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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여전히 목마른 문맹의 씨앗들


남미 콜롬비아에는 ‘당나귀 도서관’이란 게 있다. 소리아노란 이름의 사내가 당나귀 두 마리에 책을 가득 싣고 평소에 책을 접할 수 없는 산골 오지 마을 어린이들을 찾아 다닌다.

비가 와서 책이 젖을까 마음을 졸이고 가끔 게릴라나 강도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소리아노는 산길을 헉헉대며 올라간다. 가난하게 자랐던 그는 지금도 가난하지만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을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막아보려고 10년째 홀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텔레비전에 방영됐던 내용이다.

민간과 지자체가 협력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무상으로 선물하고 지역의 도서관이나 보건소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북스타트’ 운동은 규모와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에 있어선 당나귀 도서관과 다르지 않다. 신종플루 때문에 무기한 연기되긴 했지만 북스타트를 주관하는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은 오는 11~12일 충북 제천에서 ‘2009 북스타트 전국대회’를 열 예정이었다. 이번 행사에선 인구가 적은 농촌 어린이들의 읽기 부진 문제가 주요 토론 주제로 잡혀 있었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선생님,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고 있는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 관계자와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전해들은 실상은 전혀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지방 면 단위 초등학교에 가면 2~3학년인데도 자기 책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거니와 한글을 읽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아이들이 허다하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지역공동체의 와해와 가정의 해체에 있었다. 충남 어느 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초등학교의 경우 한 때 전교생이 수백명이었지만 지금은 30명 남짓이다. 그나마 ‘1면 1초등학교’ 정책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한 학년에 6~7명씩 되는 셈인데 일반 가정, 즉 엄마·아빠와 함께 사는 집의 아이는 아예 없거나 1~2명 뿐이다.

대부분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학교 선생님들은 글짓기나 그림그리기를 시킬 때 엄마·아빠 대신 ‘가정’이란 표현을 쓴단다. 특히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비율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그나마 시골 초등학교의 명맥을 유지시키는 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란 자조까지 나온다. 인구가 적은 면 단위 초등학교들의 사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도시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물이 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도시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책의 감옥’에 가두기 위해 안달이지만 낙후지역 아이들은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구경조차 하지 못한 채 자라나고 있다.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지식강국·문화강국을 외치는 나라 안에서 자라고 있는 문맹의 씨앗들을.

책 읽기 좋다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북스타트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 주부가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 관계자에게 보냈다는 쪽지가 자꾸만 아른거려 독서를 방해한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이렇게 제대로 못 읽는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서…. 아무래도 우리 애들과 비교가 되었거든요. 2~3학년 아이들이 아주 쉬운 글인데도 더듬더듬거리며 읽는데, ‘어머 이럴 수가!’ 싶은거예요. 안타깝기도 하고….” <2009.9.5>

**이 글을 보고 평소 알고 지내는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회사 차원에서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책을 보내는 등의 활동은 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자신도 사정이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고. 처음엔 이 문제에 대해 제도적 보완책, 예산지원 등등을 언급해볼 요량이었지만 너무 뻔한 결말로 흐를 것 같아 실상만 전하기로 했는데 그게 통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