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13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1776년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할 때 그들에겐 답이 명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국 당시부터 북미 대륙에 존재했던 인종적·민족적 다양성 때문에 이 질문의 답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최근 이 질문에 대해 복수의 답을 병존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일들이 있었다.
14일은 ‘콜럼버스의날’이었다. 1492년 미주 대륙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해 연방 정부가 1937년 지정한 공휴일인 콜럼버스의날은 매년 10월 둘째주 월요일이다.
‘워싱턴’이라는 도시 이름은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게서 나왔다. 뒤에 붙은 DC(District of Columbia·컬럼비아 특별구)라는 명칭엔 콜럼버스의 자취가 담겼다. 워싱턴의 대표적 상징물이 백악관 앞에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비이지만, 국회의사당 북쪽 ‘유니언 기차역’ 앞에 있는 콜럼버스의 형상을 새긴 ‘콜럼버스 기념 분수’도 중요 상징물인 이유다. 그런데 올해 워싱턴의 10월 둘째주 월요일은 콜럼버스의날이 아니었다. 워싱턴 시의회가 지난 8일 콜럼버스의날을 ‘원주민의날’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콜럼버스의날을 원주민의날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19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오기 전 미주 대륙엔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기에 그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며, 그가 이끈 원정대가 원주민 사회에 재앙을 가져왔다는 평가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싱턴 시의회 결의안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 북미에는 수백만명이 이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미주 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수천명의 원주민을 노예화·식민화하고 학살하고 불구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 내 7개 주, 70개 이상의 도시가 10월 둘째주 월요일을 원주민의날로 기념하고 있다. 미국 정치·행정·사법의 심장부인 워싱턴도 콜럼버스의날 폐지에 동참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워싱턴 시당국은 남동쪽 외곽에 자리잡은 ‘베리팜’ 지역 재개발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0년대 후반 흑인 구휼기구인 ‘자유민사무소’는 해방된 흑인 및 자유민으로 태어난 흑인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기 위해 데이비드 베리로부터 농장을 사들여 대규모 공공주택 단지를 조성했다. 일종의 ‘해방촌’이 만들어진 셈이다. 1940년대 들어 주택난이 대두되자 연방정부는 이곳에 400동 이상의 공공주택을 짓는 대규모 사업을 벌였다. 역사가 긴 만큼 베리팜에서 나고 자란 유명 흑인도 많다.
베리팜 공공주택 단지는 1980년대에 대규모 개·보수를 거쳤다. 하지만 낡은 터라 재개발 여론이 대두됐다. 이 지역이 마약과 범죄로 악명 높았던 점도 쇄신 필요성을 더했다. 결국 워싱턴 시당국은 기존 건물들을 헐고 훨씬 더 큰 복합 공공주택 단지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민 이주가 시작됐고, 상당수 건물이 철거됐다. 그런데 이주를 거부한 일부 주민은 아직 남은 32개 동을 역사건축물로 보존해 달라고 청원했다. 이들은 워싱턴 중심부의 백인 거주 지역이라면 이처럼 일거에 밀어버리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베리팜이 가난과 범죄로 악명 높았더라도 엄연히 그들의 삶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 시당국은 이들의 요구를 숙고 중이다.
두 사례는 모두 미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그간 배제되거나 과소대표 됐던 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거나 스스로 마련하려는 노력이다. 미국 사회에 ‘백인 우월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인종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정의와 도덕을 유지하려는 힘이 내부에 엄연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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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151408001&code=990334#csidx44497749798aa67b80188ea7ee080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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