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에 관한 뉴스를 검색하다가 누군가가 단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감시를 하려면 어린이집 보육교사보다 공무원과 국회의원을 제일 먼저 감시해야 한다면서 국회의원 의원실과 공무원들 일하는 관공서에 먼저 CCTV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영상기기들이 발달하고 대용량의 영상 정보를 전송, 처리하는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면서 이 사안은 새로운 윤리적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골목길에 설치된 CCTV 문제는 이제 고전적인 이슈다. 입는 컴퓨터, 소위 말하는 웨어러블 기기 가운데 많은 이목을 끈 구글의 '글래스'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움직이는 CCTV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경찰관들의 폭행과 총격 등 인권침해가 빈발하면서 경찰관들의 가슴에 CCTV를 달게하는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권침해 시비가 붙었을 때 사후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목적도 있고, 촬영되고 있으니 경찰관이나 민원인이나 서로 시비가 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첨단으로 내달리는 기술의 발전을 사회 윤리가 따라잡기란 만만치 않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출현하는데 윤리적 평가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구글 글래스라는 걸 끼고 길거리와 음식점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다음 이걸 편집해 유튜브에 올린다고 생각해보자. 무수한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촬영돼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인터넷에 공개된다. 물론 이런 상황은 현재의 민형사 법제로도 시비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통용되는 과학기술을 전제로 만들어진 법제나 판례를 가지고는 발빠르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CCTV의 효용을 전적으로 무시할 순 없다. CCTV는 범죄 예방과 안전 등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전에는 소변금지라는 문구와 함께 커다란 가위가 그려져 있던 담벼락에 이제는 CCTV가 설치된다. 그럼에도 나는 늘어가는 CCTV를 볼 때마다 불편하다. 누군가를 감시하기 위해 허다하게 설치되는 CCTV들. 그렇다면 이 CCTV를 들여다보고 그 영상정보를 관리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
[로그인]'CCTV 감옥'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시교육청과 서울복지재단을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 비탈진 길을 올라가면 월암근린공원이 나온다. 인왕산 가는 길 주택가 골목길로 이어지는 이 공원은 한쪽 면이 복원된 서울 성곽이 감싸고 있는 호젓한 곳이다. 가끔 점심시간에 짬을 내 인왕산길로 산책 갈 때 이곳 벤치에 앉아 건너편 영천시장과 금화산을 바라보며 다리쉼을 하곤 한다. 어느날 이 공원에 들어섰을 때 부엉이 소리, 정확히는 부엉이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났다. 인왕산 자락이니 부엉이가 살지 말라는 법도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부엉이는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의 같은 경험 끝에 부엉이 소리가 나는 곳을 알게 됐다. 이곳엔 폐쇄회로(CC)TV가 2대 설치돼 있는데, 원형 카메라로서 회전이 가능하다. 카메라는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면 그쪽으로 방향을 돌리는데 이때 '부엉~'하는 소리가 나도록 돼 있는 모양이었다. 경찰 순찰차가 경광등을 켜 잠재적 범죄 용의자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CCTV가 돌아갈 때 소리가 나게 한 것이리라.
도심 속 호젓한 공원에 사는 부엉이에 대한 환상이 깨진 뒤로도 쇠기둥 끝에 매달린 CCTV는 부엉이 소리를 내며 성실하게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밤에 홀로 이곳을 지나거나 여성처럼 완력이 약한 사람들은 CCTV가 보내는 시선에서 안도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이 카메라가 그리스 신화 속 거인 키클롭스의 부리부리한 외눈 같다는 생각이 떠올라 찜찜했다. CCTV 너머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거나, 어떤 장치에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원초적인 불쾌감이다.
CCTV는 현대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가 돼 버렸다. CCTV는 치안과 방범, 안전 등 다양한 명목으로 전국을 촘촘하게 촬영하지만 본질은 싼값에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골목길의 CCTV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못된 짓을 하는지 감시하고, 시내버스에 설치된 CCTV는 승객이 요금을 안 내는지, 다른 승객의 지갑을 슬쩍하거나 추행을 하는지, 그리고 운전기사가 요금을 가로채는지 감시한다. 파출소의 CCTV는 경찰관이 피의자의 인권을 유린하는지, 취객이 경찰관을 폭행하는지 감시한다. 자가용 승용차에 설치된 블랙박스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인 내가 억울하게 가해자로 둔갑되지 않는지 감시한다.
CCTV는 호시탐탐 보다 내밀한 공간으로의 영역확대를 꾀한다. 지난 1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네살짜리 어린이 폭행사건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달자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부결됐으나, 같은 취지의 법안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아이들은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인권보호와 부모님들의 염려를 해소시키기 위해서"(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유아가 가정을 나서서 처음으로 접하는 공적 공간일 가능성이 높은 어린이집에 의무적으로 CCTV가 설치되고 나면 학교 교실에도 달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교실에서는 급우 간 왕따와 폭행, 교사의 폭행과 추행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폭행과 성추행, 자살이 빈발하는 군 내무반도 유력하다. 가정집은? 자기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도 많으니 가정에도 의무적으로 CCTV를 달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CCTV에 대한 수요를 낳은 것은 불신이다. 그런데 CCTV라는 값싼 해결책에 기댈수록 신뢰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은 줄어든다. 불신이 CCTV를 필요로 하고, CCTV가 신뢰가 자랄 가능성을 차단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렇게 무한 불신 사회는 CCTV 감옥에 우리를 가둔다. 이 감옥은 '만인이 만인을 두려워하고 싸워야 하는 사회'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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