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알고 지내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 나보다 한살 어리지만 '야자'를 트고 지내는 친구 사이다. 아직 총각인 이 친구를 가끔씩 만나 소주를 마시곤 한다. 이 친구는 한국어를 아주 잘한다. 위트가 나보다 한수 위여서 간간이 받아치는 말들이 배꼽을 잡는다.
이 친구를 알게된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이 친구가 신문을 들고 있길래 한국 신문을 읽는데 불편함은 없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친구가 말하길 한국 신문은 분명 한자어인데 한자가 병기돼 있지 않고, 외래어도 죄다 한국어로 씌여 있어 이해하기 참 어렵다고 했다. 일본에선 한자어는 한자어로 쓰고 외래어, 다시 말해 '아이스크림' 하면 가타카나로 쓰고, 일본에서 유래한 말은 히라가나로 쓰기 때문에 구분이 쉽게 되는데 한국에선 이걸 통째로 한글로 표기하니 한참을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자어 병기를 주장하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신문에서 처음 한자 병기가 폐지됐을 때 느꼈을 어색함이 연상되기도 했지만 이처럼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것에서 일본과 한국이 차이가 나는구나 싶었다.
일본은 한국과 무척 가까운 나라이다. 사전비자까지 면제됐으니 물리적으로 더욱 가까워졌고, 요새 인기를 끄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 서적들이 국내에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우리의 지식-상식 보다 한 단계 더 높은-은 어느 정도일까. 솔직히 나는 그리 깊다고 자신할 수 없다. 자라오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워낙 적었던 터라 요사이 개인적 궁금함을 풀어볼려고 이것 저것 읽어보지만 조각지식만 늘어갈뿐 체계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민족성 운운하는 책이 사안을 너무 일반화시켜버림으로써 거부감을 일으키는 예가 종종있다. 한 집단의 문화를 단일한 원인으로 추적하거나 고정적인 것으로 평가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 엄밀한 의미에선 그런 비판에서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일테면 이 책에서는 <고사기>란 책을 예로 들고 있는데, 한민족에 대해 <삼국유사>를 인용하면서 한민족의 정신세계는 이러저러하다라고 단정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한민족인 우리 가운데 쉽게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거부감이나 의구심이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워낙 일본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해서 일수도 있지만 저자가 나름 촘촘한 그물망을 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정신의 속살을 길어올리기 위한 질기고 촘촘한 그물망,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간만에 그럴듯한 국내 저자의 책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외래는 '내것화' 자국의 침략엔 '무감각'
-'양가적 속성' 품은 日 정신을 해부하다
일본 정신의 풍경 - 박규태 지음/한길사 |
누가 처음 꺼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에 대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비유는 현재까지도 한·일관계를 묘사할 때 매우 적절하게 사용된다. 북한을 제외하면 일본은 한국에 가장 가까운 나라다. 물론 여기서 '가깝다'는 말은 물리적인 거리를 말한다. 양국의 감정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보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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