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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밑줄치며읽기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조지 레이코프/웅진지식하우스)-4



어떤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이 일목요연하게 세상만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앞뒤가 맞지 않거나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사이에 투쟁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세상만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이라기보다는 어떤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나라이지만 실상은 한국에 비해 매우 종교적이다. 유럽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이해 건국된 나라라는 역사를 가진 때문인지 국가적 상징물에 신(God)이 언급되겨나 새겨진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현대 정치에서 미국의 우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꽤 큰 골칫거리이다. 그들의 자기중심적, 극단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러나 세력이 있으면 이들을 동원해 이득을 보고자하는 정치세력도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혹은 세력이 커지면 그 세력이 스스로 자신의 권익과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정치화한다.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 10점
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만일 극우 기독교인들이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한다면, 산전·산후 관리와 아동 건강보험, 곤궁한 아이와 집 없는 아이를 먹여주고 재워줄 프로그램, 오염 억제 프로그램, 안전한 식품 프로그램을 위한 정책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이 생명의 문제를 지배하게 만들었다. 즉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빈곤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가난한 사람들가 죄 없는 그들의 자녀들은 당연히 빈곤의 고통을 느껴야 하고, 정부는 깨끗한 대기와 물을 위한 공공 건강 규정으로 기업의 이익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233쪽, 10장 신이 자유를 억압한다)

아래의 인용문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다. 한국에서도 북한 문제만 나오면 남남대립이 심각하게 진행된다.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한 극우파-북한에 대한 강경파는 극우파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파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강경함에 있어 극우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들은 공공연히 북한의 정권교체를 말한다. 그런데 김정일 정권이 정밀한 폭격을 뜻하는 외과수술적 타격(Surgical Strike)에 의해 제거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북한 주민은 한국과 미국을 해방자, 구원자로 환영하고, 자생적 혹은 외삽적으로라도 민주화가 이뤄질 것인가? 극우파는 당연히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레이코프는 극우파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직접적 인과관계라는 그들의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왜 사람 후세인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만 하면 바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는가? 그들은 왜 미국 군대가 열렬한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는가? 그들은 왜 부대가 바그다드로 행진해 들어갈 때 부시가 항공모함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이제는 생뚱맞아진 '임무 완수'라는 말을 하도록 연출했는가? (…) 엄격한 아버지 모형 안에서 추론하면, 당연히 유기적 인과관계보다 직접적 인과관계의 관점에서의 사고 활동을 선호하게 된다. 직접적인 인과추론에 따르면, 당신은 폭군을 제거함으로써 어떤 나라를 해방시킨다. 그것이 필요한 것의 전부이다. 이는 직접적 인과관계이다. '정권 교체'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군대가 행진해 들어가서 사담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린다. 이것으로 모든 게 끝이다. 한 사람의 몰락이 자동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 질서 잡힌 시민사회,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다. (255쪽, 11장 남의 것도 내가 지켜야)

이제 진보주의자들에 말할 차례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말하는 레이코프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진보주의자들은 프레임 형성에 능하지 못하다. 정치인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을 한번 보라. 진보파 정치인들은 상당히 합리적인 논거를 가지고 말하려고 애쓰지만, 노련한 보수파 정치인들에게 번번히 깨지기 일쑤다. 용어 선택에서부터 패배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남의 집 마당에서 벌이는 싸움은 아무리 봐도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진보주의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면서 남의 집 마당에서 남이 설치한 덫이 담긴 용어를 가지고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의 사고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아주 흔히 진보주의자들은 프레임 형성에 실패한다. 그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우파의 프레임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 덫에 걸리면 당신은 우파의 가치 체계와 세계에 대한 그들의 조망 방식에 빠지게 된다. 당신은 결국 당신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 우파의 방식으로 사고하게 된다. (295쪽, 13장 '말'을 찾지 못하면, 자유도 없을 것이니)


전통적 자유주의의 많은 내용이 합리주의 신화에 근거했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이 외교정책을 비롯해 전통적인 자유주의경제학도 합리주의 신화에 근거했다. 전통적 자유주의경제학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성적인 행위자처럼 행동한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자유주의 외교정책은 국가도 자신의 국익, 즉 국가적 부나 군사적 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이성적 행위자처럼 행동한다고 가정했다.
현대 인지과학은 이 이론의 거의 모든 세부 사항이 거짓임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사고는 무의식적이다. 비록 어떤 형태의 이성이 보편적일 수는 있지만, 이성의 많은 부분은 보편적이지 않다. 우리는 프레임과 개념적 은유를 사용해 생각하고, 이것들은 보편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02쪽, 13장 '말'을 찾지 못하면, 자유도 없을 것이니)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합리주의 신화에 매달린다. 이로 인해 진보주의자들은 정치적 파멸을 맞게 된다. 예를 들어 합리주의는, 모든 사람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당신은 정말로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하기만 하면 되고 그 사람들도 추론을 통해 동일한 타당한 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매번 선거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이 주장은 정말로 거것이다. 사실만으로 당신은 자유로워질 수 없다. 만일 상식을 정의하는 프레임이 사실과 충돌한다면 사실은 무시될 것이다. (303쪽, 13장 '말'을 찾지 못하면, 자유도 없을 것이니)


지금까지 보수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쟁점을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 프레임에 넣었다. 합리주의자들은 개념적 프레임의 존재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를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수주의의 언어를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수주의의 언어를 중립적인 것으로 바아들일 수 있다. 합리주의 진영의 여론조사에서 혹시라도 보수주의의 언어를 사용해 질문을 한다면, 그 쟁점들은 보수주의 시각의 프레임에 넣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론조사에 인지적 편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만일 여론조사 기관이 프레임 형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러한 편견에 주목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의 의견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민주당 후보에 대한 합리주의자의 처방은 "만일 당신이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싶다면, 오른쪽으로 이동하라!"이다.
이것은 비극적 이동일 것이다. 첫째, 이 조치는 상대편을 도와준다. 해당 쟁점에 대한 상대편의 입장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조치는 당신이 의지하고 있는 진보적인 원래의 지지 기반을 소외시킨다. 셋째, 이 조치는 진보주의 세계관과 극우 보수주의 세계관의 도덕적 경계선을 넘어선다. 당신이 신뢰하는 가치에 충실하려면, 보수적인 도덕관을 단언해선 안된다. (306쪽, 13장 '말'을 찾지 못하면, 자유도 없을 것이니)


대기정화법(Clean Air Act)을 대기오염을 허용하는 법안으로 대체할 때 대기오염법(Dirty Air Act)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부시 행정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깨끗한 하늘 법안(Clear Skies Initiative)'이라는 오웰식 언어를 사용한다. 그 법안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당신은 '깨끗한 하늘'이 더 오염된 공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깨끗한 하늘' 법안에 반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골수 보수주의자조차도 이 법안에 반대하지 않는다. 이것은 언어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정책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게 아닌 것이다. (307쪽, 13장 '말'을 찾지 못하면, 자유도 없을 것이니)

보주주의자의 프레임이 생산해낸 사고방식과 용어에 물들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레이코프는 매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한다. 뇌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뇌를 어떻게 변화시키지? 사고방식의 변화가 답이다. 사고방식의 변화는 레이코프도 인정하듯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치적 활동 너머에 인지적 활동이 있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마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인지적 활동을 하려면 당신의 뇌가 변화해야 하고, 이전에는 결코 생각해본 적도 없는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이해해본 적 없는 내용을 이해해야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고 들어야 한다. 그것은 일상의 정치적 활동보다 더 어렵다. (310쪽, 13장 '말'을 찾지 못하면, 자유도 없을 것이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