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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서평>굿바이, 스바루

전에 블로그에 관한 글을 하나 쓰면서 출판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돌아오는 얘기가 게을러서 블로그를 개설해놓고 방치하거나, 아예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얘기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파워블로거가 될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한다. 파워블로거 가운데는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자지 않고 블로그에 매달리는 사람이 여럿이라더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인적으로 글들을 모아놓을 요량으로 개설한 블로그에 매일 내가 쓴 글들을 제때에 올리는 것도 벅찬 느낌이다. 단순히 기사로 썼던 글들을 퍼올리는게 싫어 단상들을 덧붙이려 하다보니 포스팅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굿바이, 스바루>는 2주 전에 보고 서평을 썼던건데 이제사 올리게 된다. 이 책은 전에 봤던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루) 이후 가장 즐겁게 본 책이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가난뱅이 클럽을 만들어 소비문화에 저항하기 위해 대학 캠퍼스에서 생선을 굽고 찌게를 끓이는 등의 행동의 기발함이 읽는 내내 낄낄거리게 했다면 덕 파인은 걸쭉한 입담이 압권이다.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 공화당을 지지리도 싫어하는 덕 파인은 방울뱀의 무시무시한 눈초리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관한 기자회견을 할 때 비쳤던 증오의 눈빛을 떠올리고, 가족과 다름없는 자신의 가축을 노리는 코요테에게 '딕 체니'라는 별명을 붙였다.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이라크 침공을 찬성하는 뉴멕시코의 이웃들은 '유엔을 두려워하는 이웃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책을 읽다 보면 한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듯 좌충우돌 하며 전원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책을 읽으면서 덕 파인처럼 작정하고 웃기려고 들지는 않지만 비슷한 컨셉으로 씌인 국내 저자의 책이 떠올랐다. 강원도 춘천에 '풀꽃평화연구소'란 것을 차려놓고 반은 서울에서 반은 전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소설가 최성각씨의 <날아라 새들아>(산책자)란 책이다. 최씨는 자신이 키우는 거위 '맞다'와 '무답이'를 비롯, 주변의 이웃들과 아옹다옹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고 재치있는 필치로 그려냈다. 읽어보진 않았으나 이태 전에 나온 생태에세이 <달려라 냇물아>(녹색평론사)의 후속편이다.

아 참, '스바루'는 내구성 좋기로 소문나면서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끄는 일제 해치백 차량의 이름이란다.

도시촌놈의 좌충우돌 친환경 삶
굿바이, 스바루 - 10점
덕 파인 지음, 김선형 옮김/사계절출판사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동차와 인터넷, 패스트푸드 없이는 못살던 한 사내가 어느날 갑자기 화석연료와 '월마트'로부터 벗어나겠다며 황무지에 정착한다면? 발군의 구글 검색 실력과 독서로 이론을 겸비했다고는 하지만 실전 경험이 전무한 '도시촌놈'이 말이다.
보나마나 좌충우돌, 실수연발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덕 파인의 뉴멕시코 목장 정착이 실제 그랬다. 맹수로부터 염소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껴안은 채 염소 우리에서 잠을 자고, 폐식용유로 구동되는 자동차 원료를 구하려고 기회만 닿으면 기름에 튀긴 깐풍기를 먹고,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하기 위해 9m 높이의 풍차에 매달려 목숨을 건 윈드서핑을 했다. 물탱크 앞을 막아선 코브라며, 똥을 누다 깔고 앉았으면 황천으로 인도했을 전갈은 또 어떤가.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가 16만㎡의 광활한 목장을 구입하면서 세운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름을 훨씬 더 적게 쓸 것. 둘째,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생활의 동력을 공급할 것. 셋째, 최대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로 먹고 살 것. 넷째, 굶어죽거나, 감전사하거나, 동네 퓨마들의 밥이 되거나, 유엔을 두려워하는 이웃들의 총에 맞아 죽거나 할 때 창피스럽게 죽는 것은 피할 것.'
'가능하면' '최대한'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자신이 현재 추구하는 친환경 프로젝트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저개발국에서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농기구를 판매하는 월마트에 가야 하거나 태양열 발전을 위해 납덩어리 배터리를 사용하고, 지하수를 끌어오는 관을 연결하는 부위에 맹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해야 하는 모순을 그대로 내보인다. 하지만 그는 "로컬 라이프, 녹색의 삶을 산다는 건 전부 아니면 전무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 발씩 석유에 중독된 삶에서 벗어나는 자신을 대견해 한다.
시종일관 펼쳐지는 풍자와 위트는 자칫 무겁거나 궁상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에 당의정을 입혔다. 피식피식 터지는 웃음 뒤엔 우리가 갇혀 있는 비생태적 삶에 대한 성찰이 따라온다. <200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