마찬가지입니다.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의미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말놀이 동시를 읽다보면 아이가 스스로 말놀이 동시를 쓰기도 합니다. 이 정도는 뭐 나도 쓸 수 있다 그러면서요. 그걸 칭찬해주고 모두 모아 놓으세요. 이렇게 모이면 묶어놨다가 아니가 커서 보여주세요. 나중에 의미있는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결국 의미에서 해방시켜 말놀이 동시를 쓰고 참여토록 유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