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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한반도에 드리운 ‘연말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가 ‘한·미동맹 재설정론’을 꺼냈다고 한다.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지금보다 5배 더 많이 받아내라는 ‘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비건 지명자가 워싱턴을 방문한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동맹 재설정론을 제기할 때 의도한 범위를 넘어서는 말이겠지만, 한·미동맹뿐 아니라 동북아 안보질서가 전환기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동북아 안보질서 전환을 가져올 각종 사안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연말에 중대한 고비를 맞는다.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미국에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올해 말을 시한으로 설정했다. 북한은 최근 미국이 체제안전 보장과 제재 해제 요구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는 한 비핵화 협상 자체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 중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창은 열려 있다”면서도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으로 맞서고 있다. 현재로선 북·미가 연내에 협상장에 모일 수 있을지, 모이더라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하다. 남북 간 대화도 올스톱 상태다. 이대로 연말 시한을 넘길 경우 북한이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라는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미 간 뜨거운 쟁점인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도 연말이 1차 고비다. 미국은 서울에서 열린 3차 협상 당시 제임스 드하트 대표가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기존 SMA가 정한 항목을 뛰어넘는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가 받아들여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온 반응이었다.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방위비 협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를 넘길 공산이 크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으로선 얼토당토않은 증액 요구를 받아들일 순 없다. 상황이 악화되면 일각의 우려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카드를 빼들고, 한국에선 친미·반미 여론이 격돌하는 극단적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 불태우는 상황은 속담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6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나온 한국과 일본의 합의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 8월 선언한 GSOMIA 종료 결정의 효력 중지는 일본 측의 수출규제 철회 및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복원을 전제로 한 조건부라고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는 GSOMIA 종료 유예 대신 일본 측이 취해야 할 조치의 시한을 못 박지는 않았지만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신청한 해당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 작업이 내년 봄 시작된다고 한다. 연말이 지나면서 한·일 간에 돌파구가 마련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긴장 수위는 다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전쟁 역시 연말이 고비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10월 무역협상 1단계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해 놓고도 정작 합의문 도출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단계 합의로 미·중 무역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아는 중국은 호락호락 선물을 쥐여주지 않을 태세다.

이처럼 2019년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한반도와 동북아가 맞이할 2020년의 모습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다만 사안마다 우리가 내린 선택의 집합이 향후 동북아 안보질서에 반영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시대일수록 냉철한 상황 인식에 기초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변치 않는 기본 지침이다.

(2019. 11.26)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261502001&code=990334#csidxa0502d2a262fd80baaac02706e30f6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