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판타지물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어린이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모험물도 마찬가지다. 책들을 접할 때 내 심리적 상태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나 대체로 그런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출판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견줄만한 작품이라고 찬사를 늘어놓았는데 흥미진진한 환상속 모험과 잔잔한 메시지가 푼푼하다.
"모든 게 다 시간 낭비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문제는 왜 푸는 거야? 배추 몇 포기를 더하고 달랑 무 몇 포기를 빼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에티오피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2월(February)'의 철자가 뭔지는 알아서 뭐 할 거야?"
팬텀 톨부스 - 노튼 저스터 지음, 줄스 파이퍼 그림, 김난령 옮김/옥당(북커스베르겐) |
"모든 게 다 시간 낭비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문제는 왜 푸는 거야? 배추 몇 포기를 더하고 달랑 무 몇 포기를 빼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에티오피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2월(February)'의 철자가 뭔지는 알아서 뭐 할 거야?"
어느 대도시에 사는 소년 마일로는 세상만사가 귀찮다. 특히나 마일로에게 학교 공부는 시간 낭비다. 여느날처럼 '지루한 오후를 또 어떻게 보낸담'이라고 투덜대며 집에 돌아온 마일로에게 선물이 하나 도착해 있다. '저 너머의 땅을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환상의 통행요금소'라는 설명서와 함께. 달리 할 일도 없던 마일로는 설명서대로 통행요금소를 조립한다. 한 손에 지도를 든 채 방구석에 처박아 뒀던 장난감 전기자동차를 타고 통행요금소로 천천히 다가가는 마일로.
1961년 처음 출간되자마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교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소년판'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책은 23개국에 번역돼 300만부가 넘게 판매됐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소녀 앨리스가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어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캐릭터들과 엮이면서 좌충우돌 모험을 펼치는 것처럼 이 책의 마일로 역시 '예측의 땅' '권태의 땅' '언어나라' '숫자나라' '침묵의 골짜기' '성급한 결론의 섬' 등 기묘한 이름이 붙은 지역들을 여행하면서 환상 속의 등장인물들을 만난다.
마일로는 이런 공간들을 여행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무엇보다 언어, 숫자 등 지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저 너머의 땅'을 지배하는 혼란과 무질서를 제거하려면 성에 갇힌 쌍둥이 공주 '감성'과 '이성'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모험을 자청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쌍둥이 공주는 마일로에게 "배우는 게 다가 아니야. 네가 배운 것을 제대로 쓰는 법을 터득하고, 그것을 왜 배우는지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단다"라고 말해준다.
마일로가 몇 주를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현실의 시간은 한 시간밖에 지나 있지 않았다. 마일로는 사라져 버린 통행요금소가 아쉬웠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 이제 현실에서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므로. <2009.11.28>
'~2010 > 동화책 보는 아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열일곱 살의 인생론(안광복/사계절) (0) | 2010.01.10 |
---|---|
[서평]'하지마라'보다 '할 수 있는 것' 적어주세요 (0) | 2009.12.11 |
“엄마한테 ‘왜?’, ‘돼!’라고 하면 왜 안돼?” (0) | 2009.11.23 |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정약용, 김려의 걸작 (2) | 2009.11.05 |
콩쥐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2) | 2009.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