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산 전자책 단말기 'SNE-50K'가 첫선을 보였다.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와 대형서점의 대명사 교보문고가 손을 잡고 전자책 단말기 개발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부터 알려져 있었기에 출판계와 독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1차 제작분이 이미 소진돼 2차 제작분을 판매하고 있으며 현재 3차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얼마전 이 물건을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다녀왔다. '삼성스러운' 사무적이고 깔끔한 디자인, 조그만 화면에 전자잉크로 출력된 활자들의 부드러움이 인상적이었다. 눈깜빡할 사이에 페이지가 이동하는 인터넷에 익숙해선지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걸리는 시간은 답답하다는 느낌을 줬다. 미국에서 '킨들'이라는 전자책 단말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국내에서도 역시 전자잉크를 사용한 '누트'라는 단말기 시리즈가 나와 있지만 개인적으로 접해본 적이 없어 가격이 33만9000원으로 책정된 이 제품을 본격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내 전자책 시장의 앞날에 이 단말기가 미칠 영향이 궁금해 출판계 사람들의 전망과 '얼리 어답터'(보통 사람들보다 새 제품에 큰 관심을 갖고 빨리 사용해 보는 마니아)들이 인터넷에 남긴 사용후기들을 살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체로 호의적이지 못했다.
사용자들의 품평은 대개 기기의 성능에 맞춰져 있다. 폰트가 획일적이라든지, 배터리 사용시간이 너무 짧다든지, 필기감이 너무 둔하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야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을 수도 있고 기술적 문제점은 향후 성능을 향상하면 될 일이다.
출판사들은 삼성과 교보가 어떤 제품을 내놨든 한국의 전자책 시장이 아직 미미한데다 단말기의 경우 확고한 트렌드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주류였다. 특히 교보가 앞으로 전자책 독자들에게 제공할 콘텐츠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관심을 보였고,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현재 교보문고는 6만권 가량의 전자책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아닌 이번에 새로 출시된 제품에서 당장 구현가능한 것은 2300여권 정도라고 한다. 포맷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보는 내년까지는 기존 전자책 데이터의 포맷을 모두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더구나 신간도서 가운데 교보가 확보하고 있는 전자책 비율은 5% 정도에 그친다.
그렇지만 출판사들도 앞으로 전자책 시장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엔 이의를 달지 못한다. 따라서 출판사와 전자책 서점간에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도 예고되고 있다. 지금은 콘텐츠 확보가 절실한 전자책 서점쪽에서 출판사들에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사정을 하지만 주도권이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무분별한 복제의 우려도 제기된 바 있다. 한 출판사 사장은 "음악을 예로 들자면 음반 제공자가 되느냐, 음원(音源) 제공자가 되느냐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0개 출판사가 출판 콘텐츠 2차적 사용에 대한 선도적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한국출판콘텐츠라는 회사를 차리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과도기를 밟을 것이고, 상당한 돈을 주고 SNE-50K를 놀잇감이 아닌 진정한 독서의 도구로 구입한 독자들로선 꽤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200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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