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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서평>광우병 논쟁(김기흥 지음/해나무)

얼마전 주말에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더니 집안 어르신들이 고기를 굽고 계셨다. 집근처 고깃집에서 사온 쇠고기라는데 아주 싸고 맛도 괜찮다고 한점 들라고 권하셨다. 우리는 어차피 밖에서 식사를 하고 왔기 때문에 배가 불러 고기를 먹을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지난해 대한민국을 온통 촛불의 바다로 만들었던 불씨. 그 불씨가 벌건 색깔의 고기로 육화돼 내 눈 앞에서 지글거리고 있었다. 한 여성 탤런트가 지난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가지고 미국산 쇠고기 업체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하는데-뉴~ 라이트라나 뭐라나 하는 분들은 이 소송을 열심히 응원하고 계신다-물론 미국산 쇠고기가 곧바로 청산가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미국산 쇠고기를 입에 대지 못하는 것일까. 그건 지난해 내가 사석에서 했던 말들, 공적으로 썼던 글들의 잔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우병은 나 개인에게 너무나도 분명하게 각인돼 있는 현재적 문제이다. 아마도 지난해 촛불을 들었던 수십, 수백만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광우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아마 상당한 지식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 쏟아졌던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잊어버리기엔 시간이 너무 적게 흘렀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믿고 있는 지식들이 사실은 사회적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디 광우병 영역뿐이랴. 과학에서 하나의 가설이 이론으로 대접받게 되기까지 정치적, 사회적 과정을 거친 사례는 너무도 많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도 영국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미국의 광우병 이론 경향와 영국의 광우병 이론 경향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 자신이 과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손을 완전히 들어주지는 않는다.


광우병 논쟁 - 10점
김기흥 지음/해나무

“광우병 학설은 여전히 논란중”
-믿어온 프리온 이론 과학적 객관성 부족
-30년 연구역사 서술… 길은 ‘사전예방’뿐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전문가자문위원회는 지난 5월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광우병 파동 당시 "일본, 대만 등도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기준에 맞춰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할 것이며, 한국의 수입조건이 이들 국가와 비교해 형평성의 차이가 있을 경우 재협상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물론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국은 여전히 일본, 대만, 홍콩, 중국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가장 너그러운 수입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캐나다와 유럽연합(EU) 등 광우병 다발국가들조차 "미국에만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광우병 파동이 일어나기 1년 전인 2007년부터 광우병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책을 준비했다는 저자는 "지난 30년 동안 과학자들이 어떻게 이 질병을 연구해왔는지 알아보지 않고서는 이 복잡한 질병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면서 광우병 연구 역사를 서술했다. 질병 및 유전자 연구에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에서 과학사회학, 의료사 등을 전공한 그는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은 사회적 구조의 문제, 정부 정책의 문제, 그리고 상업화와 집약적 농업방식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에 기반해 확산된 사회적 질병"이라고 정의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양이 걸리면 '스크레피', 소가 걸리면 '우해면 상뇌증(광우병)', 인간이 걸리면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쿠루' 등으로 불리는 일군의 질병을 통칭하는 '감염성 해면상뇌증'. 이 병에 걸린 동물들은 어느날 갑자기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예외 없이 죽는다. 사체의 뇌를 잘라보면 모두 스펀지처럼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
이 병이 여타의 전염병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면역반응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요즘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플루'에서 보듯 전염성 병원균이 체내에 들어오면 백혈구 등 면역체계는 적으로 간주해 전투를 치른다. 이는 고열, 염증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광우병을 포함한 감염성 해면상뇌증은 이런 증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소리 없는 암살자'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초기 연구자부터 현대의 연구자까지 골머리를 앓게 만들었고 논쟁을 양산했다. 기존의 전염성 병원체와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병원체라는 것은 확실한데 도대체 그 진상을 규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질병의 병원체가 바이러스와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지만 바이러스처럼 핵산이라는 물질을 가진 '바이리노'라는 학설과 핵산이 없는 단백질 덩어리인 '프리온'이라는 학설이 맞서왔다.
두 가설 모두 명백한 허점이 존재했고 단칼에 논쟁을 종식시킬 만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양측은 소모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인간광우병이 광범위하게 발견됐고 공포는 최고조에 달했다. 공포에 답해야 했던 과학계는 당시까지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가설을 제시한 프리온 가설의 주창자 프루지너에게 97년 노벨상을 수여했다. 지난해 한국인들이 지겹게 들었던 그 프리온 이론이 갑작스럽게 승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광우병 관련 논문들은 거의 대부분 "광우병은 아직도 논란이 진행중이다"란 구절로 시작한다. 저자는 "과학적 증거의 객관성은 그 해석 과정에서 이뤄지는 합의에 따라 만들어질 뿐 절대적으로 담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과학적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을 때 최선의 방도는 단 한 명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사전예방 원칙'뿐이라는 것이다.
집권 1년도 되기 전에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던 한국 정부에도, 정부가 국민의 건강주권을 내팽개쳤다며 분개했던 시민들에게도 광우병은 깊은 상처를 남겼고 지금도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광우병 연구기반이 취약한 한국에서 한국인 저자가 쓴 이 책과 지난해 9월 발간된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유수민, 지안)는 공히 어려운 용어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고 광우병이 드리운 공포의 실체를 직시해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데 유용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2009.8.29>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소의 두개골, 뇌, 척수, 창자, 장간막, 편도, 회장 끝을 광우병 유발 '특정 위험 물질'(SRM)로 규정했고 한국 정부는 이 기준에 따라 수입 허용 부위를 정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 관리는 지난해 광우병 파동 당시 "광우병은 복어에서 독을 제거하듯 특정 부위를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은 OIE가 규정한 특정 위험 물질과 연결되거나 접한 부분도 위험 물질로 취급한다. 유럽연합의 과학적 기준에서 보면 한국에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일부는 특정 위험 물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