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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대중속으로' 대학 출판부의 변화를 지지한다

출판인들은 종종 "종이에 잉크만 바른다고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치밀한 기획과 꼼꼼한 편집, 글의 성격에 맞는 디자인과 독자를 끌어내는 마케팅 등을 강조할 때 동원되는 말이다. 웬만한 대학이면 갖고 있는 출판부들이 과거 펴낸 책 가운데는 이런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도 개인적으로 대학 출판부들이 펴낸 책들을 보면서 '원고는 둘째치고 참 읽기 싫게 만들어졌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여러 번이다.
과거 대학 출판부들은 해마다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배울 교재를 사기 위해 찾아오므로 굳이 독자를 찾아갈 필요가 없었고, '교수님'들이야 원래부터 어려운 말 쓰기 좋아하는 분들이니 가져온 원고를 그냥 책으로 내주면 그걸로 끝이었다. 하기사 2~3년마다 교체되는 교직원들에게 기획이니 편집이니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4~5년 전부터 대학 출판부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경영 마인드가 강조되고 독립채산제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한 대학 출판부 관계자는 "한마디로 말해서 대학 본부에서 출판부에게 '너희가 벌어서 먹고 살아라'라고 주문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민에 빠진 대학 출판부들이 선택한 것은 '대중 속으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송대 출판부다. 방송대 출판부는 2004년 '지식의 날개'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 대중교양서들을 적극적으로 출간했다. 지식의 날개가 2006년 출판한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이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서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새롭게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영남대, 전남대, 외국어대 등도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 대중친화적인 책들을 출판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상업출판 쪽에서 편집이나 기획인력을 스카우트하는 사례들도 나타났다.
이들의 도전이 성공했는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대학 출판부들이 보유한 필진과 원고들이 외부의 발달된 출판기술과 결합하면 읽기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책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학 출판부는 사주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익이 그대로 재투자돼 질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대학 출판부가 너무 대중을 의식하고 상업적인 성과에 연연하다보면 널리 읽히기는 어렵지만 꼭 책으로 만들어져야 할 학술출판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대학 내부에서 출판부의 변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교수들이 이런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성립하려면 대학 출판부들이 현재 내고 있는 학술서적들의 질이 먼저 점검 돼야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어느 대학 출판부 직원이 쓴 글을 읽었다. 그는 교수들이 쓴, 두껍고 화려하지만 과연 누가 읽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자기과시용 책들을 내고 있는 자신들을 향해 "우리는 환경파괴의 주범 아닌가"라고 자괴했다. 상업출판이든 학술출판이든 독자들을 배려해야 한다. 대학 출판부들의 변화 몸부림은 그런 면에서 옳다. <2009.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