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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반죽글

다층적 '주인-대리인 문제'의 극치 저축은행사태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해 고객들이 맡긴 돈으로 흥청망청 돈잔치를 벌이다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들의 황당한 짓거리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다. 저축은행에 크든 작든 돈이 묶인 사람들은 말 그대로 피가 마르는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저축은행을 감독해야 할 권한과 의무가 있는 금감원 직원들이 저축은행과 짬짜미가 되서 뇌물을 받아먹거나 비위 행위를 눈감아 줬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 저축은행과 상관 없는 일반인들의 공분까지 자아내고 있다. 금감원을 해체하고 완전히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간 금융감독기구의 문제점이 숫하게 제기돼 왔지만 한번 권력을 잡은 기관은 자신에 대한 비판론까지 잠재우면서 악착같이 권력을 유지한다. 권력의 달콤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모든 조직원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친다.

그런데 그 권력의 원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 개개인, 즉 주권자인 시민이 그 권력의 주인이다. 다만 우리 개개인이 생업을 영위하면서 금융기관을 감독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공공기관을 만들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배치해 대신 감독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민이 주인이고 금감원은 대리인인 셈이다. 저축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 역시 주인이고, 저축은행은 대리인인 셈이다.

작금의 사태는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인의 이익을 해치는 극심한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리인의 주인 배신 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인-대리인 문제는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현상이었다.

 


학술적으로 주인-대리인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하며, 도덕적 해이가 주인-대리인 문제의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설명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큰 과수원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 과수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당신이나 당신 가족의 노동력 만으로는 과수원을 관리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은 과수원을 관리해줄 사람을 고용한다. 과수원을 성실하게 관리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지불하는 계약을 관리인과 체결한 것이다. A라는 과수원을 관리인에게 맡긴 당신은 이제 안심하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관리인이 과수원을 성실하게 관리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관리인에게 A과수원을 맡긴 이상 이 과수원에 얼마만큼의 사과가 열렸는지,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 등은 당신보다 관리인이 더 잘 안다. 이게 바로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관리인이 가진 정보가 주인인 당신이 알고 있는 정보보다 많은 것이다.

열심히 일하던 관리인은 어느날 꾀가 생긴다. 올해 사과가 평년보다 많이 열렸다. 주인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 만약 주인에게 사과가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확됐다고 말하고, 여분의 사과는 주인 몰래 시장에 내다 판다면 많은 과욋돈을 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해이 행위다. 주인과의 계약을 위반하고 사익을 추구한 것이다.

만약 이런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주인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이 관리인을 감시하는 감독관을 두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관리원과 감독관 둘이 짬짜미를 해 합동으로 주인을 속일 수 있다. 이게 바로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저축은행사태의 본질이다. 고객의 돈을 맡은 저축은행은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사익추구행위를 했고, 이들을 감시하라고 채용된 금융감독원 직원들 역시 임무를 부여한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사익추구행위를 한 것이다.

관리인을 감시하는 감독관을 감시하는 감독관을 또 두는 건 어떨까? 그런데 관리인을 감시하는 감독관을 감시하는 감독관 역시 대리인인 것은 마찬가지다. 관리인을 감시하는 감독관을 감독관 역시 도덕적 해이에 빠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연구해온 사회과학자들은 주인-대리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안들을 제시했다. 대리인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사익추구의 유혹을 이겨낼만큼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전문용어로는 '유인(incentive)구조'를 적절하게 설계한다고 말한다.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 종사자들, 금융감독기관 종사자들의 연봉이 매우 높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도덕적 해이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어떤 학자들은 적절한 보상규모를 추정하기 위한 수식 w = a + b(e + x + gy)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무한해서일까? 저축은행과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높은 연봉을 받고도 주인을 배반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복수의 대리인을 두어 서로 경쟁하고 감시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주인-대리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발생하므로 정보공개 및 공유를 대폭 확대하는 방법도 있겠다.

저축은행 사태는 현재 진상이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더 많은 도적적 해이 사례가 드러날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론 금융감독 기능을 분산시키는 것이 유력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할지도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여론의 질타가 너무나 따가워 그들은 일시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정말로 그들의 밥그릇을 나누고 개혁하겠다고 하면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자원을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할 것이다. 그럴수록 시민들이 고용한 대리인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 정부와 국회가 얼마나 큰 의지를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시민은 대리인에게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라고 압박할 수 있고, 심할 경우 해고할 수 있는 할 수 있다. 결국 시민인 우리의 관심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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