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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2

장하준 교수는 경제의 과도한 금융화에 대한 경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사실 장 교수의 주장이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는 몇년 있으면 20주년이 되지만 여전히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고, 그로부터 10여년 뒤 발생한 9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세계를 대공황의 패닉에 몰아 넣었다. 경제학자들, 경제관료들은 더이상 대공황은 없다고 자신해왔지만 이게 실은 허언에 불과했다는 걸 사람들이 깨달은 것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10점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불행하게도 사상적으로는 산업화 후 사회의 담론이 힘을 얻고, 실생활에서는 금융 부문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제조업에 대한 무관심은 근래에 와서는 경멸로까지 바뀌었다. 새로운 '지식 경제' 사회에서 제조업은 저임금 노동력을 주무기로 하는 개발도상국에서나 하는 저급한 활동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새로운 사회 또한 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산업화 후 사회에서도 이른바 새로운 경제의 동력이라고 여겨지는 서비스 산업은 역동적인 제조업 부문의 뒷받침 없이는 융성할 수 없다. 서비스 산업이 주도해 번영을 이룬 경제의 대명사라고 생각하는 스위스와 싱가프로가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된 세 나라 중 두 나라라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이다.

(7장 세상 모든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66~267쪽)




통화 선물과 스톡옵션은 1970년대부터 시카고상품거래소를 통해 거래되었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파생 상품 시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2년 역사적인 변화가 왔다. 그해 두 개의 중요한 미국 금융 규제 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현물선물거래위원회(CFTC)가 파생 상품 계약의 결제를 원래 근거가 되었던 제품(예를 들어 쌀, 원유 등)으로 하지 않고 현금으로 해도 된다고 합의한 것이다.

새 규칙 덕분에 현물이나 특정 금융 자산 이외에도 물리적으로 절대 지급 수단이 될 수 없는 주가 지수 같은 '명목상'의 것들에서 파생된 파생 계약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파생 계약의 한도를 제한하는 것은 사람들의 상상력뿐이었다.

(8장 피델리티 파두시어리 뱅크에 난리가 났어요 290쪽)



이 정보 과다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적 모델이 개발되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좋게 말하면 매우 부족한 정도였고 최악의 경우에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잘못된 안전감만 안겨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모델들에 따르면 2008년 위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복권에 연달아 스물한 번 내지 스물두 번 당첨될 확률과 맞먹는 것으로 나온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교묘하게 상품을 묶고 구조화하고 파생 상품을 디자인해도 결국은 플로리다에 사는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 대출자나 나고야의 중소기업, 자동차를 사려고 대출 받은 낭트의 젊은이가 돈을 갚아야 한다는 전제가 이 모든 새로운 금융 상품의 근저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스템 안의 서로 다른 부분을 긴밀하게 연결한 금융 상품이 만들어지면서 최초로 돈을 빌린 사람이나 중소기업이 돈을 갚지 못한 데 따른 부작용이 시스템 전체로 훨씬 격렬하게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8장 피델리티 파두시어리 뱅크에 난리가 났어요 294~295쪽)



금융은 복잡하기 그지 없긴 하지만 인간의 활동이다. 물론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 금융인의 활동을 일반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자료를 읽고 전문가의 도움말을 들음으로써 적어도 추상적으로나마 핵심은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도한 금융화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경향신문이 장기간 연재했던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시리즈가 겹쳐졌다. 경제라는 말만 나오면 겁을 집어먹던 나였지만 당시 이 방대한 기획에 참여하면서 장 교수가 반복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참고 삼아 당시 기사 몇개를 갈무리 해 올린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0811261757075&code=920100&med=khan


앞에 인용한 부분에서 장 교수는 '플로리다에 사는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 대출자나 나고야의 중소기업, 자동차를 사려고 대출 받은 낭트의 젊은이'를 언급했는데,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는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면 이해가 된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0812141816145&code=920201&med=khan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파생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이다. 툭하면 영어 약자를 동원하는 파생 상품은 일부러 일반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후배는 아래의 기사를 쓰기 위해 근 두달 가까이 자료를 뒤지고 전문가들을 쫓아다녔다. 그 결과로 나온 기사는 그간 내가 파생 상품에 대해 본 어떤 설명보다 쉬우면서도 핵심을 잘 포착하고 있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0812231753185&code=920100&med=khan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0812231749015&code=920100&med=khan


이 시리즈는 나중에 <세계 금융위기 이후>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 10점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는 다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밑줄치기다.


이런 맥락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특히 중남미에서 인기를 누린 좌파 '해방신학'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브라질 올린다-헤시피 지역의 대주교 돔 헬더 카마라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른다. 왜 그들에게 음식이 없는지를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 부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약간은 '공산주의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만큼 절박하게 만든 환경을 용인한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10장 일을 해 본 사람 몇 명은 알아요 341쪽)




정부 실패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국가를 구석으로 밀어내고 중앙은행과 같이 꼭 필요한 기구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해 경제를 탈정치화하는 것이 좋은 생각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하는 '정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민주 국가에서 정치란 국민이 끼치는 영향력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1원 1표' 원칙으로 움직이는 반면 민주 정치는 '1인 1표' 원칙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민주 사회에서 경제를 탈정치화 하자는 것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

(11장 리바이어던 아니면 철인 왕? 381쪽)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에 실시한 한 여론 조사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는 사람들에게 어느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물은 다음 거기에 덧붙여 왜 상대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지도 물었다. '다른 쪽'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나온 답 중의 하나는 상대방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답은 부시 지지자와 고어 지지자 모두 공통적이었다.

미국 유권자들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자리에 정치에 서투른 사람을 앉히겠다고 생각한 걸가? 물론 아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정치적'이라는 말이 좋지 않는 표현이 되었고, 따라서 정치인을 '정치적'이라고 부르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는 데 아주 효과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11장 리바이어던 아니면 철인 왕? 389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