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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용산참사 1주기 맞아 르포만화책 출간 김홍모씨

용산은 괴롭다. 괴로운 주제다. 그래서 우리는 용산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분개하면서 다 안다고 하면서 그냥 지나치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는 용산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도시 재개발과 철거 문제'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순간 용산의 그 사람들, 살기 위해 올라갔다가 죽어간 사람들은 우리의 기억에서 화석이 돼 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만화를 그리 즐기지 않지만 이 만화를 보면서 만화라는 매체의 힘을 새삼 느꼈다. 백마디의 말과 글보다 한컷의 그림이 훨씬 잔잔한 감동과 진실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홍모씨는 까까머리에 뿔테안경, 느릿하지만 걸걸한 목소리가 웬지 만화가스럽다는 인상을 줬다. 만화가들이 들으면 기분나빠할 지 모르겠지만 '만화가스럽다'는 단어의 정의를 스스로 내려 버린 셈이 됐다. 일과시간중엔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인터뷰를 밤 9시에 진행했다. 밤 9시에 인터뷰를 해본 적이 있던가?

"취재하면서 울고, 그리면서 엉엉 울었지요"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 너무 억울하고 분했어요. 그런데 3월쯤 됐을까, 저에게서 용산이 점점 희석되고 잊혀져가는 것을 느꼈어요.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잊혀서는 안되는 사건인데…. 만화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만화가 김홍모씨(39)는 국내보다 유럽에 더 많이 알려진 작가다. 독립운동을 SF기법으로 그린 <항쟁군>, 자신의 소년 시절을 회상한 <소년탐구생활> 등 지금까지 낸 만화책들이 모두 유럽에서 출간됐다. 따뜻한 한국화에 주로 사회의식을 담아왔는데, 이번에 김성희·김수박·신성식·앙꼬·유승하 등 만화가 5명과 함께 그린 <내가 살던 용산>(보리출판사)을 냈다.
 
6명의 작가들은 1년 전 용산에서 스러져간 철거민 5명이 어떤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왜 망루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만화에 담았다. 이 책은 이승현씨의 그림책 <파란집>(보리출판사)과 함께 20일 열리는 용산참사 1주기 추모제에 헌정된다.
내가 살던 용산 - 10점
김성희 외 지음/보리

<내가 살던 용산>은 '르포만화'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과거사나 역사인물 등을 다룬 만화는 적지 않지만 동시대의 문제를 기록한 만화는 흔치 않다. 김씨는 "작가의 주관이나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기보다는 희생자와 유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협상 타결과 관계없이 억울한 죽음은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돼야만 이런 엄청난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관적 감정을 자제하려고 했지만 희생자들의 사연을 취재하고 작품으로 그려내는 작업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사실 유족들을 자주 만나거나 취재를 오래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뿐 아니라 모든 작가들이 정신적으로 너무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만화를 그릴 때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는데 그분들의 심정을 너무나 깊이 알게 된 거죠. 취재하면서 울고, 콘티 짜면서 울고, 만화를 그리면서 엉엉 울었습니다."
희생자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 철거민 문제의 본질도 어렴풋이 잡힌다. 김씨는 "취재를 하다 보니 '이분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우리 동네 아저씨나 할아버지였구나, 나였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구속 중인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씨가 보내온 편지를 기반으로 망루 안 상황을 그린 김씨는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카페 '레아'에 희생자들이 모두 모여 생맥주 마시는 모습을 마지막 장면에 그려 넣었다. "그분들이 바랐던 것은 큰 게 아니었어요.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려는 건 더더욱 아니었죠. 그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거였을 겁니다." <201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