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구워진 글

<서평>일본 정신의 풍경

10년째 알고 지내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 나보다 한살 어리지만 '야자'를 트고 지내는 친구 사이다. 아직 총각인 이 친구를 가끔씩 만나 소주를 마시곤 한다. 이 친구는 한국어를 아주 잘한다. 위트가 나보다 한수 위여서 간간이 받아치는 말들이 배꼽을 잡는다.

이 친구를 알게된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이 친구가 신문을 들고 있길래 한국 신문을 읽는데 불편함은 없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친구가 말하길 한국 신문은 분명 한자어인데 한자가 병기돼 있지 않고, 외래어도 죄다 한국어로 씌여 있어 이해하기 참 어렵다고 했다. 일본에선 한자어는 한자어로 쓰고 외래어, 다시 말해 '아이스크림' 하면 가타카나로 쓰고, 일본에서 유래한 말은 히라가나로 쓰기 때문에 구분이 쉽게 되는데 한국에선 이걸 통째로 한글로 표기하니 한참을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자어 병기를 주장하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신문에서 처음 한자 병기가 폐지됐을 때 느꼈을 어색함이 연상되기도 했지만 이처럼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것에서 일본과 한국이 차이가 나는구나 싶었다.

일본은 한국과 무척 가까운 나라이다. 사전비자까지 면제됐으니 물리적으로 더욱 가까워졌고, 요새 인기를 끄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 서적들이 국내에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우리의 지식-상식 보다 한 단계 더 높은-은 어느 정도일까. 솔직히 나는 그리 깊다고 자신할 수 없다. 자라오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워낙 적었던 터라 요사이 개인적 궁금함을 풀어볼려고 이것 저것 읽어보지만 조각지식만 늘어갈뿐 체계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민족성 운운하는 책이 사안을 너무 일반화시켜버림으로써 거부감을 일으키는 예가 종종있다. 한 집단의 문화를 단일한 원인으로 추적하거나 고정적인 것으로 평가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 엄밀한 의미에선 그런 비판에서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일테면 이 책에서는 <고사기>란 책을 예로 들고 있는데, 한민족에 대해 <삼국유사>를 인용하면서 한민족의 정신세계는 이러저러하다라고 단정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한민족인 우리 가운데 쉽게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거부감이나 의구심이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워낙 일본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해서 일수도 있지만 저자가 나름 촘촘한 그물망을 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정신의 속살을 길어올리기 위한 질기고 촘촘한 그물망,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간만에 그럴듯한 국내 저자의 책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모순 '가깝고도 먼 나라'의 사유방식
-외래는 '내것화' 자국의 침략엔 '무감각'
-'양가적 속성' 품은 日 정신을 해부하다
일본 정신의 풍경 - 10점
박규태 지음/한길사

누가 처음 꺼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에 대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비유는 현재까지도 한·일관계를 묘사할 때 매우 적절하게 사용된다. 북한을 제외하면 일본은 한국에 가장 가까운 나라다. 물론 여기서 '가깝다'는 말은 물리적인 거리를 말한다. 양국의 감정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보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도쿄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양대에서 일본언어문화학 전공 교수로 일해 일본에 대해 일반인보다 많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저자 역시 "일본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때때로 알 수 없는 벽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갖게 마련인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근본 사유방식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즉, 생각과 감정을 명확히 구분하는 한국적 사유방식과 달리 "논리적 사유와 비논리적 감정의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일본의 전통적 사유방식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양가적(ambivalence·모순, 반대 감정 병존) 속성'이라고 명명했다.
일찍이 루스 베네딕트가 유명한 저서 <국화와 칼>(1946년)에서 모순되는 양극단에 대해 모순을 느끼지 않는 이중적인 성격을 일본인이 지닌 특성의 하나로 거론했다. 저자는 베네딕트의 이러한 고찰을 확장시켰다. 모순을 모순으로 느끼지 않고 병존시키는 일본인의 내면적 풍경을 가미(神), 사랑(愛), 악(惡), 미(美), 모순(矛盾), 힘(力), 천황(天皇), 초월(超越), 호토케(佛) 등 10개의 창을 통해 들여다봤다.
'일본정신'을 상징하는 책으로 여겨지는 <고사기>를 보자. <고사기>는 창세부터 일본 황실의 성립과정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다.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으로 불리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가 등장함은 물론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 질투와 욕정 등 '인간적'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듯 <고사기>에 등장하는 신, 즉 '가미'들은 성욕과 권력욕, 복수심 등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일본의 민족신앙인 '신도(神道)' 역시 가미를 인간과 질적으로 상이한 절대자로 여기기보다는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저자는 "일본의 인간주의적 가미 관념에서는 현실을 넘어서는 어떤 추상적 이념이나 보편적 법칙 또는 불변성이나 영원성이라는 관념이 뿌리내릴 여지가 없다"고 한다. 일본정신에서 진리란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현실 그 자체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상대주의는 양가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일본문화의 핵심적 특질이다. 대표적인 일본 불교 교단인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창시한 신란(親鸞·1173~1262)이 설파한 선악관념 역시 상대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신란은 심지어 "나는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불가지론으로까지 나아갔다.
일본인들이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후쿠자와는 제자들에게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서양 격언을 소개하며 실용적 학문으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의식을 고취시켰지만, 악명높은 '탈아론(脫亞論)'으로 중국과 조선 침략의 논리적 기반을 제시한 지독한 패권주의자이기도 했다. 후쿠자와에게 "'펜의 힘'과 '칼의 힘'은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여기에는 모순되는 두 개의 힘이 마치 모순이 아닌 것처럼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책은 이와 같은 일본의 전통적 사유방식이 대단한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 단점으로 나타난다는 시각을 깔고 있다. 지독한 상대주의·현실주의·현세중심주의는 외래적인 것들을 껍데기만 남기고 일본적인 것으로 재빨리 변형시키는 저력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저지른 침략이나 현대 일본이 안고 있는 모순에 무감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블랙홀로도 작용했다.
저자는 일본정신을 들여다보는 10개의 창에 접근하는 통로로 <고사기> <겐지 이야기> <국화와 칼> <가면의 고백> 등 일본에 대해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10권의 책을 동원했다. 따라서 제목만 귀에 익을 뿐 직접 읽어보지 못한 유명한 책들의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다이제스트로 이 책을 읽어도 쓸모가 있다. <2009.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