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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출판계 인사들을 만나면 책과 출판의 현실과 미래에 관해 곧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업계에 있는 당사자들이니 이 주제에 관해 고민을 하고 어떻게 나갈 것인가 탐색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더구나 '된다, 된다' 하던 책의 디지털화가 눈앞에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민들이 많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특히 올해는 상반기에 천안함 사태, 지방선거, 월드컵 등이 줄줄이 알사탕으로 이어지면서 출판사들의 실적이 부진했던터라 그들에겐 차가워지는 가을 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런데 이들을 만나다보면 디지털 세상에서의 책의 미래에 대해 대비되는 입장과 마주치게 된다. 디지털 세계는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이라며 적극 나서는 축이 있는가 하면, '준비는 해야 하는데...'라고 걱정하면서도 어쩔줄 몰라하는 축이 있다. 그런데 이건 자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규모가 어느정도 되는 출판사들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있지만 규모가 적은 출판사들은 의지와 생각이 있어도 그닥 쉽지 않은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출판물 유통시장 붕괴는 심각할 정도라는게 제3자에게도 느껴질 정도다. 출판사 대표들이 가끔 인사차 전화를 걸어와 대화를 하다보면 인터넷 서점을 규탄하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다. 특히 최근엔 리브로가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하면서 출판사들을 꽤나 종용했나보다. 그쪽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출판사들이 그가격에 책을 댔기에 그런 할인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질문에 그들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쉰다. 개별 출판사들이 이익을 위해서, 혹은 생존을 위해서 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자기네 살을 갉아먹는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라 출판계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가 잦은 편인데, 이래저래 한숨소릴 하도 많이 들어서 나도 주름살이 느는 것 같다.

[책동네 산책]출판계의 가을 ‘산사태’ 
 
#장면1 공정거래위원회는 영풍문고와 알라딘이 출판사들에 수억원대의 판촉비용을 떠넘겼다며 시정을 명령했다. 자체 판촉행사를 하면서 출판사들에 떠넘긴 비용이 각각 수천만원과 수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상거래의 기본인 서면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사실도 적발됐다. 거래가격이나 대금지급방법, 반품조건 등이 명시되지 않으면 출판사의 목줄을 쥐고 있는 대형서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장면2 55년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의 문우당서점이 이달 말 폐업한다는 공고문을 내걸었다. 부산일보는 부산에서 20여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어느 사장이 “십수년 전 월세 100만원에 월 매출이 1000만원이었다면, 지금 월세는 250만원으로 올랐으나 매출은 그때의 7분의 1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점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장면3 요사이 독서가들 사이에선 인터넷 서점 리브로가 화젯거리다. 이 인터넷 서점의 주인이 바뀌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정가제를 적용받지 않는 구간도서를 50~70% 싸게 판다면서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대규모 할인 덕에 그간 점찍어 뒀던 책들을 기분좋게 ‘질렀다’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단골손님들이 줄지어 리브로로 이동하고 있는 광경을 보는 다른 인터넷 서점들은 속이 탄다.

#장면4 온라인 서점의 폐해를 줄기차게 지적해온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최근호에서 어느 온라인 서점 출신 인사에게 들은 비판을 소개했다. “온라인 서점이 어떻게 혼자서 반값 할인할 수 있느냐! 출판사가 35~40%로 책을 공급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과다할인, 경품제공 등을 문제삼아 온라인 서점을 고발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런 과도한 이벤트도 출판사 영업자들이 온라인 서점을 강요해 벌이는 것이지 출판사가 원칙을 지키면 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장면5 “대한출판문화협회에 2010년 1~9월 납본이 의뢰된 도서를 집계한 결과 매년 상승하던 신간 발행 종수가 지난해에 비해 7.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출판사의 신간 발행 종수를 비롯해 2000년 이후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번역 출판 또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줄어들은 것으로 집계됐다.”(대한출판문화협회 보도자료)

‘독서의 계절’이라는 2010년 가을 벌어진 일들이다. 출판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문턱을 넘어섰다.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지 못한 자는 도태될 것이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자는 더욱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들은 “올해 가을은 정말 힘들다”며 아우성들이지만, 그들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전체의 이득을 위해 눈앞의 작은 이득을 참지 못한 대가는 컸다. 소비자들로선 어찌됐든 책을 싸게 살 수 있으면 좋다.

그런데 2010년 가을을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은 ‘먼 산에서 들려오는 산사태 소리’처럼 들린다. 산사태를 일으킨 사람은 그 책임을 추궁당해야 한다. 문제는 산사태는 산사태를 일으킨 사람만 덮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0년 가을이 더욱 스산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2010.10.30)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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