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4_2019/휘뚜루마뚜루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이완구·박상옥의 시대적 역할

[로그인]이완구·박상옥의 시대적 역할


2015년 한국 사회는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다거나, 국가가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군부대에 감금한 채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2015년 현재를 사는 한국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경찰관들이 무고한 시민을 고문하고 죽인다거나, 이들을 수사하던 검사가 고문에 참여한 경찰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덮어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된다.


1980년 6월 이완구 경정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내무분과위원회에 파견됐다. 내무분과위는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 사건에 관여했다. 국보위는 사회정화를 한다며 영장도 없이 6만여명을 붙잡아 4만여명을 군부대로 끌고 갔다. 당시 20대였던 이 경정은 국보위 근무 공로로 훈장을 받았고, 2015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1987년 1월 박상옥 검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투입됐다. 박 검사는 3월 초 선배 검사로부터 고문 경찰관이 구속된 2명이 아니라 5명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박 검사가 알고도 묻어뒀던 사실은 5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폭로됐다. 당시 4년차였던 박 검사는 훗날 검사장이 됐고 2015년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공교롭게도 1980년대 전두환 군부 정권 시대의 시작과 끝을 알린 사건에 깊이 연루됐던 두 사람은 "20대의 경정에 불과했다"(이 총리 후보자)거나 "막내 검사로서 지휘를 받는 입장이었다"(박 대법관 후보자)고 말한다. 새누리당도 국보위에 참여했던 고위 인사들이나, 박종철 사건을 맡았던 다른 검사들에게는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막내급인 두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다고 말한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1930년대 독일을 전근대·근대·탈근대적 요소가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사회라고 분석했다. 그는 비동시성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살고 있으나,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다"고 썼다고 한다. 앞의 시간은 달력 위의 시간을, 뒤의 시간은 역사적 시간을 말한다.


삼청교육대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축소는 1980년대 당시에도 엄청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그럼에도 이·박 후보자의 선배들이 이후 별탈없이 고위 공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군부 정권의 유산이 남아 있었고, 그 시대와 그들의 경력 사이의 객관적·주관적 비동시성이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다. 이제 1980년대와 2015년은 달력의 시간으로도, 역사의 시간으로도 거리가 멀어졌고 비동시성은 커졌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삼청교육대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됐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크다는 것은 그 사회의 내적 모순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이런 사회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비동시성을 동시화하려는 운동이 나오게 된다. 동시화 방식은 논리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를 과거로 돌리거나, 현재 시간에 남아 있는 과거를 지우거나이다.


블로흐에 따르면 1930년대 독일의 중산층 시민들은 전자를 택했다. 결과는 나치정권의 득세였고 유례없는 재앙을 낳았다. 1980년대 군부 정권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들이 2015년 총리가 돼 행정부를 지휘하고, 사법부 최고기관의 재판관석에 앉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큰 한국 사회의 모순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역사적 시간을 현재의 달력 시간에 가깝게 맞출 수밖에 없다는 답이 나온다. 1980년대의 '막내'를 자처한 이·박 후보자가 역사에 기여하는 것은 총리·대법관이 되는 게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는 게 한국 사회의 비동시성을 동시화하는 데 기여하는 길이다. 블로흐가 말했듯 '과거 시간의 찌꺼기'는 지양(止揚)돼야 한다.


(경향신문 2015년2월13일자 30면)







술자리 안주로 빠지지 않는게 남에 대한 '뒷담화'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개적으로 남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남의 신상을 들어 비판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과거 문화부에서 출판을 담당하던 시절 격주로 짤막한 기명칼럼을 쓴 적이 있었지만 주제가 출판에 국한돼 있었다. 경향신문 입사 14년 만에 오피니언 면에 기명칼럼을 처음으로 쓰게 됐다. 내가 몸담고 있는 신문 지면에 처음 기명칼럼을 쓴다는 부담에 더해 총리와 대법관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더러 그 자리에 앉으면 안된다는 칼럼을 쓰려니 부담감은 더해졌다.


마침 얼마전 출간된 임혁백 고려대 교수의 [비동시성의 동시성-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이 칼럼의 틀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개념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나 박명림 연세대 교수 같은 분들도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을 사용해 한국 정치를 분석한 바 있다. 임혁백 교수는 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비동시성의 동시성-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에서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이명박 정권 시절까지 한국 정치를 분석했다. 이 책은 시대 흐름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당 시대 정치·사회적 모순에 대한 미시적 분석이 동시에 자리잡고 있어 균형감이 있다. 임 교수는 "한국의 20세기는 사실상 1876년 개항으로 시작되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긴 20세기'이다"라면서 "현재 진행형인 한국의 '긴 20세기'는 지난 세기 말부터 헤게모니적인 정치경제 레짐으로 군림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대항적 정치경제 헤게모니에 의해 대체되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임 교수의 책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을 자세하게 알았고, 몇가지 표현도 가져왔기에 칼럼에서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짧은 글에 에른스트 블로흐, 비동시성의 동시성 등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간 판에 책 얘기까지 들어가면 더욱 산만해질 것 같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나마 출처를 밝혀둔다.


참고로 임 교수는 1980년대 5공 정권을 '군벌주의(caudillismo)'로 규정하고 '퇴행적 권위주의'라고 했는데 이 시간을 '근대적 산업화의 시간과 전근대적 군벌주의의 비동시적 공존' 기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1980년대 민주화 운동 기간을 '민주주의와 군부 권위주의의 비동시싱적인 시간의 충돌' 기간이라고 봤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 등을 통해 '비동시적인 민주화 시간들이 동시화'됐다고 설명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 출간을 계기로 한 임혁백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링크한다. 미완의 한국 근대, 승자독식 경계하고 '합의주의'로 가야


비동시성의 동시성 - 10점
임혁백 지음/고려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