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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반죽글

'고맙습니다'의 힘

지난 주말 아이와 함께 무리에 섞여 북한산엘 다녀왔다. 아내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텐데 밀린 일 때문에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고 방안퉁수 스타일의 아이를 회유반 협박반 설득해 집을 나섰다. 집에선 삐죽거렸던 아이가 지하철 역 가는 길에 금새 밝아졌고 김밥을 사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6호선 독바위역에서 시작해 삼천사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나로선 처음 걸어보는 코스였다. 아이도 마찬가지. 움직이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약간 강압적으로 데리고 나오긴 했는데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속으론 너무 힘들어하면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가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아이는 처음 등산을 해보는 것 치고는 제법이었다. 경사가 있는 바위를 오를 때도 자세를 갖추고 잘 올랐다. 그러고보니 어렸을 적부터 놀이터에 있는 모의 암벽 같은 놀이기구를 아이가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아이는 신나게 놀면서 숨이 차면 눈누덩이 발갛게 된다. 우리가 놀리길 '급 다크서클'이 생기는데 이날도 그랬다. '어이쿠! 어이쿠!'하면서도 씩씩하게 올라갔다.

5시간 산행중 3시간 정도 걸려 능선까지 용케 잘 올랐던 아이가 드디어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지난 주말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서 가다가 발이 바퀴에 끼는 바람에 발꿈치를 다쳤는데 오랜 시간 걷다보니 그 부위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씩 절룩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약간 오르막길이나 평지길에선 안거나 업어서 이동하고, 내가 힘이 부치면 다시 걷게 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몇번째 업었을 때였을까. 쪼그리고 앉아 어깨를 내주자 아이가 올라타며 귀엣말로 수줍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끔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잔머리를 굴리면서 아옹다옹하곤 하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40근이 넘는 녀석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덕분에 오늘까지 허벅지 근육이 뭉쳐 계단을 걸을때면 찌릿찌릿하다. 하지만 녀석의 '고맙습니다'란 말의 여운은 그 여인의 '사랑해'라는 여운만큼이나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그래도 이 기억은 꼭 기록해 두어야 하겠기에 적어둔다.


※2010년 여름 난지한강공원 분수대 근처에서 여름을 스케치 중인 까만주름 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