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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두꺼운 책의 압박, 두꺼운 책의 즐거움...

짧은 시간 내에 리뷰를 써내야 하는 입장에서 두꺼운 책은 아무래도 부담이다. 솔직히 황당하게 두꺼운 책은-최근에 나온 <앤디 워홀 일기>는 큼지막한 크기에 942쪽이었고, <생각의 역사1>(들녘)은 1239쪽이었다-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때문에 일독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머릿말과 목차를 보고 읽을 부분을 골라 발췌읽기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700~800쪽 분량에다, 개인적 관심사를 다루는 흥미있는 책일 경우다. 대개 그렇듯 앞부분을 조금 읽다보면 재미를 붙이게 되고 끝까지 읽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속독법의 대가가 아닌 이상 700~800쪽 짜리 책 한권을 아무리 빨리 읽더라도 필요한 시간의 절대치가 있다.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도 남아 책을 붙들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페이지 끝을 접어가면서 읽는데 한권을 모두 끝내고 나면 책의 모서리 부분이 불룩해진다. 나름 중요한 부분을 밑줄긋고 접어 놓는다고 한건데 이것도 너무 많아지면 어떤 내용이 어디에 있었는지 찾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메모지를 갖다 놓고 중요한 표현이나 키워드를 간단히 쓰고 해당 페이지를 기록해 두는 방식이다. 눈길을 끄는 도판이 있는 페이지를 표시하는덴 포스트잇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렇게 꼬박 한권을 읽고 나면 12시가 가까운 시간이 된다. 마감은 내일 낮인데 말이다. 여기서 드는 갈등. 새벽까지 쓰고 갈까, 아니면 내일 아침에 와서 쓸까. 책을 읽어내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기 때문에 읽은 내용을 리뷰하는데 들어갈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아래 두권의 책도 그랬던 경우다. 두권 다 분량이 각주와 참고문헌 포함 800쪽이 넘는다. 첫번째의 경우는 시간에 너무 쫓겨 마감을 하다보니 매끄럽게 정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두번째는 첫번째 책의 경험이 있어선지 첫번째 보다는 고통이 덜했다. 한국전쟁을 전공한 모 교수가 다른 일로 사무실에 들렀다가 이 책을 보더니 "이 책이 번역됐나요? 매 학기 학생들에게 원서로 읽히는 책인데"라며 반색을 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데 학술적인 무게가 검증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책의 내용과 서술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그탓에 밤을 새야 했지만.

2005년에 번역된 앤드류 고든의 <현대일본의 역사>(이산)는 도쿠가와 시대에서부터 일본 근대의 출발이라는 메이지 유신을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정치사의 다이나믹스를 다뤘다. 존 다우어는 앤드류 고든이 하나의 챕터로 다룬 부분을 한권의 책으로 부풀렸다. 원경과 근경에서 일본을 바라본 두 책을 함께 놓고 보면서 맥락을 이해하고 관점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종전 후 일본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맥아더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맥아더 평전은 마이클 샬러의 <더글러스 맥아더>(이매진)가 꽤 인정받는 책이다. 최근 나온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살림)(이 책 역시 1084쪽이라는 분량이 압도하지만 저널리스트 특유의 쉬운 문체인 것이 위안이다)는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가 보여준 행위들을 고찰하면서 그를 마마보이에다 소영웅주의에 휩싸인 인물로 그렸다.

두꺼운 책의 미덕은 역시 내용을 축약하지 않고 상세하게 기술해 사안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것과 풍부한 자료가 동원돼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가 설정한 문제의식의 줄기가 초반에 잡힌다면 긴 글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중간에 덮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