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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쯤이다. 외부필자들이 쓰는 '민주화운동 실록' 연재물의 진행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민주화운동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므로 옛날 자료들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자료 찾는게 항상 큰 일이었는데 이 때문에 우리 회사 자료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했다. 2000년대 이전의 사진들은 인화가 되서 주제별로 캐비넷에 들어 있었다. 이제는 상당히 고전적인 모습이 돼버렸지만 흑백의 사진들을 한장씩 넘겨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그런 사진들을 넘겨다보면 말로만 듣던 '보도지침'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은 알겠지만 일명 '구리스펜'으로 불리는 빨간색 색연필로 사진 위, 또는 뒷면에 사진이 신문에 실릴 당시 제작과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확한 문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국'의 지시사항으로 보이는 것들이 메모돼 있는 사진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몇년전 정부 부처를 출입하던 시절, 문공부에서 오래 근무한 적이 있다고 소개한 어느 공무원은 '사진과 기사가 게재될 크기에서부터 제목에 들어갈 문구까지 일일이 지시하곤 했다'고 내 앞에서 회상했다. 그 말투에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나는 것 같아 황당하면서도 적잖이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작년에 <책의 공화국에서>란 책을 낸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김 대표와 통화를 길게 한 적이 있었다. 불온서적 판매 금지, 압수 등등의 일을 많이 당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른바 민주화가 되고 난 다음에 자신이 만든 책들을 트럭으로 실어가버렸던 문광부에 그 책을 돌려달라고 민원을 제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책을 되찾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분풀이, 앙갚음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물론, 그에게서 뺏어간 책들을 정부가 보관하고 있을리는 만무하다. 여하튼 판매금지, 회수 및 압수, 입소문, 지하서점에서의 판매라는 현상이 반복됐다고 한다.

이 정부 들어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허용 반대 촛불시위, 미네르바 사건, 천안함 사건 등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가끔은 대놓고 비판할 자유를 가졌다는 기자들도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하물며 일반인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내가 정말로 분개하는 것은 이른바 보수언론들의 행태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이념적 입장에 관계 없이 언론 입장에선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작금의 현실에선 오히려 언론출판의 자유를 억누르라고 부채질 하는 것처럼 비춰질 때가 많다.

따지고보면 언론출판에서 일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기록'이 다 남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른바 '보수언론'에서 일한다는 사람들도 이걸 잘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얼굴의 두께와 권력의 강도는 정비례한다.

[책동네 산책]권력자만 모르는 ‘억압의 역설’

‘지난 9월30일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자센터의 초청을 받아 인천공항에 도착한 마쓰모토 하지메씨는 입국 심사 과정에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하고 다음날 오전 추방당했습니다. 그의 유쾌하고 기발한 소동과 뛰어난 글발에 매료당한 도서출판 이루는 그의 저작물에 담긴 반자본주의적 속성을 간파하지 못한 바, 그의 저서 <가난뱅이의 역습>이 단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개념 없이 번역 출간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 하여 도서출판 이루는 지난 과오를 씻고자 <가난뱅이의 역습>, 이 몹쓸 책이 죄다 팔려 없어질 때까지 무기한 반값할인을 실시하고자 합니다.’

최근 인터넷 서점의 이벤트 코너에 내걸린 재기발랄한 홍보문구다. 주인공 마쓰모토는 일본에서 공권력을 교묘한 방식으로 골탕먹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학의 상업화에 반대하며 구내 식당에 난입해 데모를 한다거나, 자신이 선거에 직접 입후보한 다음 헤비메탈 밴드를 동원해 극우인사의 유세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록본기 힐스를 불바다로!’라는 과격한 유인물을 뿌려 놓고 노상에서 찌개를 끓여 먹었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 왔었고, 경향신문과 인터뷰도 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행사장 주변에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고, 서울 도심을 걸레로 닦다시피 깨끗이 청소하며 열심히 준비해온 정부 당국으로선 마쓰모토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법도 하다. 행여 그가 도쿄에서 한 것처럼 서울 도심에서 청국장을 끓이며 시위라도 하면 큰일일 테니 말이다. G20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판이니 더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정부 당국이 간과한 것이 있다. 출판사는 마쓰모토가 다시 방한하면 각종 이벤트를 통해 책을 좀 팔아볼까 하는 기대를 잔뜩 가졌다가 무산되자 고심 끝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 정부 당국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마쓰모토의 청국장 끓이기 시위를 원천봉쇄한다는 목표는 달성했을지 모르지만 뉴스 인물로 띄워줌으로써 그가 책에서 설파한 ‘유쾌하고 기발한 체제 전복 테크닉’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불씨를 더 키운 셈이다.

출판인들이 군부독재 시절을 회상하며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게 있다. 책이 금서로 지정되면 당장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오히려 입소문이 나면서 책이 암암리에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는 것이다. 출판사를 도와주자는 심리도 있었을 테지만 뭣 때문에 금서가 됐을까 하는 호기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책이든 영화든 보지 말라고 하면 더욱 보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궁금하다. 정부 당국은 이런 역설을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무턱대고 칼날 휘두르기 좋아하는 정부 당국은 그렇다 치자.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국방부 장관이 자의적으로 불온서적을 지정하고 군인들에게 읽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도 안쓰럽다. 알다시피 이 사건의 단초가 됐던 2008년 ‘국방부 지정 불온도서 23종 목록’은 오히려 여러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그 목록에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포함되는 ‘영광’을 안았던 장하준 교수는 이제 국방부 ‘도움’ 없이도 자신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그런데 권력자들만 그걸 모른다. (2010.11.13)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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