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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세상물정의 사회학]물정에 밝은 사회학자의 인생 사용 설명서?

사전은 '물정(物情)'이라는 말의 뜻을 '세상의 이러저러한 실정이나 형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세상물정이라는 말은 세상일이 돌아가는 현상과 구조에 대한 묘사 혹은 기술을 뜻한다.


보통 세상물정이라는 단어는 나이 또는 지혜와 연관돼 사용된다.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라거나 '세상물정도 모르고 날뛰는 바보'와 같은 관용어구가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거나 많이 배웠다고 해서 반드시 세상물정에 밝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요즘처럼 해괴하고 어이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사회에선 세상물정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현대인은 대체로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사유(思惟)는 빈곤하다.


노명우 교수는 '사회학이 전문화의 길을 걷는 동안 잃어버린 세속적 삶으로 이끄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기 위해 연구실을 나왔다'면서 종교, 섹스에서부터 죽음까지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25가지 세상물정을 종횡으로 가르고 역사,사회,철학고전과 버무렸다. 앞서 보았던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의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과 유사한 방식인데, 한국에서 출간된 시기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이 앞선다.





좋은 삶은 단지 선한 의지로만 구성되어 있는 빈한한 삶과도, 지혜와 결합하지 못한 영악함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려한 삶과도 다르다. 좋은 삶은 한편으론 영리하되 영악하지 않은 지혜로움을 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선함이 지나쳐 주어진 모든 것들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무비판적 태도와 거리를 둘 때 가능하다. (17쪽)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은 힘이 세다. 상식은 분명 양적 다수에 근거한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27쪽)


상식이 바람직함으로 갖추면 양식(良識)이 된다. 하지만 상식은 양식보다 힘이 세다. (28쪽)


상식에는 없는 올바름을 갖추고도, 양식은 상식과의 경쟁에서 대체 왜 늘 지고 마는 것일까? 이유는 상식과 양식의 말투 차이에 있다. 상식은 상냥하고 어루만져 주는 어투를 사용하지만, 양식은 공식적이고 엄격하고 훈계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상식이 나를 무조건 이해해 주는 연인 행세를 한다면, 양식은 냉정한 심사위원과도 같다. (29쪽)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른스트 블로흐)에게 말하고 있다는 가금 인용되는 말을 빌려 오자면, 그람시는 좌파이지만 인간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상가이다. (31쪽)


악화에 의해 양화가 밀려날 때, 양화는 악화만을 탓한다. 물론 내용은 빈약한데 읽기 쉬운 책만 편식하는 독자들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난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핏대 세워 비난한다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화학조미료를 탓하기보다, 천연 재료로 만들었어도 화학조미료를 투하해 미각을 마비시켜 맛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음식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게 의미 있는 스타일 변화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43쪽)



르 봉은 군중이 개성을 먹어 치운다고 생각했다. 군중이란 개인을 동질적인 떼로 변형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오직 어떤 특정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집합체만이 그것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성격과는 다른 새롭고 강한 특징을 갖게 된다. 의식을 지닌 인격체는 사라지고 개인들의 감정과 생각은 전부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일시적이긴 하지만 매우 명확한 특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집합적 영혼이 구성된다."(구스타브 르 봉, [군증심리]) (64쪽)


타르드는 군중(群衆)이 서로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공동의 관심으로 연결되고 그로 인해 여론이 형성될 때 공중(公衆)으로 변화함을 발견했다.

…공중은 물리적인 광장에 모이지 않는다. 공중은 서로 흩어져 있다. 물리적인 근접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중은 오합지졸인 군중보다 정신적 밀도가 더 짙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무엇인가? 그 관계는 그들의 확신이나 열정의 동시성과 함께,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의식, 즉 이런 관념이나 저런 의지를 다른 수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순간에 공유하고 있다는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의식이다. 그 각각의 개인이 그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해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르도 충분히 그는 전체로서 받아들여진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가브리엘 타르드, [여론과 군중])(69쪽)



역사는 우리의 순진한 기대처럼 과거의 모든 기억이 집적되는 저장소가 아니다. ‘집합기억’은 과거에 대한 모든 기억의 총합일 수 없다. 역사라는 집합기억은 현재가 관장하는 선별의 문을 통과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역사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역사에 기록되는 사람은 승리자이다. 패배자는 기록되지 않는다. 승리한 사람은 자신의 승리를 역사가 길이길이 기억하도록, 기념일을 제정하고 기념식을 거행하고 기념탑을 세우고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한다.

…나치즘이 승리한 현실이 지속된다면 보호될 가치가 없는 유대인이었던 벤야민은 역사의 공허함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오롯이 담아냈다. (83쪽)



뒤르켐은 각각의 자살에서 관계를 파악하고, 다시 관계에서 "특정한 경향"을 해석해 내고, 그 특정한 경향을 개인 외부에 있는 사회적 힘과 연결시켰다. 각각의 자살을 이어 별자리로 기록하기 위해 뒤르켐은 자살률에 관한 통계자료를 뒤적인다. 뒤르켐이 지키는 방법론적인 원칙은 간단히 이렇게 정리된다. "현상의 생성 원인은 개별적인 사례만 관찰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원인은 개인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사건보다 더 높은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무엇이 개별적인 사례들에 단일성을 부여하는지 파악해야 한다."(에밀 뒤르켐, [자살론]) (175쪽)



‘콜드 팩트’와 마주했을 때 발생할 고통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고, 고통을 치유해 준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 탓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고통에 당신은 책임이 없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당신 마음 속의 고통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어떤 존재가 있다. 그 어떤 존재를 우리는 ‘콜드 팩트’라 부를 수 있다. 그렇기에 상처받은 삶은 상처받은 사회를 치유하지 않은 채 치유될 수 없다. 이 명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혹은 마치 상처받은 사회가 치유되지 않아도 개인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우리가 좋은 사회 속에 살고 있지 않아도 개인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권유는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긍정성으로 뒤범벅된 자기계발서만큼이나 거짓말에 가깝다. (266쪽)



세상물정의 사회학 - 10점
노명우 지음/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