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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서평>언어의 진화(크리스틴 케닐리 지음/전소영 옮김/알마)

언어는 인간이라는 종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사회를 유지하고 예술활동을 한다. 그래서 언어의 기원은 고래로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해온 대상이었다.

책에도 나오지만 현대 언어학에 노암 촘스키가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언어학=촘스키'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다. 촘스키는 진보적 지식인으로서의 명성도 상당하다. 그러나 비전문가가 촘스키의 이론이 어떤 내용이며 왜 각광을 받게 됐는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상당 부분이 촘스키 이론에 대한 다른 전문가들의 반박 노력에 할애됐다. 그만큼 촘스키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방증이다. 현대 언어학의 최전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아래 서평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연구자나 책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에 소개돼 있다. 특히 최근에 번역된 책 두권이 눈에 띈다. 둘 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하나는 서평에 등장하는 <알렉스와 나>(이렌느 M 페퍼버그 지음/박산호 옮김/꾸리에)와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다니엘 에버렛 지음/윤영삼 옮김/꾸리에)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갈라파고스 섬의 아기들' 부분은 학자들의 입장을 대비시키기 위해 저자가 유명한 학자들을 상대로 설문을 한 것인데 상당히 흥미롭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아기들을 가득 태운 배가 갈라파고스 제도에 난파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이 아기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음식, 물, 집이 충분히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이 성장했을 때 어떤 형태로든 언어를 만들어내게 될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언어가 발생하기까지 몇명이 필요할까요? 그 언어는 어떤 형태일까요? 그리고 세대를 거치면서 그 언어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언어의 진화 - 10점
크리스틴 케닐리 지음, 전소영 옮김/알마

언어, 도대체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최초의 언어'에 관한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들
-그리고 진화하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

기독교적 전통은 신이 세상의 모든 것과 인간을 창조했듯 언어 역시 처음부터 피조물인 인간에게 선사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언어의 기원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찰스 다윈이 창조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진화론을 설파하기 훨씬 이전에도 언어의 기원에 관한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았다. 언어의 발생은 인류의 기원을 찾는 질문만큼이나 오래된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이 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인 '최초의 언어'에 관한 다양한 가설과 실험, 논쟁, 최근의 연구동향과 전망을 망라했다. 언어의 기원에 관해 학계의 가장 큰 논쟁지점은 언어가 과연 인간만이 보유한 고유의 특질인가 아닌가, 인간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인한 뇌구조의 변화로 갑작스럽게 언어를 습득하게 된 것인가 점진적으로 다듬어진 정신적 능력인가다. 저자는 두 가지 질문 모두에서 후자 쪽에 서 있다.
이야기는 '당연히' 노암 촘스키로부터 시작된다. 1950년대 후반 두각을 나타내 언어학계의 살아 있는 신화로 추앙받고 있는 그는 위의 두 질문 모두에서 전자 쪽이다. 촘스키는 모든 언어를 관통하는 규칙체계 즉 '보편문법'이 있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이는 "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며, 그 능력은 보편문법과 함께 인간 유전자에 내장돼 있다"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학계에서 촘스키와 그의 제자들이 누리는 권위는 절대적이어서 '촘스키 사단'에 맞서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언어가 인간 고유의 특질이 아니며 언어는 점진적 진화의 결과라는 가설과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결과를 들고 나오는 학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때 촘스키의 제자였던 필립 리버만이 그 극단에 있다. 그는 "언어의 진화를 연구하려면 인간이 모종의 문법적 장치를 타고났다는 관념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면서 촘스키에게 철저히 반기를 들었다.
수 새비지 럼버는 침팬지와 보노보 등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이 수백개의 문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음을 밝혀내 언어가 인간 고유의 특질이 아님을 입증했다. 아이린 페퍼버그 역시 얼마 전 국내에 번역된 책 <알렉스와 나>의 주인공인 앵무새 알렉스와 수십년간 생활하면서 말을 가르쳐 초보적인 의사소통을 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동물이 인간의 언어와 양태는 다르지만 원리는 비슷한 그들만의 의사소통 체계를 보유하고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제 진화언어론의 최전선에 있는 학자들은 인공지능을 부여한 컴퓨터에 다양한 자극을 부여하고 이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와 상호작용을 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이들은 컴퓨터의 힘을 빌려 언어가 진화해나가는 과정을 목격하게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다.
저자는 언어가 우리 정체성의 근본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화론의 핵심이 그러하듯 우리는 상위 동물이 아니라 그저 한 종류의 동물에 불과하고, 우리의 뇌는 만능의 기관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상당한 공통점을 공유하는 특정한 유형의 사고기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심리학과 생물학, 철학, 컴퓨터 공학의 영역을 넘나드는 언어학이라는 학문의 현주소를 읽어내기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러나 "언어의 진화 이야기는 예로부터 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모든 이야기의 기초"라는 저자의 강조는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다. <2009. 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