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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몰입 방해하는 번역서 속 오·탈자 그 책은 실패다

예전 편집국 국제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외신에서 해외토픽성 기사가 올라와 부원들끼리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다. 스위스의 어느 작은 신문사가 내렸다는 조치 때문이었다. 신문에서 오탈자가 너무 빈번하게 발견되고, 아무리 조심하라고 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앞으로 오탈자를 쓴 기자에게 5달러의 벌금을 매기겠다고 공지했다는 기사였다. 이걸 보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너희들도 오타를 내면 5천원씩 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글을 쓰는게 직업인 나 역시 오탈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론 문법적으로 맞지 않은 비문을 쓰기도 한다. 데스크가 내 기사를 보고, 교열팀에서 맞춤법을 스크린 하지만 가끔씩 오탈자가 나온다. 오탈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숙명과 같은 것이다.

단순한 오탈자도 문제지만 심각한 것은 오역이다. 오탈자나 오역이 많은 책을 읽다보면 처음엔 짜증으로 뒤덮인 심정이 되었다가 차츰 오탈자와 오역 찾아내기 대회라도 나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한편으론 오탈자를 찾아내면 쾌감까지 든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이런 쾌감을 안겨줄려고 일부러 오탈자나 오역을 실었을리 만무할 터.

평소에도 느끼던 것이지만 이번 책은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였다. 돌아와서 메일함을 열었더니 편집자가 귀신같이 알고(아마 누군가가 귀띔을 해줬을 수도 있으리라) 메일을 보내왔다. 평소 3교까지 보고 오케이 교열을 한번 더 보는데 시일이 촉박해 몇단계를 건너 뛰었단다. 변명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책은 그런데로 쏠쏠한 재미를 주는 책인데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노릇이다.

길을 떠나면서 책 몇 권을 챙겨 가는 것이 촌스럽다는 사람도 있지만, 장거리 이동에서는 여행가방에서 뽑아든 책 한 권이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 도서전이라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취재를 위해 짐을 꾸리면서 책 두 권을 챙겼다. 그만큼 짐이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엄청나게 많은 책과 이것을 만드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국제도서전을 보러가는 길에 책 몇 권을 챙겨 가는 게 예의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고른 책은 읽을 시간이 없어 책상 한쪽에 모셔뒀던 것들이다. 한 권은 가는 길에, 다른 한 권은 오는 길에 읽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10시간여의 비행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 미국 언론계의 경쟁과 그 이면의 삶을 풀어쓴 책이었는데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번역이 엉망이었다. 책 앞부분에서 이런 오류들이 연이어 발견되면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지만, 계속 읽는다 해도 책의 내용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어느 순간 '얼마나 더 오·탈자가 발견되나 보자' 하는 오기가 발동하면서 글자 하나 하나를 감시하는 데 더 신경이 쏠리기 때문이다. 이 책을 가방 안에 쑤셔넣지 않고 끝까지 읽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실 일주일에 많게는 100권 가까이 되는 신간도서들을 검토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오타나 오역을 발견하게 된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잘못을 발견하면 출판사에 전화를 해 확인하곤 한다. 남들보다 해당 책을 먼저 접한 독자로서 잘못된 부분이 빨리 고쳐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마음에서였다.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의 제목과 출판사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다른 번역서들에서도 크고 작은 흠결들이 자주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간 내가 발견했던 잘못된 번역, 오·탈자 등 온갖 실수 사례들의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조사로 '은'을 써야 할 자리에 '는'이라고 쓴다거나 철자가 틀린 경우는 애교 수준이다. 같은 인물을 지칭하는데 전혀 다른 이름이나 직책으로 표기된 경우는 황당해서 웃음조차 안 나온다. 이를테면 앞에선 '로버트'라고 불렀다가 바로 뒷 문장에서 같은 인물을 지칭하는 게 분명한데 '제임스'라고 부르는 식이다. 저자가 정부 고위 관료와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앞에서 '차관님'이라고 불렀다가 바로 다음엔 '장관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 상대가 승진을 한 건가? 이런 사례들만으로도 책은 그 신뢰도를 현저하게 잃는다.
현지에서 출판사 관계자에게 이 얘길 했더니 "번역이 그토록 엉망이었다면 보통의 출판사에선 편집자가 걸렀을 텐데…"라며 의아해했다. 잘못된 번역과 오·탈자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걸러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번역의 실패이자 명백한 편집의 실패라는 얘기다.
번역 오류 문제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엉터리 번역서를 볼 때마다 터지는 분통은 매번 새롭다. 이런 책은 차라리 내지 않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눈에 불을 켜고 오·탈자와 오역된 부분을 찾아 밑줄을 긋다보니 어느덧 비행기가 착륙할 시간이 됐다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프랑크푸르트에서  <200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