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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동화책 보는 아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정약용, 김려의 걸작

알마 출판사의 '샘깊은 오늘 고전'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리즈다. 한문 고전을 다듬어서 내고 있는데 초등 고학년 이상의 눈높이로 제작된다고는 하지만 밝으면서도 진지한 디자인이 먼저 눈에 띄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글들은 한줄한줄이 주옥같다. 어른들이 들고 다녀도 손색이 없다. 짧은 내용이긴 하지만 두고 두고 읽을만 하다. 화소(話素)가 될만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도강고가부사(道康고家婦詞)는 360행의 서사시인데, 임형택 전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발굴해 1988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공개한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을 한글로 직역하면 '강진 장님한테 시집간 여인의 이야기' 정도 된다.

여러모로 아는게 적은 나로선 '김려'라는 인물은 생소한데, 신분제에 대한 강한 반감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처럼 우리 한문학사에 분명히 이름을 남겼고, 작품이 남아 있음에도 우리는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요즘은 갈수록 소시적에 고전을 많이 읽어둘 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정약용(1762~1836)과 김려(1766~1822)가 조선 시대 하층민, 특히 심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여성의 삶을 소재로 각각 한자로 쓴 서사시 '도강고가부사(道康고家婦詞)'와 '방주가(蚌珠歌)'를 우리말로 옮겼다. 원제를 고려해 각각 '팔려 간 신부'와 '방주의 노래'로 제목을 붙였다.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 - 10점
정약용·김려 원작, 김이은 지음, 이부록 그림/알마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귀향살이할 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다고 소개한 '팔려 간 신부'는 말 그대로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포악한 남성에게 팔려간 18살 꽃다운 여인이 겪는 고초를 그리고 있다. 마음씨 너그러운 부자라는 중매쟁이의 말과는 달리 혼례식장에 나타난 남편은 장님인데다 험상궂었고 더구나 이미 결혼을 두 번씩이나 해 신부보다 나이가 많은 자식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우는 딸을 달래 첫날밤을 치르게 하고 떠나보낸다. 남편의 매질과 구박을 이기지 못한 여인은 도망쳐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된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잡아오고 고을 원님은 그녀의 하소연은 듣지도 않고 다시 남편과 살라고 명령한다. 그녀는 또다시 도망치지만 원님은 기어코 그녀를 잡아들인다.
정약용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김려가 쓴 '방주의 노래'는 조선 시대에 가장 낮은 계층이었던 백정 집안의 딸 방주가 주인공. 천민이지만 아름답고 예의가 밝았던 방주는 우연한 기회에 양반 장파총의 눈에 들게 되고, 장파총은 방주를 며느리로 삼고 싶다고 방주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가장 천대받던 백정 집안의 딸이 양반집 아들과 결혼한다?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김려의 방주가는 미완성 작품이기에 실제 방주가 장파총의 아들과 결혼을 했는지, 결혼 뒤 어떻게 살았는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두 작품은 차별과 억압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여성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대신 백성을 보듬기는커녕 재물을 뜯어가고 못살게 구는 지배계층에 대해선 비판의 시선을 던진다. 특히 '방주의 노래'는 평등사상까지 담고 있다. 원작자들의 화려하고 섬세한 묘사가 한글로 온전히 옮겨져 아련한 감동을 전한다. <200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